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정말 독일에서 혼자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by 뿌리와 날개

독일에서는 인터넷을 신청하면 아무리 빨라도 2주는 기다려야 한다.

보통은 2-4주가 걸린다.



그래서 나는 집을 계약하자마자 회사 측에 인터넷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데스크 직원에게 가면 안내해줄 거라고 했고, 데스크 직원은 신청서를 주며 이걸 작성해서 우편으로 부치면 된다고 했다.

회사 측에서 연결해주는 회사였다.



나는 보호소로 가져와 다음날 바로 베트로이어린 한 명과 함께 서류를 읽고 신청서를 작성해 우편으로 부쳤다.

그게 13일이었으니까 내가 이사를 할 때쯤이면 인터넷도 바로 달려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내선전화까지 포함해 이 가격이면 좋은 조건이라고 했다.

그리고 첫 3개월은 저렴한 가격에 맛보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고 했다.










어제 친구 한 명이 우리 집에 커튼을 달아주러 왔길래 나는 인터넷 신청 서류를 보여주며, 벌써 2주가 지났는데 아무 소식이 없으니 내가 뭘 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서류를 꼼꼼히 읽어보더니 왜 이 회사에 인터넷을 신청했냐고 되물었다.

비싸기도 하거니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회사라고 했다.



나는, 회사 측에서 연결해준 거고, 보호소 담당자도 괜찮다고 했기 때문에 믿고 신청한 거라고 했다.

그녀는 기본 19.99유로에 내선전화는 다시 9.99유로를 더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들었던 것과 말이 달랐다.



나는 원래 인터넷만 신청할 계획이었는데 보호소 담당자가, 인터넷만 신청하기에는 비싸고 내선전화와 패키지로 신청할 경우 저렴하다고 했기 때문에 함께 신청을 했던 것이다.


내선전화가 있으면 같은 독일 내에서는 공짜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전화를 써도 요금이 더 나가지 않고, 또 공적인 업무를 볼 때에도 핸드폰보다 유용하다고 했다.



그래서 신청했던 건데 내선전화요금을 다시 내야 한다니.

친구는 자기네 집에서 쓰는 건 25유로에 티브이, 내선전화, 인터넷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이미 내선전화까지 샀는데...



계약을 해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고객센터로 전화를 해야 하는데 전화비용도 개인부담이라며 친구는 어이없어했다.



나는 이런 복잡한 일을 전화로 혼자 해결할 만큼 독일어를 잘하지 못한다.

이미 신청서류에 계좌번호도 적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그리고, 핸드폰.

또 다른 친구가 알려준 알디톡은 벌써 세 달째 접어들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지난달에도 할 줄 몰라서 선불폰에만 50유로 정도를 쓴 것 같다.



이번 달에도 나 혼자 해보려고 다시 알디톡 카드를 샀지만, 지난달에 20유로를 주고 산 5000MB 인터넷은 한 달 동안 절반밖에 못 썼기 때문에 이번 달에는 15유로만 사서 지지난달처럼 10유로는 인터넷 1500MB, 5유로는 전화와 문자로 돌릴 생각이었다.



원래 한 달 안에 같은 돈을 충전하면 지난달에 세팅해놓은 대로 알아서 입력이 된다.

하지만 나는 5유로라도 줄여보고자 15유로짜리를 샀고.. 휴가를 간 그 친구를 방해하기 싫어 혼자 해보다가 결국 하루 만에 다시 15유로를 날렸다.



제대로 세팅을 하지 않으면 15유로는 그냥 전화를 걸고 받다가 순식간에 없어져버린다.

벌써 세 달째였다.



나는 다시 15유로를 하루 만에 날렸고, 엄마가 월요일에 들어오기 때문에 마중을 가려면 전화가 필요했다.

이사를 해서 근처 알디까지 가려면 우반역까지 걸어가 우반 한번, 버스 한 번을 갈아타고 매장에 가서 다시 사 와야 했다.



하... 머리가 나쁘니 수족이 고생한다.

결국 5유로 아껴보려다 이틀 만에 30유로를 썼다.









또 하나..

목요일에 이사를 하다가 500유로를 도둑맞았다.

사실 어디서 도둑맞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돈은..

내가 한국에서 독일에 들어올 때 엄마가 비상금으로 쓰라며 유로로 바꿔준 돈이었다.



독일에 돌아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에 엄마는 주머니에 돈이라도 쥐어준 것이다.

너무 많으면 그것도 골치일까 봐 딱 500유로를 줬는데, 지난 두 달간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 돈은 없는 돈이다 생각하고 가방 속에 고이고이 모셔뒀었다.


나중에 안정이 되면 아이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어 넣어줄 생각이었는데...

그 돈을 도둑맞았다.








나는 그 사실을 금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알았다.

할 일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돈은 생각할 틈도 없었다.



먹을 걸 사 넣으려면 냉장고를 켜야 했는데, 켜기 전에 닦아야 하니 그걸 좀 청소하는 와중에 아이가 인덕션 레인지를 켰다.

그리고 그 위에는 중고매장 직원들이 놓아둔 플라스틱 연장통이 있었다.



바쁘게 걸레질을 하다가 연기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올라와 뒤를 돌아보니 플라스틱이 타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고 중고매장 직원들이 달려와 연장통을 들어내고 당장 지하실로 내려가 주방 문을 들고 올라와 달아 줬다.



주방이 너무 작아 그 전 세입자가 문을 떼어버린 것 같은데, 오븐이나 레인지는 아이가 너무나 좋아하는 것들이라 조심하려면 문을 닫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덕션이 고장 났을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럼 다시 사야 한다.



나는 돈이 없다. 정말.. 필요한 물건은 아직도 많은데 예산은 한정돼있고, 아이가 사고를 칠 때마다 나는 돈을 물어야 한다.



아이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러고도 나는 발 디딜 틈 없이 난장판인 새 집을 정리해야 했다.

수납공간이 없어 사실 정리를 할 수도 없고, 있다 한들 이런 어린아이와 이삿짐 정리란 불가능하다.



잠깐 냉장고를 닦는 사이에 벌어진 일에 최소 100유로를 날릴 뻔했다.

집을 정리하느니 그냥 매 초마다 아이를 쫓아다니는 게 훨씬 생산적인 일이다.



어린아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나는 결국 청소를 마치지 못하고 그냥 냉장고를 켜 음식들을 보관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금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돈을 넣어둔 가방 생각이 났고, 그 가방을 열었을 때는 이미 가방 속 작은 주머니가 열려있고 돈봉투는 사라진 뒤였다.



나는 심장이 덜컹했다.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당연히 돈은 나오지 않았고, 나는 제발 내 기억이 틀렸기를 바랐다.

이 가방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잘 보관해둔 거라고..



그러나 아니었다.

내가 똑똑히 기억한다.

일부러 그 가방 안에 옮겨 담았다.

간수하기 쉬우려고...



2층 내 방에서 G와 함께 이삿짐을 1층 공동거실로 옮겨놨다가 차에 실었는데 그 사이에 누군가 손을 댄 것 같다.

G와 T가 짐 옮기는 걸 도와줬고, 1층 공동거실에는 Pl과 그녀의 아이들, 그리고 J가 있었다.



나는 사람이 둘이나 있는데 설마 내 짐에 누가 손을 댈까 싶어 짐 옆에 서있는 대신 내 짐을 옮겨주는 그녀들과 함께 오르락내리락 짐을 옮겼던 건데... 그 사이에 도둑을 맞았다.



정말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


해도 너무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 와중에 핸드폰은 돈이 떨어져 먹통이었고 나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인터넷이 되려면 주말마다 머무는 친구 집에 와야 한다.



나는 알디톡 카드를 사러 버스를 타고 가면서 울화가 치밀었다.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화창한 날씨도 거지 같았고, 뭐가 그리 좋은지 지들끼리 키득거리는 노랑머리 젊은 애들도 짜증이 났고, 가슴속에서는 뭔가가 자꾸 울컥울컥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데 나는 아무와도,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음에 미칠 것 같았다.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했다.



그 순간 나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유모차에 앉아 쪽쪽이를 물고 난생처음 보는 표정으로 아이는 조용히, 가만히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렇게 맑으면서도 슬픈 아이의 눈동자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아이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17개월짜리가 어떻게 그런 표정을 지을 수가 있을까..



아마도 아이의 그 표정이 그 당시 내 표정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말없이 그렇게 서로를 가만히 쳐다봤고 나는 이내 울음이 터져서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창피해서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꼭 깨물었지만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울음소리를 참느라 목울대가 아파왔지만 그래도 꾹꾹 참았다.



터지는 울음을 꾹 삼켰다.









왜 한국에서 돌아왔어. 거기서 그냥 살라고 했잖아.

네가 정말 독일에서 혼자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너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잖아.

네가 여기서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이미 네가 너무나 순진하다는 증거야.

돌아가서 너네 부모님이랑 아기랑 같이 살라고!

왜 돌아와서 나를 힘들게 만들어!!!








그 사람은 우리가 함께한 마지막 열흘간 나에게 끊임없이 그런 말을 했었다.

그동안은 그 사람이 틀렸다고, 나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그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슬슬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이 옳았던 것 같다고...



나는 친구가 없이는 핸드폰 충전도 할 줄 모르고, 인터넷 계약이나 취소도 할 줄 모르며, 수중에 있는 현금 하나도 제대로 관리를 못해서 도둑을 맞는 그런 사람이다.



이런 내가 어떻게 내 나라도 아닌 독일에서 자리를 잡고, 직장을 얻고, 스스로 돈을 벌며, 아이를 키우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한국이라면 적어도 핸드폰이나 인터넷 신청을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외국어를 잘 못하면서 외국에서 스스로 사는 일은 마치, 눈이 나쁜 사람이 시력에 맞지 않는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어느 것 하나도 명쾌하고 깨끗하게 보이는 게 없이 흐릿하다.



누군가 도와주면 더듬더듬 큰길 정도는 걸어갈 수 있겠는데 표지판 하나하나를 보며 집 주소를 찾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안경 도수가 너무 낮으니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게 없다.



독일어를 제대로 할 줄 알면 사는 게 조금 나아지려나..?

이런 어려움이 정말 사라질까?



그렇게 되려면 나는 또 얼마나 열심히 독일어를 공부해야 할까..

아직 내 손길이 너무나 필요한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만정이 다 떨어진 이 독일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는 그 끔찍하게 싫은 독일어를 해야만 한다.










나는 지쳤다.



피곤하다.



어느 호텔방에 빈 몸으로 혼자 처박혀 암막 커튼을 치고 48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잠만 자고 싶다.



아주아주 피곤하다.



그러나 나는 다시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워야 하고, 경찰에 잃어버린 돈을 신고해야 하고, 월요일에는 엄마를 마중하러 기차로 두 시간 떨어진 공항으로 가야 하고, 인터넷 신청을 해지하기 위해 다시 발로 뛰어야 한다. 잡센터와 약속을 잡고 남편이 매달 얼마를 내고 있는지도 물어야 하고, 잡센터로부터 달초에 월세가 잘 들어왔는지도 체크해야 하고, 앞으로 직업을 잡기 위해 담당자와 상담도 해야 한다. 화재경보기를 설치하기 위해 사람들이 다녀가는 것도 봐야 하고, 변호사와 암트로부터 받은 서류들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보호소에 가서 G와 만나야 한다.



내가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삶은 계속되고 있다.

해야 할 일은 아직도 산더미이다.



끝이 없다.



그래도 엄마가 오니까...

이틀만 자면 엄마가 오니까...



그때까지만 버티자.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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