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이 된 하우스 모임

by 뿌리와 날개

월요일 오전 10시.

평소와 마찬가지로 Hausversammlung이 열렸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부터 아침식사를 겸한 하우스 모임이라는 것.



그 전에는 베트로이어린들이 간단한 과자와 약간의 과일, 그리고 커피를 준비했었는데 이제부터는 베트로이어린들이 빵을 준비해오면 보호소 여자들이 치즈나 버터, 잼, 토마토, 오이, 계란 같은 아침식사 거리를 각자 가져와 나눠 먹기로 했다.


J의 건의였고, 일단 시작은 훌륭했다.

식탁 위로 갓 구운 빵이 풍성했고, 접시 위로 놓인 치즈와 토마토, 삶은 계란에 여러 가지 맛의 잼들이 꼭 가정집 식탁처럼 포근했다.



식사와 함께 베트로이어린들은 우리가 주말에 뭐 했는지, 재미있는 일은 없었는지 등의 기분 좋은 대화를 유도했다. 언제나처럼 대부분의 여자들은 무뚝뚝하게 "좋았어"라고 말했다.


지난 두 달간의 경험으로 보자면, 주말에 무슨 즐거운 일이 있었는지 조잘조잘 얘기하는 여자는 거의 나뿐이고 그 외에는 가끔 B 정도가 그나마 대답을 한다.









어느 정도 식사를 한 후에 우리들은 보호소 생활에 대한 불만이나 개선점, 건의 등에 대한 대화를 했다.

내가 어젯밤 일을 이야기했고,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서 물었다. Be는 딱 잘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응? 너무나 간단한 대답에 나는 재차 물었다.



A가 이러이러한 말을 했고, 내 입장에서는 가벼이 넘길 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안전한 건지 정확하게 말을 해달라고 했다.



진지한 내 모습이 웃긴 건지, St는 연신 키득거리고 웃었다. 우리가 보호소에 처음 왔을 때 나와 아이를 인종차별과 각종 음담패설로 모욕했던 St.



그런 애랑 말 섞기 싫어서 어느 순간부터 눈도 안 쳐다보고 무시했더니 그런 나를 보며 "너 나한테 쫄았지?" 하고 낄낄거리고 좋아하던.. 그러니 옆집 남자에 대해 안전 운운하며 심각하게 구는 내가 웃겨 보였나 보다.



나는 기분이 나빴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오랫동안 이 일을 하고 있고 저들과도 잘 아는 사이야. 만약 그 정도로 위험했다면 진작 무슨 일이 벌어졌겠지. 하지만 그동안 네가 걱정하는 류의 일은 벌어진 적이 없어. 그리고 내가 아는 선에서도 그들은 위험하지 않아."



"하지만 버젓이 마약을 하는데도 감옥에 안 가고 다음 날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고, 경찰 20명이 완전무장을 하고 여자 하나를 때리던 남자 넷을 잡아가고 하는 일이 내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게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죠?


한국에서는 공항에서 입국심사부터 머리카락을 뽑아 마약 양성반응을 검사하고 걸리면 입국 금지가 돼요. 완전무장을 한 경찰 20명은 보통 사람이 한국에 살면서 볼 일이 거의 없다구요!

게다가 나는 지켜야 할 어린아이가 있어요. 내가 겁이 나는 건 당연하잖아요? 내가 이상한가요?"



내가 말하는 내내 낄낄거리며 "쟤 좀 봐. 독일에서 한국 얘기하고 있어ㅋㅋㅋ 괜찮다잖아!" 하는 St에게 화가 나 나도 모르게 날카로워졌다.

Be는 St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St. 그만 해. 그녀입장에서 겁이 나는 건 당연해.

그리고, 겁이 나는 네 입장 이해해. 하지만 A의 말이 지나쳤던 거야.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마약은 독일에서 합법화 논의가 이뤄질 정도로 일상적이고, 소지했을 때 문제가 될 수는 있어도 마약을 한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아.

그리고 독일에서는 원래 무슨 일이 생기면 경찰들이 완전무장을 해. 그것도 평범한 일이야.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 그들은 위험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해해주세요. 나는 아직 독일의 실정에 대해서 잘 몰라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기 엄마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아기발달이나 어금니가 몇 개 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지금은 마약이니, 폭력이니, 나치니 하는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게다가 A는 외국인을 혐오하는 집단으로부터 우리가 쥐도 새도 모르게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그러고..


내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건지 확실히 알아두고 싶었어요. 나는 아기를 지켜야 하니까.."



"물론 이해해.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 A? 왜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한 거야? 그건 단지 너만의 생각일 뿐이잖아. 왜 괜히 그런 말을 해서 겁을 먹게 만들어.


그리고 저들은 나치가 아니야. 누가 나치라고 그랬어?"



나는 P를 가리켰고, P는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고... 하며 어물쩍 넘어갔다. 꼬리를 내리기는 A도 마찬가지였다. 양 손을 내저으며 나는 그냥 내가 느낀 점을 말했을 뿐이야 하고 말했다.



차분히 설명해주는 Be의 말을 듣고 나니 나는 안심이 되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P와 서로 부채질해가며 엄청난 일인 것처럼 부풀리던 A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끈질기게 캐묻던 나만 뭔가 바보가 된 듯했지만, 그래도 안전이 확실하다니 다행이었다.









이 날의 하우스 모임은 상큼한 아침식사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끔찍했다. 나를 시작으로 하나, 둘씩 굵직굵직한 문제들이 터졌고,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급기야 테이블 위로 고성이 오고 가며 서로 싸워대기 시작했다.



J는 T, Ai와 싸웠고, B는 S, St와 싸웠고, 늘 조용하던 Y도 소리를 질렀으며, 마지막은 P의 말을 오해한 A가 결국 P에게 소리를 지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Be가 A를 따라 나가 둘은 주방에서 몸싸움을 했고 Bb는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소리 지르고 몸싸움하는 그 주방에 아이가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들어가 둘의 싸움을 올려다보며 놀란 아이를 안고 나왔고, 밖으로 나와 아이를 안고 노래를 부르며 진정시켰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서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식탁을 때리고...



십여 명의 여자들 중에 아직 누군가와 싸움이 붙지 않은 여자는 나뿐이었다.

물론 그 후 며칠 뒤 나도 결국은 싸움이 붙었지만...









이 날의 난장판 싸움으로 다음 날 결국 Ai가 말도 없이 보호소를 나갔다. 남편에게 돌아간다는 말을 건너 건너 전해 들었을 뿐이다.



내가 가끔 유모차에 아이를 재워놓고 방에 올라가 할 일을 하고 있으면 늘 아이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가던 그녀였다.



한창 말을 배우느라 내 "아이구~~"를 따라 하는 빈이를 보며 그녀가 언젠가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니 아들은 자주 내 이름을 부르더라" 하는 말에 웃었던 적이 있다.



굳이 따지자면 나와 P, T, Ai 정도가 그나마 멀쩡한 여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그녀가 나갔다는 말에 나는 한동안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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