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왔다
엄마가 월요일에 왔다.
아침부터 엄마를 마중하는 길이 쉽지 않았다.
1인용 왕복 기차표는 29€인데, 내가 아직 인터넷으로 한인 상점에서 물건을 살 줄 모르기 때문에 엄마와 나는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한인 상점이 있는 반호프에서 내려 들렸다 올 계획이었다.
반호프 직원에게 내 상황에서 가장 저렴한 티켓을 물어보니 5인용 하루짜리 티켓이라고 했다.
42€에 최대 5인까지 사용 가능하고 그날 하루 종일 우반과 버스를 비롯해 몇 번이고 타고 내릴 수 있다길래 그 티켓을 샀다.
그런데 일요일 저녁 친구 한 명이 내게 전화해서는 티켓 사용법을 꼼꼼히 일러주는데 당황스러웠다.
첫째, 티켓은 항상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해야 한다. 나는 몰랐다.
둘째, 티켓마다 탈 수 있는 기차 종류가 정해져 있다. 내가 산 티켓은 ICE를 탈 수 없었고 RE 기차를 골라 타야 했다. 내가 타려고 시간을 봐 둔 기차는 ICE였다. 나는 그 비싼 고속철 이체에를 무임승차할 뻔한 것이다.
몰랐다.
셋째, 기차 탑승시간뿐만 아니라 환승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나는 남편과 함께 공항까지 늘 환승 없이 다녔기 때문에 환승하는 기차도 있는 줄 몰랐다.
넷째, 5인용 하루 티켓은 정말 24시간이 아니라 오전 9시 이후부터 자정 넘어 이튿날 새벽 3시까지 탑승이 가능했다. 전혀 몰랐다...
나는 엄마 도착 시간에 맞춰 늦어도 9시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 동네 반호프에서 7시에는 타야 한다. 그런데 내가 산 티켓은 9시가 넘어야 탈 수 있는 것이다.
티켓을 꼼꼼히 읽어보니 적혀있었다. 그녀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auf jeden Fall.. 무임승차를 할 뻔한 것이다.
기차 타는 일 하나도 쉽지가 않았다.
내가 나중에 불만을 토로하자 엄마는 그걸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았냐고 했지만, 사실 반호프 직원이 하루 동안 5명이 기차, 버스, 우반을 자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는 티켓이라고 소개해줬다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떤 종류의 기차만 탑승이 가능하냐고 되묻지 않은 내가 정상 아닌가?
모르면 물어보라지만,
따지고 보면 그걸 자세하게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뭘 알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몰랐고,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해도 실생활에서는 그게 해결책이 되어줄 수 없다.
그래서 늘 따져보고, 물어보고, 짚어보고 해야만 한다.
그래도 한편 억울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다.
모르면 물어보려 해도 만약 "내가 뭘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면" 물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들어 그런 일을 정말 많이 겪고 있다.
묻는 것은 좋은데..
내가 뭘 모르고 있고, 뭘 놓치고 있고, 그래서 뭘 물어야 하는지 모르는 그런 상황.
친구가 기차 종류, 탑승시각, 글라이스까지 자세히 찾아서 보내준 덕에 일단 큰 실수는 면했다.
그런데 우리 동네 우반역에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다. 유모차를 밀고 지하 2층까지 계단 턱마다 유모차 뒷바퀴를 덜컹덜컹 굴려가며 낑낑거리고 내려가 우반을 탔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웬 낯선 남자가 독일어로 우리 엄마 얘기를 하고 있었다.
엄마를 바꿔달라고 하니, 엄마가 하는 말이 공항에서 부친 큰 짐 2개가 오지 않았단다.
이건 또 웬 말인가...ㅠㅠ
엄마가 도착한 지 1시간이 지났는데 나는 아직 기차도 타지 못했다. 그런데 짐이 안 왔다니...
게다가 엄마는 혼자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그 남자에게 자초지종을 들었지만 내가 그 사람이 말하는 독일어를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나는 중요한 것만 짚어 물었다.
그래서 짐이 집으로 오는지, 아니면 거기서 더 기다려야 하는지.
그랬더니 가도 된다고 했다.
짐은 내일이나 모레 집으로 부쳐준다고.
나는 영 미심쩍어 다시 엄마를 바꿔달라고 했다. 엄마는 이미 눈치껏 상황을 파악하고 수하물분실센터에 가방 모양과 색깔도 신고하고 내 주소랑 전화번호도 줬다고 했다.
직원이 우리 집 주소가 적힌 프린트물도 뽑아서 줬다고 했다.
정말일까?
다행인 것은 6월에 내가 아이랑 한국에서 돌아올 때도 같은 비행기를 탔고,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너무나 당황스럽고 걱정이 되어 아무것도 못하고, 다른 독일인 두 명이 끝까지 도와줘서 신고도 하고 다음날 무사히 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엄마는 나에게 들었던 그 일 만으로 미루어 짐작하고 언어가 안 통하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수하물 분실신고를 하고 직원에게 내 주소와 전화번호를 준 것이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지나가는 남자에게 나와 전화를 연결해 달라고 했단다. 대단하다 우리 엄마ㅠ
다만 언제, 몇 시에 도착하는지를 알 수 없어 나는 공항에 가서 담당자를 만나 정확히 체크를 하거나 통화를 해야만 했다.
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기차까지는 무사히 탔는데, 이번에는 공항에서 문제였다. 스카이 트레인을 탔더니 정류장이 터미널 A, B와 터미널 C로 나뉘어있었다. 게다가 A, B, C 모두 이착륙 터미널이었다.
오 마이 갓!!!!!!
나는 엄마가 어디서 오는지 모른다.
이미 엄마가 도착한 지 4시간이 지났고, 엄마랑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은 몇 분 남지 않았다. 엄마는 폰도 없고 내가 길을 헤매는지도 모르는데 수하물도 사라졌다.
그런데 트레인은 곧 정류장마다 멈출 것이고 나는 어쨌든 빨리 선택을 해서 내려야 한다.
국제선이 들어오는 터미널이 어디냐고 같이 탄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다들 모른다고 했다. 어떤 남자가 급하게 인터넷을 켜고 검색을 하며 항공기 넘버를 물었는데 나는 그것도 몰랐다.
나는 그냥 바보였다.
정말 울고 싶었다.
다들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지 나처럼 마중을 가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뭐라도 단서를 찾아 골라야 하니 침착하게 생각했다. 하나는 A, B가 같이 있고 하나는 C니까 터미널 A, B에서 내리는 게 확률상 만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A, B에서 내리기에는 뭔가 느낌이 꺼림칙했다. 지난번 엄마를 마중했을 때 스카이 트레인을 타고 중간 정거장에서는 내린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목적지와 터미널을 물어보니 유럽으로 나가는 모두가 A, B라고 했다. A, B가 유럽 내 출국장인가 싶었다. 이윽고 터미널 A, B에서 문이 열렸고 대부분의 사람이 내렸지만 나는 결국 내리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내 옆자리에 남은 남자에게 목적지를 물어보니 취리히랜다. 하..
터미널 C도 유럽으로 간다. 이런 식으로는 알아낼 수가 없다. 차라리 느낌이고 뭐고 그냥 확률 높은 A, B에서 내릴 걸...
나는 그냥 자포자기했다.
어쩔 수 없이 터미널 C에서 내려 길을 따라가니 익숙한 공항 모습이 보였다. 설마설마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니 맥도널드도 보이고 지난번 왔던 공항 모습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약속 장소에 없었고, 나는 다시 터미널 A, B로 가야 하나 하고 있을 때쯤 아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 사람들 틈에서 아이 소리를 들은 엄마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반가움과 안도감과 그리고 밀려드는 서러움에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엄마는 나를 꼭 안아줬고 우리는 그렇게 공항에서 눈물겨운 상봉을 했다.
엄마가 왔다.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던 엄마가 왔다.
수하물도 찾아야 하고, 한인마트도 들려야 하고, 집은 엉망진창이었지만 어찌 됐거나 엄마를 무사히 만났다.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