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엄마가 가는 날이 왔다.
시계를 보고 또 보며 미뤄왔던 비행기 탑승시각은, 그러나 야속하게도 어김없이 임박했고...
엄마를 배웅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 앞에서 결국 우리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나는 엄마를 차마 쳐다보지도 못 한 채 아이를 품에 안고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었고, 엄마는 그런 나와 아이를 꽉 끌어안고 울었다.
정말 서러워서 울면 나도 모르게 훌쩍거리게 되지 않던가. 훌쩍거리지 않으려고 해도 그쳐지지가 않고, 도리어 목구멍을 비집으며 울음소리가 더욱 크게 새어 나왔다.
그 와중에도 아이가 놀랄까 눈물 사이로 흐릿한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니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숙연한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내 눈물을 닦아주는 엄마 손에서 휴지를 잡아 빼 내 눈물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 전에도 해본 적 없던 일이었지만, 빈이는 마치 언제나 엄마 눈물은 내가 손수 닦아주었다는 듯 그렇게 내 눈물을 닦고, 또 닦아주었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신기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가슴이 아파 엄마와 나는 또 한 번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 놀란다며 그만 울라고, 영영 못 볼 사이도 아니고 앞으로도 틈 나는 대로 보러 올 테니 잘 지내고 있으라고, 영 사는 게 어려워 보였으면 가는 마음이 불편했을 텐데 그래도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며 엄마는 마지막으로 우리를 안고 뽀뽀를 해주고는 홱 돌아서 들어가 버렸다.
엄마는 바리케이드 저편에 서서, 우리는 이쪽에 서서 끊임없이 손을 흔들었고, 엄마는 점점 멀어져 결국 계단 저 너머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엄마가 가버린 것이다.
엄마가 들어가고도 나는 한참을 그곳에 서서 울었다.
울고 또 울고 또 울었다.
울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나... 나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우리 엄마와 눈물 콧물 쏟아가며 가슴이 찢어지도록 생이별을 하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서 가족, 친척, 친구들도 다 버리고 남의 나라에서 이 어린아이와 살겠다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건가.
내 부모가 죽은 것도 아니고 버젓이 내 나라에 살아있는데, 나는 어쩌자고 이 만리타국에 떨어져 이 짓을 하고 있는가.
도대체 나는 뭘 위해서, 어쩌자고.
왜... 뭣 때문에...'
울다가 울다가 아이를 안은 팔이 아파오고, 목이, 허리가 아파오고, 다리도 아파왔다.
다시 집에 가려면 기차 타고 두 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이러고 서서 더 울다가는 진이 빠져 집에 못 돌아갈 것 같아 울음을 멈추고 집에 갈 채비를 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나...
그리고 생각의 생각 끝에 마침내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자!
독일이 좋아서 독일로 넘어온 것이 아니었다. 그 흔한 유럽에 대한 환상이나 동경도 없었다. 나는 유럽이나 서구세계보다는 아시아와 한국 전통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한 겨울에도 해가 쨍쨍한 한국에서 살다가 비엔나에서 첫겨울을 나며 두 달이 넘도록 해가 뜨지 않는 경험을 처음 해봤다. 우울해 죽을 뻔했다. 그런데 지금 사는 이 독일 북부 지역 날씨에 비하면 비엔나의 날씨는 휴양지와 같았다.
그나마 푸르른 자연환경으로 위안을 삼았지만, 그래도 친구도 없고 혼자 집에서 아기만 키우며 그간 정 붙일 일이 없었다, 독일에.
또 우리는 독일에 오래 살 계획이 없었다.
남편이 이제 막 일을 시작한 만큼 독일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 홍콩이나 대만, 중국 쪽으로 가기로 했었다.
독일은 그저 한몇 년 잠깐 거쳐가는 나라였을 뿐...
나도 화창한 아시아의 날씨가 그리웠지만, 독일서 나고 자란 남편은 우중충한 이 나라 날씨에 이골이 나 있었다. 그래서 조금만 더 참고 버티다 햇살 쨍한 아시아로 돌아가자고 늘 남편과 얘기했었는데...
사람이, 자기 나라를 떠나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려면 반드시 그 나라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그 나라에 대한 호감이 있어야 하고, 환상이나 동경도 어느 정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호기심과 동경으로 시작해 조금씩 그 나라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 나라 말과 문화도 배우며 이해가 깊어가고, 그 나라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 나라 식으로 먹고, 생활하며, 그 나라 사람처럼 생각하게 되고.. 그 나라에 대한 애정이 커지고..
그렇게 새로운 나라에 정착을 하는 것이다.
자국 문화를 버리고 사대주의에 빠지라는 것이 아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된다.
케이팝으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겨 한국에 놀러 왔다가 주저앉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역사를 배우며 이해가 깊어지고, 한국인들과 교류하고, 한국음식을 먹고, 한국인들처럼 생활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한국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게 더 편해지고... 한국에 대한 애정이 커지고.. 그런 것 말이다.
나는 그게 없었다.
내가 독일로 넘어온 건 오로지 딱 하나, 사랑 때문이었다.
내 남편이 아르헨티나 남자였다면 나는 지금쯤 아르헨티나의 어딘가에 있었을 거란 말이다.
그런데 영원할 것만 같던 그 사랑이 이제 산산조각 났다.
아이는 절반이 독일인이니 그렇다 쳐도 나는 정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것이다.
아무런 애정도, 흥미도 없이, 그저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내왔는데 이제 그 남자는 나와 이혼하는 것도 모자라 자기 자식도 안 보겠다고 하니, 그럼 도대체 나는 왜 이곳에 머물러야 한단 말인가.
내가 막 이런 처지가 되었을 때 나를 대하는 모든 한국 사람들의 의견이 똑같았다.
변변한 직업도 없는 여자가 애 딸린 이혼녀가 되어, 그것도 "혼혈아"를 데리고 한국에서 산다는 건 말도 안 되니, 아이를 위해 편견 없고 복지가 잘 되어있는 선진국 독일에서 어떻게든 자리 잡고 눌러살아라.
행여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어떨까 하면,
한국의 현실을 몰라서 그러나. 어떻게든 기를 쓰고 한국을 나가려고 하는 마당에 왜 거꾸로 돌아가려 하느냐. 젊은 애들도 취직이 안돼서 난리인데 그 나이에 애 데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뭐 해 먹고살 것이며,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허리가 휘청이는 한국 사교육비를 무슨 수로 혼자 감당할 것이며, 열악한 근무 환경에 장시간 아이는 어디에 맡길 것이고, 애 딸린 이혼녀 딱지는 차치하고라도 아빠 없는 혼혈아에 대한 싸늘한 시선은 어떻게 할 거냐. 죄 없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독일에서 살아라.
였다.
업어치나 메치나 나는 독일에 살아야 하는 여자였다.
핵심만 뽑다 보니 문장이 참으로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마 외국에 살면서 이혼을 고민하거나 이미 이혼을 한 사람들이라면 열이면 열,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나는 그전까지는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 속에서 그 전까지의 내 생활이 여기에 있었고 내 자식의 친부가 여기에 있으니까, 또 한국이야 상황이 어려워지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지만 독일은 내가 한번 정리하고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우니 갈 때 가더라도 일단 버텨보자. 버티려면 살 집이 있어야겠구나... 해서 정신없이 여기까지 달려왔던 것인데...
이제는 그 이유마저도 바닥이 나 버린 것이다.
혹시 내가 복에 겨운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면,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철저하게 가족끼리 모여 따뜻하고 화목한 연말연시를 즐기는 독일인 가족들 틈에서 매년 우리는 아무도 없이 아이와 둘이서 썰렁한 집에서 보내야 한다. 가족모임에 누가 이방인을 불러주겠는가.
내가 내 돈벌이를 스스로 하기 전까지는 한국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
가족이라고는 오로지 나와 아이 둘 뿐.
아이 유치원 입학식 때도, 매년 아이 생일 때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도, 다른 아이들은 엄마, 아빠,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에 형제, 자매들까지 와서 축하를 해주고 선물을 듬뿍듬뿍 받고 있을 때, 내 아이는 덩치 큰 그 독일 사람들 틈에서 오로지 머리가 새카만 작은 동양인 엄마 하나를 발견할 뿐이라는 것을...
내가 직장에 다닌다고 해도 어쩌다 일이 늦어져 픽업을 하지 못하거나 하는 날이면 아이는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모두 돌아가고도 가장 늦게까지 텅 빈 교실에 남아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학교에 우산을 잊어버리고 간 어느 날 비가 쏟아진다면, 아이는 아무도 데리러 와줄 사람이 없다.
전화로 급하게, "엄마, 난데 일이 늦어질 것 같아. 애 좀 데려와서 밥 좀 먹이고 있어 줘." 라던가 "엄마는 바빠서 이모가 데리러 가고 있다니까 조금만 기다려~"가 안 되는 것이다.
아빠가 없더라도 다른 가족들이 협력하면 어느 정도는 채워질 수 있는 이런 사소한 일상들이, 독일 하늘 아래 가족이 없는 우리 둘에게는 한 알 한 알 모두 아픔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게 내 아이의 유년기를 줄기차게 관통해 결국은 가슴 한편에 아버지의 부재를 깊게 새긴, 그래서 나이답지 않게 쓸쓸한 눈을 가진 청년으로 자라난다면...
엄마가 막 돌아간 빈자리를 느끼며 그런 생각들을 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식을 위해서 독일에 남는 다라...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납득할 만한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자식의 행복을 떠난 엄마 만의 행복도 존재할 수 없지만, 엄마의 행복 없는 자식의 행복도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나 스스로를 위해서도 찾지 못한 이유를 아이의 이름을 빌어 떠넘긴다면, 그 아이는 또 얼마나 부담스러울 것인가.
막말로, 누가 보장해준다던가.
엄마의 눈물과 희생을 먹고 독일 땅에서 자란 아이가 훗날 나에게 감사하며 행복할 거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아이를 보며 젊은 날 희생해 바친 내가 행복할 거라는 것을.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틀렸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서 지금을 포기할 수는 없다.
또한 한국도 사람 사는 땅이고 한국에도 미혼모, 비혼모들이 있을 것이며, 혼혈아를 키우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있을진대, 그들도 하고 있는 일을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있을까.
까짓 거 한국에 가고 싶으면 가는 거야 ㅡ
내 블로그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한다.
남편 보란 듯이 독일에서 자리 잡고 잘 사시라고... 꼭 버텨서 양육비 다 받아내라고..
그런데 나는 죄송하게도 그런 타입의 사람이 아니다.
나랑 끝난 사람인데 그 사람 보여주려고 독기 품고 이 아득바득 갈고 사는 거... 그럴 자신도 없고, 그렇게 살기도 싫다.
그렇게 살아서 마지막에 나에게 남는 게 무엇일까.
보란 듯이 출세하면 복수했다고 속이 시원하다 쳐도,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아 "보란 듯이"가 잘 안되면 비참하다는 뜻 아닌가?
그리고, 그 "보란 듯이"를 해내기까지 나와 빈이가 힘겹게 보내는 그 시간들은... 누가 돌려줄 건데..
내 새끼 건사하고, 나 건사하고,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열심히 살면 된다.
이미 끝난 남자.
그는 그의 갈 길을 가는 거고, 나는 아이와 함께 우리의 갈 길을 가는 거다.
나와 아이의 삶에 집중하고 오늘을 재미있게 보내면 "보란 듯이"까지 안 가도 이미 오늘부터 행복할 수 있는 걸 뭐하러 먼 길 돌아가나.
그들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냥 이게 바로 나다.
나라는 여자다.
이렇게 열심히 살다가 정 안돼서 한국에 간다고 해서 내가 패배자라거나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 번뿐인 인생이고 기껏해야 100년도 못 사는 인생인데, 장차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오십이 넘은 내 부모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가며 이별을 하고, 정도 없는 남의 나라에서 아이와 쓸쓸하게 억지 춘향이 노릇하며 살겠는가.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한국에서 살지, 독일에서 살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으로 가려고 독일에서 대충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현재 나의 기반은 독일 땅이고, 한국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독일에서 자리를 잡고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고민 자체도 바로 독일에서 자리 잡고 살기 위한 데서 시작한 것이니까.
왜 2-3년인가 하면, 내가 어느 정도 직업에 대한 방향을 잡는데만 지금부터 최소 2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아이가 어려 아무것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직업을 찾아가는 한편, 이 고민도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새로운 이유를 찾아볼 것이다.
더 이상 사랑 때문이라거나, 자식 때문이라거나 하는 남을 위한 이유 말고, 나 자신을 위한 이유를....
"왜 내가 독일에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나는 독일에서 살고 싶은가"를.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커피가 맛있는 우리 동네 작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카페 주인과 담소를 나눈다.
월초에는 한두 가지라도 나를 위한 쇼핑을 한다.
귀찮고 피곤해도 얼굴에 마사지팩도 하고, 홈트레이닝도 하며 나를 가꾼다.
매달 말일에는 예쁘게 차려입고 아이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데이트도 한다.
크고 작은 페스티벌에도 꼭 가서 아이 카로셀도 태워주고, 크레페도 먹는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친구들 가족을 불러 식사를 대접하고 좋은 시간을 갖는다.
집에 있기보다는 되도록이면 밖으로 나가고, 비가 오는 날만 아니면 산책을 나간다.
틈나는 대로 친구들 집에도 놀러 가 아이들을 놀리고, 나도 수다를 떤다.
주 2회 정도는 돈 걱정 안 하고 뜨끈한 목욕물 받아 아이랑 몸을 담그고 기분 좋게 목욕한다.
수십 가지가 넘는 빵과 치즈, 햄, 살라미들도 이것저것 사다 먹어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늘려가고 있다.
독어 수업도 없고, 놀이방도 안 가는 금요일이면 아이와 도서관에 가서 어린이 동화책도 읽고, 한 무더기 빌려온다. 교회 소속 문화센터에 학기마다 꾸준히 등록해 아이와 함께 수업도 듣는다. 다음 학기에는 내 운동 수업도 하나 넣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가 사람들도 만나고, 찬송가도 부르며 평온하고 즐거운 주말을 만끽한다.
또, "무터 킨트 쿠어"라고 보험사에서 돈을 내주는 3주짜리 엄마와 아기 여행을 신청해두었다. 4월이면 우리는 독일 북쪽 끝 바다에 있는 섬으로 3주간 여행을 떠난다.
별거를 결심했고,
보호소에 들어갔고,
집을 구해 보호소를 나왔고,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았고,
내 독일어 수업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스텝은,
바로 이렇게 내가 독일에서 살고 싶은 이유를 하나씩 찾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독일에 살면서도,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빈자리를 그리워하기보다는 아이와 둘이서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 조금씩 우리만의 일상을, 루틴을 만들어 가고 있다.
루틴...
독일 생활에 정을 붙이기 위해서 내가 찾은 방법이다.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