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를 모아 새 변호사를 찾아가다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게 9월 초순쯤의 일이다.
친구를 데려가 변호사가 한 말을 함께 들었으니 나중에 시간을 내어 친구로부터 차근차근 다시 들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워킹맘이자 싱글맘이다. 게다가 직업상 주말이면 퇴근 없이 이틀 연속 근무도 예삿일이었다.
그런 때면 친정엄마가 주말 동안 아이를 돌봐주시는데, 그녀는 주중에 휴가를 받을 때면 아이를 유치원에도 보내지 않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9,10월 내내 그녀는 그렇게 바빴다. 때때로 아무도 시간이 안될 때면 내가 아이를 돌봐주기도 했다. 그런 그녀를 붙잡고 변호사가 무슨 말을 한 거냐고 이해가 될 때까지 물고 늘어질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만날 때마다 관공서 편지를 내가 잘 이해한 것이 맞는지, 내 독일어 작문은 어떤지 등등 묻는 게 많은데, 아이들 함께 놀리려고 만날 때마다 내가 그렇게 귀찮게 군다면 아무리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 한들 나와의 만남이 즐겁겠는가.
그녀가 나를 물심양면 돕고 있고, 나 역시도 끊임없이 도움이 필요한 게 맞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로 맺어진 우정이다.
내 전담비서나 통역가, 골치 아픈 일 처리반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녀의 도움은 어디까지나 자발적 호의이지 나의 권리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그녀의 삶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는 또 내 문제를 처리해나가야만 했다.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양육비 지급 문제, 그리고 변호사 수임료 액수를 물었더니 "35유로"라는 대답.
시간당 35유로도 아니고 내가 찾아간 그날부터 지금까지 모든 일을 통틀어 35유로를 받는다는데, 그녀가 직접 물어보고 내게 알려준 것이니 틀림없는 사실일 테지만, 터무니없는 돈이었다.
그 당시 나는, 그 돈을 받고 저 변호사가 무슨 일을 제대로 하고 싶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김에 8월부터 고민해왔던 일, 바로 "일 잘하는 변호사"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1.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이 남편을 처벌할 방법이 있을 거라고 했다. 나를 속여 한국으로 보낸 뒤, 혼자 나와 아기의 물건들을 정리했고,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린 일련의 사건들이 이토록 비정상적인데 방법이 없을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2. 팔아치운 물건들 목록을 적었더니 내 변호사는, 네가 이 물건을 정말 가지고 있었던 게 맞는지 영수증을 내던가, 사진들이라도 가져오라고 했다.
영수증은 없지만 사진은 어느 정도 제출할 수 있겠다고 했더니 그 물건이 네가 잃어버린 건지 남편이 없앤 건지 그 증거는 또 어디 있느냐고 했다. 그런 식이면 니 남편도 네가 자기 물건을 없애고 팔아치웠다고 고소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3. 백번 양보해 버린 건 그렇다 치고, 이베이 중고사이트에 계정 조회를 요청하면 팔아버린 것 만이라도 증거가 나오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며 나더러 남편 아이디를 찾아 스스로 검색해서 찾아내라고 했다.
내가 나름의 대책이라고 내놓아도 변호사는 매번 퇴짜를 놓았고,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며 요리조리 나를 훼방만 놓는 것 같았다. 한동안 나는 저 변호사가 정말 나를 변호하는 게 맞는지, 남편은 가장 좋은 변호사를 선임한다고 했는데 그 자식 변호사와 내통한 건 아닌지, 그녀의 부정부패를 의심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지금은 내가 틀렸고, 그녀가 옳았다는 걸, 더 이상 연연해봐야 답도 없고 시간낭비라는 걸 안다.
머릿속이 정리가 되었으니.
그러나 9월 초 당시만 해도 막 이사를 해 짐 정리를 하며 매일매일 없어진 나와 빈이 물건들을 알아차리던 때였다. 그나마 유럽 물 좀 먹었다고 쿨해진 내가 그럴진대, 순도 100% 한국인 정서의 우리 엄마는 오죽했을까.
개 같은 사위 자식 멱살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딸년 속 문드러질까 그 분함을 삭히고 또 삭혔을 엄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 집 살림을 정리해나가며 엄마가 깊은 한숨을 쉴 때마다 나는 울화통이 치밀었고 분했다.
내 정신상태 또한 아직 온전치 않았다. 보호소에서 새 집으로 이사하기 직전에는 손발까지 떨고 아이와의 관계도 문제가 생길 정도였으니까.
나는 증거가 없다는 변호사의 말에 남편과 주고받은 메시지들, 내가 한국으로 갑작스럽게 쫓겨난 것이라는 정황 증거들(일주일 뒤로 예정된 비엔나행 여행 티켓과 호텔 예약 메일, 4-6월 문화센터 아기수업 신청내역 등)을 찾아 USB에 담았고, 그동안 나에게 벌어진 일들을 새 변호사가 읽기 쉽게 일목요연하게 적었다.
감정 다 빼고 사실만 적어도 A4용지 세장 분량이었다. 그리고 남편이 버리고, 판 물건 목록도 A4용지 세장에 적었고, 예전에 살던 집을 찾아가 이웃 할아버지에게 당신이 본 것을 써달라고 했다.
이것도 참 할 말이 많다. 나는 요즘 들어 나의 일들을 통해서 나뿐만 아니라 주변 세계에 대한 다양한 일들까지도 보고, 듣고, 겪고, 느끼며 인간사, 세상사에 대한 고찰을 내 일평생 그 어느 때보다도 자주, 또 깊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날 역시도 새로운 것을 보았다.
지난번 할아버지가 내게 얘기했던 그 모든 것들을 편지로 작성해주십사 했을 때 당황스러워하던 그의 얼굴..
바보 같게도 나는 필력이 없음을 부끄러워서 하시나, 아니면 거창하게 써 달랄 까 봐 부담스러워하시나 싶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한 시간이 돼가도록 뒷마당 땡볕에 나를 세워놓고 "내 그놈 그럴 줄 알았지" 같은 영양가 없는 말만 중언부언하며 편지를 써달라고 거듭 부탁하는 나의 논점을 흐리기를 반복했다.
나중에 나에게 다가와 무슨 일이냐 하기에 "남편이 나와 아기 물건을 팔고 버렸다는 것을 법적으로 증명해줄 수 있는 이웃주민들의 편지가 필요하다"는 내 한마디에 당장 쓰러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뭐하러 여기서 떠들고 있냐며 냉큼 따라 들어오라는 2층 할머니를 보고서 알았다.
할아버지는 편지를 써주면 자기에게 무슨 책임이 돌아올까 그게 싫어서 에둘러 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증거가 될만한 편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내 말에 2층 할머니는 자기가 본 것들을 몇 가지 말씀해주시고는 알겠다며 바로 자기 집으로 들어가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1층 할아버지 집 거실에서 그들 부부와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좀처럼 편지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벌써 두 시간이 다돼가도록 나에게 이것저것 묻기만 하고, 나는 그가 묻는 대로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느라 목도 너무 아팠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직접적으로 "이제 다 들으셨으니 제발 편지 좀 써주세요" 하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아니... 저 할멈이 편지 써오면 나는 그냥 그 밑에 서명만 하면 안 될까? 그래도 진짜 편지랑 똑같아"
"그럼 진짜 편지를 써주세요. 실제로 본 건 할아버지가 더 많으시잖아요. 할아버지가 보고 들으신 게 더 중요한 증거란 말이에요."
"음.. 그게 말이야... 저 할멈이 써온 걸 일단 읽어보고 적을게... 나도 잘 모르겠어서..."
지난번 길거리에서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내 손을 꼭 잡고 안쓰럽다며, 미주알고주알 그놈이 뭣을 어쨌고 저쨌네를 읊어주신 덕에 나는 여름 내내 잡아왔던 한 줄기 이성의 끈을 놓치고 삘 제대로 받아 매장으로 달려가 접근금지까지 받아왔는데...
내가 이렇게 처지가 어려우니 제발 보고 들으신 거 편지 한 장만 써달라고 하니 저렇게 꽁지를 내리다니...
자청해서 써주실 줄 알았는데 너무나 의외였고, 놀라웠고, 실망스러웠다.
반면, 20여분 뒤 편지를 들고 나타난 2층 할머니 역시도 너무나 의외였고, 놀라웠다.
우리 가족을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웃음도 별로 없었고, 계단 청소하라고, 조용히 다니라고,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기 일수였던 할머니였다.
늘 웃음 넘치고 다정했던 할아버지와 대조적이라 나도 늘 어려워했었는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편지를 써주겠다고 자청을 하시다니...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구별할 수 있다고 했던가.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은 늘 의외의 인물이라고 했던가.
맞다.
내 지난 5개월의 경험을 보면 100% 맞는 말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사람이 내 손을 놓기도 하고, 전혀 기대 않던 사람이 내 손을 꼭 붙들기도 했다. 내가 이런 상황에 놓이자 연락이 끊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된 뒤로 더 끈끈하게 나를 챙겨주는 사람도 있다.
2층 할머니는 편지를 전해주며, 내 손을 꼭 잡고 힘내라고, 다 잘될 거라고 단 두 마디만 하며 돌아갔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단출했지만, 그분의 진심이었다.
때로 사람의 진심이 헷갈릴 때면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봐야 한다는 말을 나는 자주 되새기는데 그때도 그랬다.
그때까지도 할아버지는 편지를 안 쓰고 있다가 2층 할머니가 써온 편지를 읽고서야 마지못해 등 떠밀리듯 방으로 들어가 쓰기 시작했다.
다 쓰고 나오시기에 이제 됐나 싶었는데, 써 온 걸 보니 가관이었다.
퇴근하고 호숫가에서 여자랑 통화하거나, 밖에서 여자랑 있다 마주친 내용 등 불륜의 증거가 될만한 내용은 다 빼고, 물건 버리고 판 것도 최소한으로 쓰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여자가 들락거렸다던 것조차도 "여자가 오는 것을 본 적이 있기는 한데 그 여자가 바람 난 그 여자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으나 부디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썼다.
이게 무슨 말장난인지 ㅡㅡ
나한테 말할 때는 매일같이 들락거렸다더니 편지의 뉘앙스는 1회성에 그쳤다.
하... 2층 할머니는 한 페이지를 꽉 채웠는데 할아버지의 편지는 절반도 안되었다. 말 많은 할아버지에 어울리게 차라리 보이스 레코더를 켤 걸 싶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아내 어쩌고 하며 내 손을 주물럭거리고 내 얼굴에 열 번도 넘게 한 뽀뽀를 토해내라고 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쩌겠나.
치사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가는 걸, 불필요한 남의 일에 얽히고 싶지 않은 마음.
그거라도 써주심에 감사해야지.
나는 그렇게 증거들을 모으면서 어렴풋이 느낌이 왔다.
증거랄 게 참 변변치 않구나.
어쩌면 남편이 나에게 한 일들은 도덕적으로 비난은 받을지언정 법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는...
새 변호사는 내가 주변의 독일 사람들 4명 중에 3명에게 추천받은 여자였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복지분야에 연관되어 일하는 사람들의 추천이었고 추천해 준 3인이 서로 모르는 사이였음에도 같은 이름이 나왔다는 건 정말 믿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1년 전부터 나가던 아동보호센터 산하 베이비 모임에서 알던 요한나 아줌마가 나와 함께 그 변호사에게 가주었다. 9월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다.
그렇게 능력 있고, 여성과 약자 편에 서서 남자들을 후들후들하게 몰아붙인다던 새 변호사는 내 서류를 꼼꼼히 읽어보더니, 내가 내 변호사로부터 듣고 실망해마지 않았던 그 내용들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나에게 똑같이 말했다. 약속이나 한 듯이...
그랬다.
내 변호사는 이미 충분히 일을 잘하고 있었고, 내가 정확한 양육비 지급체계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건 내 독어가 모자라서 그런 것일 뿐 실제로는 잘 돌아가고 있었으며, 남편이 한 짓에 대해서는 그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증거 불충분으로...
심지어 새 변호사는 한술 더 떠 나에게 그런 말도 했다.
"당신 남편이 바람 난 게 맞긴 합니까? 당신을 간편하게 떼어내 버리려고 그랬을 수도 있지요. 문자메시지를 봤다고 했는데, 파일이 남아있습니까? 없다면 두 사람이 바람피우는 장면을 찍은 사진 같은 건요? 이웃이 봤다고 했는데,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얼마 동안 함께 있었는지 진술할 수 있나요? 그냥 친구로서 단순 방문한 거면 어쩔 거죠? 그리고 집에 온 그 여자가 당신이 말하는 그 직장상사와 동인 인물이라고 진술할 수 있습니까?"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악질 사건만 맞는다더니, 접근하는 자세부터 달랐다.
그게 변호사의 눈이라는 걸 나는 태어나 생애 두 번째 변호사와 접견하고서 깨달았다. "법"이란 그런 것이라는 걸 고등학교, 대학 때 배웠는데도, 막상 사회에 나와 처음으로 직접 겪어보니 쉽지 않았다.
나는 억울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고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원망의 말을 하기로 했다. 한 번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닌가요? 다들 증거가 없다고만 하는데 내가 찾아온 것들도 증거 맞거든요. 나는 하루아침에 살던 집도, 내 물건들도 다 없어지고 보호소에서 살다 이제 겨우 집 찾아 정리 중이에요.
여기 이 자리에 앉아있는 내가 바로 산 증거라고요!! 남편은 애도 안 보겠다고 하잖아요. 매일 같이 이렇게 억울한데, 어떻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거죠? 이게 법인 가요?"
그러자 새 변호사는 서류를 덮더니 나를 쳐다보며 딱 한마디 했다.
"당신 남편, 똑똑하거든요."
내 변호사도 그날 화를 내며 그런 말을 했었다. 저 여자 남편은 똑똑하면서도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하는데, 저 여자는 조심을 해도 모자랄 판에 어이없는 실수나 하고 다닌다며...
그랬다.
변호사들도 안다.
내가 억울하다는 걸.
다만 내 친구들이나 가족들처럼 "나쁜 놈, 세상에" 같은 말만 하지 않을 뿐.
서류를 읽어보면 뻔했을 것이다.
독일어도 못하고 현지 실정에 어두운 외국인 아내와 약아빠진 현지인 남편.
그리고 불륜.
흔해빠진 이혼소송...
국제결혼으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 로맨틱하고 달콤해 보이는 국제결혼이 깨지면 더 더럽다.
강자와 약자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나도 하트 뿅뿅 나오던 연애시절과 혼인 중에 잘 살 때는 좋은 케이스만 들었지 나쁜 말은 들어본 적 없다. 가끔 들어도 남 일이었을 뿐.
그러나 이렇게 되고 보니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내가 아는 독일 남자랑 태국 여자는..", "내가 아는 독일 남자랑 일본 여자는.." 하고 별의별 거지 같고 엿같은 이혼 케이스를 다 듣는다.
잘 살 때에는 그런 말 들을 일이 잘 없지만 깨지고 나면 넘쳐난다. 심지어 독일 여자들조차도 "독일 남자들 애스홀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우리가 결혼율이 낮은 거야. 에휴..." 했다.
한국이나 독일이나 상종 못할 인간들은 언제나 있다. 독일 남자라고 다 성실하고, 젠틀하고, 가정적인 게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이혼한다고 나처럼 만천하에 떠드는 여자보다 조용히 사는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을 뿐...
그러니 변호사들은 불필요한 차 떼고 포 떼고 핵심만 잡아줬던 건데, 나는 내 일이고 보니 그게 되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변호사와의 만남을 통해 남편이 처음부터 바람을 피운 적이 없다는 가능성 또한 생각해보게 되었다.
새 변호사의 예리한 질문들에 대답하며 나는, "남편의 바람"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모두 "남편 본인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남편의 세치 혀 말고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것이다. 물론 상간녀 역시도 부인했고 도리어 나에게 분개했었다. 할아버지의 목격담도 바람을 증명할 수는 없다.
무슨 반전영화 같지 않나? 나는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등줄기가 오싹했다. 새 변호사의 말마따나 남편이 나를 쉽게 떼어버리고자 결백한 자기 상사를 걸고넘어졌을 수도, 충분히 있는 일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남편이 바람났다고 부들부들 거리고 다닌 그동안의 나는 정말 미친년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일까?
내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던 세상의 모든 것이 뒤집어지고 있었다.
새 변호사의 사무실을 나오며 나는 이제, 더 이상 별거 이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변호사를 바꾸는 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애당초 새 변호사를 찾아가기 전 결심했던 일이다. 조금이라도 소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으면 사력을 다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더 이상 매달리지 않고 깨끗하게 포기하기로.
나의 독일어로는 여전히 현재 변호사의 능력을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새 변호사를 통해 현재 변호사의 능력을 검증받았다. 그러니 이제는 믿을 수 있다. 그거면 되었다.
내가 지난 세 달간 블로그에 글을 잘 올리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더 이상 남편을 씹는 게 흥미롭지 않았고, 귀찮아졌다. 긴 얘기 쓰기도 골치 아프고, 사는데 도움도 안 되고, 내 마음만 어지럽히는...
다만, 시작을 했으면 맺어야겠기에, 최소한 여기까지는 써야 읽는 사람들도 정리가 되겠다 싶어 요 며칠 억지로 억지로 글을 썼다.
여기까지가 지난 9월 말까지의 일이고, 두 달간의 시간이 더 흘러, 요즘 나와 아이는 사는 게 즐겁다.
큰 문제들도 꽤 많이 정리가 되었고.
앞으로는 현재 우리들의 삶에 대해 글을 자주 올릴 생각이다.
"카르페디엠"
이게 바로 나와 아이의 키워드다.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