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내연녀가 쳐 놓은 덫

by 뿌리와 날개

엄마가 온 첫 주에 우리는 함께 시내에 나갔다.

거리를 걷고 있을 때 어디선가 많이 보던 할아버지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지나갔다.



"K!"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다름 아닌 우리 세 식구가 지난 1년간 함께 살았던 집의 1층 사시던 할아버지였다. 밝고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시던 그 할아버지는 우리 빈이를 무척 예뻐하시던 자상한 분이다.



빈이가 38일 때 이사를 와서 돌 지날 때까지 커가는 모습을 다 지켜보셨고, 아이가 이앓이를 할 때도, 처음 뒤집기를 할 때도, 앉고 기고 서며 하나씩 성장할 때마다 같이 기뻐해 주시던 그런 할아버지였다. 그는 나를 보자 자전거에서 내려와 얼른 나를 안고 양 볼을 비비며 반가움의 인사를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네가 다시는 독일로 못 돌아올 줄 알았어.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더니.. 네가 한국으로 가고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



남편이 토요일 밤에 한국행 편도 티켓을 끊고, 일요일 오후 3시 비행기로 나와 아이는 한국에 갔다. 한 건물 살던 이웃들 입장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 보며 인사하던 3층 사는 아낙과 아이가 온다 간다 말도 없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셈이다.



남편은 이웃들에게 내가 아기와 한국으로 휴가를 갔다고 했단다. 그러나 다들 알고 있었다. 내가 원래는 일주일 뒤에 비엔나로 아기와 둘이 일주일 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는 사실을...



그랬다. 이미 한 달 전에 나는 아이가 돌이 된 기념으로, 우리가 신혼생활을 보내고 또 아이가 태어난 비엔나로 지인들도 만날 겸 비행기표며 호텔까지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아이 낳고 지난 1년 간 휴가는커녕 아기 없이는 외출조차도 한 적이 없어서 큰 맘먹고 가겠다고 지른 여행이라 매일 같이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내는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알린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는 그 상태에서 남편에 의해 한국에 보내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5월 중에 새 집으로 이사하기로 한 것 또한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에 4월 중순에 갑자기 한국행 비행기는 정말 얼토당토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남편은 그 뒤로 나와 아기의 짐을 하나둘씩 팔아치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기 식탁의자를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걸 보고 할아버지는, 아이가 아직 어려서 계속 필요할 텐데 저걸 왜 벌써 팔지? 했다고 했다.



나한테는 이사오다가 부서져서 버렸다고 했는데 팔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때부터 알았다. 없어진 아기 물건들이 팔렸을 것이라는 사실을...



쓰레기통을 열어보면 멀쩡한 새 이불도 버려져있고, 여자 옷과 조그마한 여자 신발들도 버려져 있었다고 했다. 그 건물 8가구 중에 1,2층 사는 6가구는 모두 칠순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40년도 넘게 같이 산 사람들이라 서로 생일파티도 해주는 사이다.



누구네 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아는 사이들이란 뜻이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젊은 여자 옷가지와 신발들이 누구 것인지는 말 안 해도 안다.



하도 물건들을 버려대느라 쓰레기통이 매일 같이 차고 넘쳐서 다른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릴 수가 없어 할아버지가 한 번은 붙잡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남편 왈, 곧 이사 갈 거라 필요 없는 건 버리고 새로 사려고 그런다고 했단다.



게다가 우리가 사라진 그다음 날부터 웬 여자가 매일같이 우리 집에 드나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알다시피 한가하고 심심하며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는 이 나라 노인네들은 평소에는 안 보는 척, 남일에 관심 없는 척 해도 늘 창문 밖으로 빼꼼히, 누가 어딜 갔다 오나, 몇 시에 갔다 몇 시에 들어오나, 뭘 버리나 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아내와 아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남자 혼자 남아 처자식의 물건들을 내다 팔고 버리는 와중에 새 여자가 매일 같이 드나든다... 모든 노인네들의 관심이 온통 그리로 쏠렸을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을 터.



나는 한국에서 돌아와 그때까지 지난 두 달간 우리가 어떻게 지냈는지, 남편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 얘기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난 할아버지는 한마디 더 보탰다.



"사실은 말이야.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네 남편 이상한 거...

그.. 우리 집 옆에 호숫가 있잖아. 거기 자전거 타고 지나가다 몇 번 봤거든. 니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바로 안 가고 벤치에 앉아서 어떤 여자랑 통화하는 거. 이상하다 이상하다 싶었지..


그리고 저쪽 동네에 있는 우체국 근처에서 어떤 여자랑 같이 있는 것도 봤어. 그 여자가 매일 드나들던 그 여자 같더라. 근데 뭐 내가 너한테 그런 얘기를 해줄 수도 없었고..


그냥 우리 와이프한테만 얘기했었지. 저 집 신랑 이상하다고. 저 남자 암만 봐도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분명 내 느낌이 맞을 거라고 했는데 진짜였어. 진짜였네.

에휴.. 믿을 수가 없네. 이렇게 젊고 예쁜 아내를 두고.."



할아버지는 내 손을 붙들고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두 눈 가득 눈물이 가득했다. 나는 이미 울고 있었고.. 그래도 아이랑은 잘 만나고 지내냐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를 안 보려고 한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크게 놀라며 뭐 그런 사람 같지도 않은 놈이 있냐며 흥분하셨다. 너 랑이야 헤어질 수도 있지만-_-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식을 안 보고 살 수가 있냐며...



나는 내 새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드렸고,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매일같이 옷장에서, 집안 곳곳에서 내 어떤 물건들이 사라졌는지 발견하며 속이 부글부글 끓던 시기였다.



참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동안은 시내에 있는 그놈 회사 브랜드 옷가게 앞을 심장이 떨려 똑바로 쳐다보고 지나가지도 못하던 나였다. 그놈 사무실은 옆동네였지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매장에도 나와 일을 한다.



그보다 더 심장이 떨린 이유는, 남편과 바람이 난 그 상사가 주말마다 나와서 매장을 관리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돌아와 남편과 같이 살았던 마지막 열흘간 매일같이 전화해서 나와 아기를 내쫓으라고 소리 지르던 그 여자. 무서운 여자...



동거남과 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유부남 부하직원인 내 남편과 뒹군 건 그 여자고, 나쁜 짓을 한 건 그들인데 왜 그들은 저토록 당당하고, 아기와 비참하게 버려진 나는 그들과 마주하는 게 두려운 걸까.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우리 엄마가 옆에 있었다. 나는 무섭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 기막힌 꼴을 모두 본 증인도 있고, 그 자식은 두 달이 넘도록 부양비도 주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한테는 우리가 한국으로 가고 난 뒤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진 거라고 했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은 바람이 난 사이라고 하지 않는가.



모든 퍼즐이 짜 맞춰졌다.



왜 그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미친 듯이 일만 하기 시작했는지,

왜 우리가 잘 때 출근하고 잘 때 퇴근했는지,

왜 내가 대화 좀 하자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피했는지,

주말에 아이랑 어디 좀 가자고 하면 늘 다음으로 미뤘는지,



그리고... 2월 언젠가 회사 동료 생일파티에 가던 날, 그 여자 동거남이 운전을 하는 차 안에서 무슨 말 하는지 나도 대화에 끼워달라며 묻던 내 입을 막고 나를 무시한 채,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릴 때까지 나에게는 한 마디도 없이 왜 그 여자와만 20분이 넘도록 깔깔거리며 대화를 했었는지도....



그들은 이미 진작부터 함께였고, 모든 판을 같이 짠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깔끔하게, 법적으로 문제없이, 최소한의 돈으로 이 동양에서 온 세상 물정 모르는 촌뜨기 아내와 쥐알만 한 아이를 그의 인생에서 아웃시킬 수 있을지 말이다.



단순한 부부싸움이 홧김에 불처럼 번져 걷잡을 수 없게 돼버린 게 아니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함께 계획을 했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어리석게도 그들이 쳐 놓은 덫에 걸린 것이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아끌고 그 매장으로 갔다.



"엄마. 그 여자 얼굴 좀 보자. 엄마도 궁금하지? 내가 보여줄게. 금요일이니까 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매장 안에 그 여자는 없었고, 흥분해서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또 다른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슨 도움이 필요하냐는 물음에 매니저를 보러 왔는데 없으니 됐다고 했다. 메모를 남겨줄까 하고 묻길래 그런 건 필요 없고 나는 누구누구 와이프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직원은 우리를 안다며 아는 척을 했다. 그럴만하다. 작년 가을까지는 남편네 회사로 유모차 밀고 자주 갔었으니까. 남편은 언제나 나와 아기를 회사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했고, 늘 나에게 회사로 좀 놀러 오라고 했었다.



우리가 놀러 가면 사무실 전 직원에게 우리를 소개했고, 한 번은 사무실 책상 아래 자리를 펴고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앉혀놓고 놀리다가 같이 퇴근을 한 적도 있다.

그는 그런 남편이었다.



적어도 작년 가을까지는...










잘 지내냐는 물음에 나는, 아니라고 했다.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여느 때처럼, 그 당시에는 누굴 만나도 내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하소연하고 다닐 때라 똑같이 그렇게 말했다. 그 여자와 바람이 난 것까지.



나는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는 남편이 일하는 사무실도 아닐뿐더러, 그의 이야기이지만 분명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남편은 이미 진작부터 회사 사람들에게 내 아내가 의부증이고, 미쳤다면서 자기를 괴롭힌다고 밑밥을 깔아놨다고 했다. 그는 거짓도 떠벌리고 다녔는데 나는 내 일이자, 사실인 것을 말 못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남편은 자기 할 도리인 돈도 안 주고 있지 않은가.

더 나빠질 게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 두 달간 이성을 지키며 참아왔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그 두 연놈을 아는 그 누구라도,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B라는 그 직원은 내 얘기를 듣고 나더니 나에게 이름과 전화번호를 주며 무슨 도움이 필요하거든 연락하라고 했다.



명함을 받아 나오며 나는 그러나, 생각했던 것처럼 속이 시원하거나 후련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것 마냥 갑갑하고 뭔가 찝찝하고, 그리고 불편했다.



아무리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려 해도, 방금 내가 한 행동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내가 너무 찝찝해하자 엄마는 니 입장에서 그 정도 말도 못 하고 다니냐고,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영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나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종이를 한 장 받게 된다.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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