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일 잘하는 공무원을 만난다면

양육비 선지급 신청 (Unterhaltsvorschussantrag)

by 뿌리와 날개

잡센터에서 내 담당자를 만나고자 한 이유는 2가지였다.



1. 아우스빌둥을 하려면 아비투어(고졸) 이상의 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엄마가 한국에서 떼온 내 영문 대학 졸업장과 성적표를 제출하고 독일 내에서 동등하게 인정받기 위해서



2. 남편이 나와 아이에게 부양비를 전혀 내고 있지 않은데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내가 만난 그 사람은 내 담당자가 아니라 그냥 팔 매니저라며 첫 번째는 새로운 내 직업 관련 담당자에게 가 제출하라고 했다. (그 말인즉슨, 전화로 테아민잡고 잡센터에 또 와야 한다는 말..)

두 번째 역시 새로운 내 돈 관련 담당자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슬슬 울화가 치밀었다.

이 놈의 독일이란 나라는 어찌 된 일인지 뭐하나 속 시원하게 밝혀지는 법이 없다.



이리 가면 저리 가라, 저리 가면 또 이리가라, 여차여차해서 찾아가면 그건 이미 내 담당이 아니다... 내가 무슨 탁구공도 아니고, 정말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신물이 났다.



나는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얘기했다.



"미안합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나는 남편에게 쫓겨나서 어린 아기랑 두 달째 보호소에 살면서 이제 겨우 집을 구해 이사를 왔어요. 그런데 남편이 두 달째 부양비를 안 줘요.


남들은 독일법상 내가 남편 수입의 45%를 매달 받는다는데 나는 그런 돈 만져본 적도 없어요. 남편 이름으로 계좌에 돈이 들어온다는데 그런 적 없구요.


남편은 세금을 떼고도 한 달에 2,700유로가 넘게 버는데 여태 우리에게 돈 한 푼 안주고도 잘 살아요. 정부가 우리에게 돈을 주고 남편에게 차압을 한다더니 도대체 그런 내역은 어디 가면 알 수 있죠? 차압을 하기는 하나요?


그럼 남편이 얼마를 벌고, 그중에 얼마를 우리에게 줘야 하고, 또 이렇게 안 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정말 그게 알고 싶어서 왔어요.


내가 알면 스스로 하겠는데 어디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서 그래요. 도와주세요."



그는 이야기를 다 듣더니 나의 변호사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변호사가 나더러 그건 자기 소관이 아니니 잡센터에 가서 물어보라고 해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얘기를 했더니 그 사람은 내 변호사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이 사람 뭔가 달랐다.

두 달간 관공서를 쫓아다니며 이런저런 공무원들을 만나보니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누가 일을 야무지게 처리하고, 누가 게으르고, 누가 멍청한지...



이 사람은 야무진 스타일이었다. 나는 이 사람을 꼭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변호사와 통화를 하고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전화번호부를 가져와 펼쳐놓고 하나하나 찾기 시작했다. 각종 관공서의 담당부서 직원 이름과 전화번호들이었다.



점심시간이고 퇴근시간이라 전화를 안 받기 일수였지만 그는 비상연락망까지 찾아가며 전화를 돌렸다. 전화를 걸어대기를 십 수 번..



결국 그는 담당자를 찾아내 나에게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유겐트암트에 이러이러한 부서로 찾아가면 신청서류를 줄텐데 그걸 작성해서 내면 정부가 우리에게 생활비를 주고, 다시 남편에게 받아낸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이 지불하지 않으면 강제로 압류한다고 했다.

드디어... 알아낸 것이다 ㅠㅠ



그 이름은 "Unterhaltsvorschussantrag"이었다.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두 달 만에 찾아낸 이것.

그런데 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이런 자문을 얻으려고 고용한 게 변호사 아닌가?

왜 내 변호사는 이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지?

왜 이걸 나 혼자 이렇게 발로 뛰어 두 달 만에 어렵게 알아내야 하지?

해줬던가?

그럼 왜 나에게 남편이 돈을 잘 내고 있느냐고 묻거나, 남편이 지불해야 할 금액을 정산해서 내게 보내주지도 않았지?



나는 내 변호사의 자질이 정말 의심스러웠다.

내가 이해를 못하는 건지, 아니면 변호사가 정말 일을 안 하는 건지...



변호사 문제도 빨리 해결해야 했다.

머릿속이 정말 복잡했다.









잡센터에서 볼일을 보고 나니 어느새 오후 1시..

엄마한테는 늦어도 12시면 돌아간다고 했는데 벌써 1시였다. 집에 인터넷이 안되니 엄마는 핸드폰도 못 사용하고 나만 기다릴 텐데..



점심은 먹은 건지 아니면 날 기다리느라 먹지도 못하고 있는지, 내가 사고라도 난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핸드폰이 안되니 얼마나 답답할까, 아이는 또 잘 있으려나 나는 걱정이 되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30분에 한대 오는 버스라 시간이 넉넉했다. 맞은편 터키 상점에 가서 쌀도 5kg짜리 한 포대 사고 토마토랑 가지, 애호박도 좀 샀다.



쌀이 무거워 어깨가 아팠지만 집에 가는 발걸음은 참 가벼웠다.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집.. 우리 아기가 편히 쉬고 있는 집... 집에 돌아가는 길이 신바람 나면서도 아이가 보고 싶어 발걸음이 빨라졌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따뜻한 밥을 해놓고 아이랑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반갑고 기분이 좋던지...



아이를 끌어안고 뺨을 비비는데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예쁜 내 아들. 오전 몇 시간 못 봤을 뿐인데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이도 내가 보고 싶었는지 꼭 안겨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래도 낯 안 가리고 할머니랑 잘 놀았다고 했다.



가방을 열어보니 내선 전화기를 환불하려고 가지고 나갔었는데 미처 바꾸러 가지도 못했다는 걸 알았다. 정말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였는데,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아직도 산더미다.


그래도 엄마가 집에서 아기를 봐주고 집도 정리해주고 밥도 해주니 살만하다.



정말 살만하다...



엄마가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빨리 일들을 처리해야겠다.




할머니 덕분에 오랜만에 정성 가득하고 맛있는 밥을 먹게 된 빈이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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