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금지명령

by 뿌리와 날개

변호사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도저히 내 독일어로는 판단을 못하겠어서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같이 가달라고..



그리고 그녀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변호사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건가요!" 하고는 몇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뭔가 불길한 감이 왔고, 음.. 내 예상은 맞았다.



친구가 받아 훑어 넘기는 서류들 틈에서 나는 굵고 눈에 띄게 쓰인 "Hausverbot"를 보았다. Verbot는 보통 흡연 금지, 건널목 횡단 금지 등 금지구역을 표시할 때 쓰는 말인데 하우스 페어보트는 처음 보는 단어였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접근금지명령"이라는 것을...

순간 겁이 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지난주 내가 남편의 회사 브랜드 매장에 가서 주절주절 떠들고 온 것으로 남편은 나에게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한 것이다.



변호사는 나에게 왜 도대체 그런 짓을 했느냐며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 줄 아느냐고 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더 이상 나와 아이에 대한 부양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차피 남편은 돈을 내지도 않잖아요?"라고 되물었는데, 그때 변호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제발 남편이 돈을 안 낸다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당신이 지금 정부로부터 받고 있는 돈이 전부 남편 돈이라고요!!

남편의 부양 의무가 사라지면 지금 정부로부터 받는 돈이 모두 날아간다는 뜻이에요! 알아듣겠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이래로 처음으로 두려움에 내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페트병이 쪼그라들듯 순간적으로 심장에서 모든 피들이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오그라 붙어 딱딱하게 되는 것처럼... 놀랐고, 겁이 났다.


지금 받고 있는 월세 보조며 생활비가 남편의 돈이라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변호사가 거짓말을 할리는 없으니까. 그게 날아가면 나랑 아이는 다시 길바닥에 나앉아야 한다.



이번에는 정말이다.










친구는 차분하게 우리가 온 목적을 전달했고, 도대체 남편과 부양비는 어떻게 된 건지, 내가 원하는 가구 목록과 아기 사진들은 어떻게 돌려받을지, 함께 살던 집 보증금과 그 밖의 세세한 것들을 하나씩 물어보았다.



부양비 얘기가 나오자 변호사는 다시금 흥분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서류들을 책상에 탕탕 치며 화를 냈다.



"도대체 이 여자는 왜 남편이 돈을 안 낸다고 떠들고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몇 번씩이나 설명을 해줬는데도 이해를 못하고 자꾸만 시청이며 잡 센터며 돌아다니며 남편이 돈을 안 낸다고 하고 다니는 통에 내가 그동안 관련 부서 공무원들로부터 전화를 두 통이나 받았다고요. 왜 일을 제대로 안 하냐고!!!


나는 할 만큼 했어요!! 더 할 게 없단 말이에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그거면 되는데 왜 여기저기 들쑤시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접근금지명령까지 받아온 건지 정말.. 나도 모르겠네요.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차분하고, 이성적이던 변호사가 그렇게 흥분을 하며 서류를 책상에 내리치고 나는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친구에게 내 욕을 해대는데...


살면서 사람이 면전에서 그렇게까지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을까.



이건 부끄럽다는 말로도 부족하고, 쪽팔린다는 표현은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에 비하면 차라리 귀여운 표현일 뿐이었다. 나는 그 당시 정말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수치스러웠다.



명백한 수치심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남편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걸...



그전의 일이야 어찌 되었건 남편의 집에서 나온 그날부터 내가 당면한 모든 어려움과 문제들은 사실 모두 내 탓이었다.



내가 독일어를 부지런히 배워뒀더라면, 내가 능력을 길러 직장생활을 했더라면, 내가 독일 생활을 더 적극적으로 익혔더라면, 또 내가 덜렁거리지 않고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매사 실수하지 않았더라면...



특히, 독일어를 못하는 게 가장 큰 잘못이었다. 그동안은 그게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날 그게 잘못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독어만 잘했더라면, 몇 번씩 같은 문제로 관공서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됐고, 손발이 고생하고 몸이 피곤하지도 않았을 거고,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그런 머저리 같은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독일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틈나는 대로 열심히... 이미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었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단 한 가지는 그 무엇도 아닌, 그냥 입 닥치고 독일어 공부나 하는 것이라는 걸.. 나는 접근금지명령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배웠다.



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도 없었고, 변호사와 눈도 마주치기 싫었지만 왜 거길 갔냐고 매섭게 몰아붙이는 변호사에게 대답을 해야만 했다. 나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걸 알면서도 변명 아닌 변명을 했고, 변호사는 그래도 내 변명을 경청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다시는 그쪽 매장에 가지 마세요. 사무실은 물론이고 남편 집도 가면 안 됩니다. 또 남편 동료들은 물론이고 그 어떤 사람들에게도 남편이 당신 물건을 팔아먹고 버렸다는 말도 하지 마세요."



"그 말은 왜 하면 안 되는 거죠?"



"증거가 없잖아요, 증거가!! 당신이라면, 당신을 모욕하고 비방하고 다니는 사람에게 부양비를 주고 싶겠어요? 한 번만 더 이런 실수를 하면 그땐 정말로 부양비가 날아갑니다!! 명심하세요!!"



나중에 여기저기서 들어서 알았지만, 실제로 독일 법률조항에 있다고 한다. 남편이 돈을 버는 작업장에서 그런 행동을 해 남편이 회사에서 잘리거나 불이익을 당하면 부양하지 않아도 된다는... 뭐 그런 내용의...


거의 완벽하리만큼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부양의 의무지만, 딱 하나 날려버릴 수 있는 짓이 저 한 가지인데 내가 내 발로 찾아가 그 짓을 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한 번의 실수로 완전히 날아가 버린 게 아니라 아직은 괜찮다는 뜻이니까. 똑같은 짓을 다시 하지만 않으면 된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도 잊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질문을 했다.



"아이는 보겠다고 하던가요?"



지난번 마지막으로 변호사를 만났을 때 남편에게 정식으로 면접교섭을 원하느냐고 물어달라고 했었다. 내가 가장 기대하는 대답이기도 했다. 아이를 만나겠다는 대답..


그 말이 나오자 변호사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아니오. 앞으로도 보지 않겠다고 합니다."



앞서 그 수치심을 느끼고도 태연한 척했던 나였지만, 마지막 대답에 나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입을 떼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친구가 변호사와 대화를 이어갔고, 남편 집에서 가구를 가져오기 위해 스케줄을 잡는 동안, 나는 창밖을 보며 눈물을 참기 위해 끊임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서 그 자리를 빠져나가 울고만 싶었다.










무슨 정신으로 변호사 사무실 문을 나섰는지 모르겠다. 문 밖을 나서자마자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친구는 그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어른스러운 척, 이성적인 척, 침착한 척하느라 지난 여름 내내 꾹꾹 참았던 눈물이었던 만큼 쉽사리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비프케가 운전으로 데려다 줄 동안 차 안에서도 계속 울었다.



서럽게 서럽게...



그전까지는 남편이 일시적으로 아이를 외면한다고 생각했지 그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주변 사람들 의견도 그랬다. 이런 방면에 경험이 많은 친구 남편도,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보고 싶어 할 테니 그때 같이 산책이나 하자고 하라고 했었다.



그런데 변호사를 통해 서면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아이를 보지 않겠다고...



남편과 내가 붙으면 나만 다친다. 백 번을 싸우면 백번 다 내가 피투성이가 된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분명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를 사랑하니까...



그랬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고 남편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한, 그는 얼마든지 나를 아프게, 너덜너덜하게 짓밟을 수 있었다. 간단하다.


아이를 거부하면 그만이니까.

지금처럼...


그리고 나는 매번 똑같은 아픔과 고통을 느껴야 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자식을, 그렇게 예쁜 내 새끼를 아비 없는 자식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사는 어미의 심정이란 그랬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많은 생각을 했고, 한 달 정도 생각을 정리하면서, 나와 아이의 삶에서 더 이상 남편의 빈자리를 남겨두지 않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어차피 내 의지로 변하지 않을 상황인데 자기 연민에 빠져 아이를 불쌍하게 여기고 우중충하게 사는가, 받아들일 건 대범하게 받아들이고 기왕이면 웃으며 행복하게, 즐겁게 사는가.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다만 나는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고, 이제 그 시간이 왔을 뿐이다.



친구는 나를 달래는 그 와중에도 내가 접근금지명령을 어길까 몇 번이고 당부를 했고, 가구를 가지러 갈 때도 동석하겠다고 했다. 나는 남편과 직접적으로 말을 섞어서도 안 되는 처지였다. 친구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경찰인 그녀가 믿음직스럽고 든든했다. 이런 어리석은 실수를 한 나에게 핀잔은커녕 그 바쁜 시간을 쪼개 주말 오전에 가구 나르는 일을 도와주러 오겠다니.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남편을 잃은 대신, 그 외의 모든 소중한 것을 얻게 된 건 아닐까 하는...



나의 아들, 내가 힘들 때 곁을 지켜준 가족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친구들, 불투명하지만 어찌 됐건 서서히 찾아가고 있는 나의 직업, 그리고 이런 상황을 잘 헤쳐나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나도 몰랐던 "나"라는 사람에 대한 재발견...



별거를 시작하고 이 모든 일을 겪은 지 반년째에 접어드니, 가슴속에서 작은 새싹이 자라나 자주 나에게 말을 건다.



너 참 괜찮은 사람 같아.




이혼당하는 와중에, 이혼당하는 주제에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게 해괴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나도 잘 이해가 안 되지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것 같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고, 바보 같은 실수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계획하고 벌인 일도 아닌 데다 적진에서 적의 암호로 벌어지는 전쟁과도 같은 상황이다.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서 연습도 없이 내 인생 걸고 20개월 된 아들이랑 여기까지 왔는데, 이만하면 훌륭하지 뭐. 지금 이런 일을 겪으면서 나는 나라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매력을 느낀다.



또 전에 없이 평온하다.

내가 꾸려나가는 지금 내 삶이 마음에 든다.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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