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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Nov 14. 2024

수동면허가 불러온 어마어마한 나비효과

장롱면허 15년 차

한국의 면허증은 1종 보통, 2종 자동 상관없이 독일에서 2종 자동을 몰 수 있는 면허증으로 교환이 된다. 그래서 오토 차를 구입할 생각이라면 한국의 면허증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늘 제약이 따른다.


널리 알려진 바대로 아직도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수동을 몰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주는 차도 수동이고, 여행지에서 빌리는 차도, 길거리에서 자전거처럼 손쉽게 빌릴 수 있는 렌터카도 모두 수동이다.


하다못해 친구 차를 잠깐 빌리고 싶어도 수동일 확률 99.9프로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본인 소유의 오토 자동차를 가지지 않은 한 한국 면허증과 교환한 독일 면허증은 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다행히 한국인들은 한국 면허증을 독일 면허로 교환한 뒤 10시간의 수동 운전 교육을 이수하고, 감독관의 서명만 받으면 수동 면허 자격을 추가로 취득할 수 있다.


어렵고, 까다로우면서도 비싸기로 정평난 독일의 운전면허시험제도 안에서 한국인으로서 누리는 이점은 상당했지만 교육비는 물론, 바로 도로로 나가는 10시간의 수동 운전 교육을 받을 엄두는 도무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새 장롱면허 15년 차가 되었고, 독일에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운전이 필수라는 걸 인정하게 된 2022년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독일에서 차를 몰기로 결심한다.








겁이 많은 나는, 일단 한국에 방문한 틈을 타 한국에서 먼저 수동 면허를 따기로 결정했다. 3일 간 6시간 도로주행을 마치고 시험에 합격하면 1종 보통으로 바꿔준단다.


소형 트럭 운전석에 올라타 잔뜩 긴장해서는 안전벨트 매는 것도 잊은 채 시동 켜는 법부터 묻고, 엑셀과 브레이크, 클러치 구분을 위해 재차 확인하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던 강사가 물었다.


- 운전 처음 해봐요?

- 아뇨. 그런데 15년 장롱면허예요.

- 음... 3일 만에 못 딸 것 같은데!


운전 교습으로 한평생을 먹고 살아온 60대 전문가가 비관적인 듯, 미심쩍은 듯 모호한 표정과는 다르게 단호한 말투로 나의 당락을 결정지었다. 교습을 시작하기도 전에....



젠장!



울고 싶어 지길래 속으로 욕을 했다. 평정심을 가진 나는 운전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신기하게도 화가 나면 운전이 두렵지 않았다. 내가 운전대를 다시 잡게 된 계기도 이혼하고 난 뒤 극도의 분노 때문이 아니던가!


이혼하고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더 이상 끌어올릴 분노가 없었기에 나를 무시한 강사를 향한 한 방울의 분노를 톡 하고 짜내 트럭을 몰고 도로로 나가는데 쏟아부었다.








3일이라는 시간은 짧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운전학원에서 돌아온 첫날, 식탁 앞에 앉아 종이에 "안전벨트 매기"부터 조작법을 순서대로 적어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동 차를 구할 수 없으니 식탁의자에 앉은 채로 머릿속으로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손으로 기어를 변속하고, 발로 클러치를 밟으며 계속해서 주행코스를 돌았다.


우리 뇌는 상상만으로도 실제와 같은 경험을 한다고 했으니 반드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밤이면 집안 식구들을 돌아가며 태우고 집에 있는 자동차로 시험 보는 코스를 두 번씩 돌았다.


대망의 시험 날! 갓 수능을 마쳤다는 젊디 젊은 남학생과 함께 서서 시험 순서를 기다리니 처음 면허를 따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나도 스물한 살 아가씨였는데...  어느새 장롱면허 15년 차 아줌마라니!


나보다 먼저 시험을 보게 된 남학생의 운전을 뒤에서 지켜보며 나도 함께 시뮬레이션을 했다. 젊은 남자는 운전을 잘할 거라던 예상과 달리 그 친구의 운전실력은 어설픈 정도가 아니라 정말이지 형편없었다.  


처음부터 비틀거리며 길 한 복판에서 시동을 꺼뜨리는 실수를 연달아 두 번이나 하더니 결국 보행자 신호가 켜 진 상태에서 우회전을 하는 바람에 강사에게 욕을 진탕 얻어먹으며 시험이 종료되었다. 맙소사!   


나는? 그 친구와 자리를 바꿔 앉은 뒤부터 어떻게 주행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긴장한 채 시험에 몰입했고,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합격했다.


내 운전 실력에 대한 강사의 평은 "초보답지 않게 과감하게 잘한다"였다. 자신감이 차 올랐다. 수동으로 차를 모는 법은 확실히 익혔으니, 이제 정말 독일에서도 운전이 가능할까?


새로운 미래에 대한 계획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한국에서 수동면허를 따던 그 해, 본격적으로 운전을 결심한 2022년을 기점으로 내 삶에는 굵직굵직한 변화들이 찾아온다. 운전을 통해 생겨난 도전에 대한 욕구가 나를 가보지 않은 길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평생 행복한 가정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던 나는, 나와 결혼을 원하는 마지막 남자일지도 모를 그와의 이별을 선택하며 다시 혼자가 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아온 날들을 뒤로하고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하며 세례 준비 및 신앙생활을 시작한다. 동시에 4년을 망설여 오던 유튜브 채널도 시작해 두 달 만에 수익창출을 이뤄낸다.


엄청난 결정들의 여파는 이듬해까지 이어져 나의 2023년은 어느 때보다도 변화무쌍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3년 10월, 독일의 작은 마트에도 취직을 하며 드디어 온오프라인 동시 수익구조를 통해 복지 시스템을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10년 만의 쾌거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평생을 편안히 누릴 수 있는 "완벽한 복지 시스템", 하지만 딛고 일어서려 하면 할수록 더 깊숙이 빠지는 늪과 같았던 그 "완벽한 복지 시스템".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그 놀랍도록 단단한 복지 사슬을 끊어내고자 발버둥 친 게 자그마치 10년 세월이었다. 그 10년을 지켜봐 준 모든 이들이 나의 성공에 같이 기뻐해 주었다.  








김옥균의 "삼일천하"라 했던가? 나에게는 "삼십일천하"가 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23년 11월, 유튜브 채널이 개설 1년을 맞던 딱 하루 전 날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6주를 누워있게 된다.


처음에는 교통사고라고 인지하지도 못했을 정도로 가벼운 접촉사고에 불과했던 그 일로 인해 아이의 학교폭력 및 인종차별 피해가 수면 위로 드러났고, 고구마줄기처럼 삶의 다른 테마들도 이어졌다.


좋은 이웃과 친구들이 있었지만 한 번도 이민을 결심해 본 적 없던 여자가 아기와 얼떨결에 주저앉게 된 독일 땅에서 지난 10년 간 마구잡이로 쌓아 올린 인프라는 터무니없이 허망했다. 이제 정말로 결정할 때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독일로의 이민이냐!
아니면
한국으로의 귀국이냐!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6주 간의 병가 끝에 직장에 복귀하며 상사에게 3개월 뒤 영구귀국 소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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