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오시고, 9월이 되어서야 나는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우리의 짐들을 가져와 하나씩 풀 수 있었다. 지난 4월, 나를 붙잡고 울며 사랑한다던 남편의 말을 믿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지 5개월 만이었다.
나와 엄마는 매일 짐을 정리하며 매일 같이 남편이 없앤 우리의 물건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돌아왔을 때는 남편이 이미 혼자 새 집으로 이사를 했고, 나와 아이의 짐은 이사 간 집에 단 하나도 없었다.
남편은 우리 물건이 지하실에 있고 아직 풀지 않았다고 했었다. 함께 사는 열흘 동안 남편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나에게 지하실 열쇠를 주지 않았고, 나와 아이는 한국에서 가져온 몇 벌의 여름옷을, 부지런히 손빨래로(지하실 열쇠를 안 준다는 건 세탁기도 사용을 못한다는 뜻이니까) 빨고 널어 말려가며 그 열흘을 버텼다.
그리고 열흘 뒤 우리는 간단한 짐만 챙겨 보호소로 들어갔고, 지하실에 있던 우리 짐은 지인들의 지하실로 다시 박스 채 옮겨져 내가 집을 구할 때까지 제대로 뜯어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사를 온 9월에서야 우리 짐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에도 유모차, 아기 식탁의자, 엄마가 결혼선물로 맞춰준 극세사 침구세트 같이 큼직큼직한 물건들이 사라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 유모차는 팔았고, 식탁의자는 이사 올 때 부서졌고, 침구세트는 더러워서 버렸다고 했다.
나는 그때 이미 두 달간 한국에서, 남편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으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고, 그런 와중에도 부부관계 회복을 위한 카운슬링을 받았기 때문에 가정을 지키고자 더는 캐묻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주었다.
그런데 그 가정은 깨졌고, 내 짐들은...
그런 식이었다.
옷장을 정리하면, 내 카디건이 안 보였고, 신발을 신으려고 보면 찾는 신발이 없고, 샤워를 하고 입으려고 보니 목욕가운이 없고, 안경이 없고, 치마가 없고, 모자가 없고, 내가 입던 잠옷, 츄리닝까지...
가장 쇼킹했던 건 겨울 옷과 책이었다.
독일어 공부를 하려고 보니 책이 없는 것이다. 그때 알았다. 내 책들을 전부 버렸다는 걸..
너무 정신이 없어서 책은 신경도 못 쓰고 있었는데, 이케아 16칸 책장에 앞뒤 두줄로 꽂혀있던 내 한국어 책이.. 어림잡아도 200권이 넘는 내 책들이...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책은 정말 나에게 소중하다. 독일로 넘어온 지난 3년간 틈틈이 한국에서 엄마한테 부탁해 부쳐달라 하거나 한 번씩 한국에 가면 10킬로가 넘게 낑낑거리고 가져와 차곡차곡 모은 건데..
겨울 옷도 그랬다. 여기는 이미 9월 중순부터 추웠는데 스웨터 좀 입으려고 보니 없어서 엄마한테 물어보니, 겨울 옷 윗도리가 글쎄, 단 두벌 빼고는 없다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정말.. 옷장에 있는 거라고는 남편이 자기 정장세트나 비싼 구두를 구입하면 양심에 찔려 나한테 대여섯 벌씩 무더기로 쏟아주던 H&M 티 쪼가리들 뿐이었다. 기가 찼다. 어이가 없었다.
아이 물건은 더 심했다.
걸음마 보조기, 막시 코시 카시트, 누르면 소리 나는 치코 장난감, 엄마가 사서 보내준 15만 원이 넘는 귀여운 곰돌이 우주복, 곰돌이 조끼, 겨울 필수품인 푸스싹, 모자 목도리세트, 수유쿠션, 아기 샤워가운, 신발, 스토케 욕조, 장난감폰, 심지어.. 빈이 태어났을 때 오스트리아에서 알고 지내던 언니가 선물로 준 2014년도 말이 그려진 기념 은화까지...
나는 명품이 하나도 없다.
부끄럽지만 바꿔 말하면 내 물건은 전부 싸구려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대학생이었고, 졸업 후 바로 결혼해서 가정주부로 살았다. 지난 3년간 나는 내 계좌도 없었고, 아직 젊은 남편이 생활력 없는 외국인 아내 먹여 살리느라 벌써부터 혼자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 그렇게 수전노같이 굴어도 불평 않고 늘 고마운 마음으로 살았다.
단 한 푼도 허투루 써본 적, 맘 편히 써본 적 없었다.
늘 고마웠고, 늘 미안했으니까.
게다가 나는 역시 부끄럽게도 쇼핑이나 내 몸치장에 별 관심이 없는 여자다. 내가 아는 명품 브랜드도 샤넬, 구찌, 루이뷔통, 몽블랑이 전부다. 롤렉스도 있겠네. 그것도 그냥 들어본 이름이지, 누가 입거나 걸치고 있어도 잘 못 알아보겠다.
다른 여자들은 잘 아는 것 같아서 왠지 부끄러운 마음에 좀 찾아도 봤지만 봐도 모르겠고, 재미도 없고, 솔직히 관심도 없고 그렇다.
여자가 화장품 안사고, 옷을 안 사고, 보석은 생각도 해본 적 없고, 구두나 백에 관심이 없다는 건 정말.... 나는 같이 살기에 정말 저렴한 여자였을 것이다. 카드를 손에 쥐어줘도 매달 50만 원가량 되는 돈으로 생필품밖에 살 줄 몰랐으니.
창피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여자였다.
그래서 내 물건은 사실 팔아먹을 게 없다. 20유로짜리 카디건, 10유로짜리 운동화, 비싸 봐야 40유로짜리 백을 어떤 여자가 중고로 사겠는가. 패션업계에서 일하며 누구보다 옷을 좋아하고 쇼핑이 취미인 남편이다. 아마 내 물건은 전부 쓰레기통 행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나보다 나았다.
중고래도 부가부 유모차에 막시 코시 카시트에 스토케 욕조가 있었으니. 없어진 아기 물건 대부분은 아주 예쁘거나 돈이 될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들로 봐서 평소 이베이로 중고옷이나 물건을 사고파는 게 취미였던 사람인만큼 팔았을 것이다.
지난 9월은 눈뜨면 매일같이 사라진 내 물건, 없어진 아이 물건을 발견하며 엄마와 함께 기막혀하고, 억울해하고, 마음 아파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추억이 담겨있고, 내가 아꼈고, 내가 좋아했던 물건들, 멀리 살아 태어나고 단 두 달 밖에 못 안아 본 손자를 위해 엄마가 비싸도 예쁘고 예쁜 걸로만 사서 계절 계절마다 보내줬던 옷들이 어디 버려졌는지 팔아치워 졌는지..
나는 그 목록들을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다.
전부 돌려받지는 못해도 대략의 금액을 정산해 일부라도 돌려받길 원했다.
그보다 더 원한 건 사과였다. 내 동의도 없이 내가 없는 사이에 내 물건을, 아기 물건을 버리고 팔아 치운 다는 게 말이 되기나 하나?
지금이야 감정이 많이 정리가 돼서 엄청 담담해진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없어진 물건들을 알아차릴 때마다 화가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엄마가 더 분해했다. 그럴 만도 하지. 아기 물건의 90% 이상이 엄마가 보내준 것들이었으니까.
자기의 어린 자식이 쓰던 물건들을 중고시장에 올리고 내다 팔며 몇십 유로의 돈을 손에 쥐면서 남편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러던 9월의 어느 날, 나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우리가 함께 살았던 옛날 집, 이웃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로부터 나와 아이가 한국에 간 뒤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었는지, 내가 몰랐던 많은 것들을 들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