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피곤해도 아침 7시면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어김없이 일어나야 한다.
내가 침대에 누워 비비적거리면 아이는 그 사이 온 방을 헤집어 놓는다.
기저귀함이 없기 때문에 포장지 채로 열어서 쓰는데, 모든 기저귀를 꺼내 바닥에 내팽개쳐놓는다.
키발 딛고 올라가 손이 닿는 선에서 선반 위의 내 화장품들과 샴푸, 로션, 치약, 칫솔들을 다 바닥에 쏟아놓고 치약이나 화장품은 뚜껑을 열어 다 뿌리고 먹는다.
선반에 매달려 잡고 흔들 때에는 선반이 쏟아질까 봐 아기를 떼어놔야 하는데 그것도 2초.
어차피 떼어놔 봐야 다시 가서 매달린다.
무한반복이다.
의자에 기어 올라가 테이블 위로 올라가면 스탠드도 던지고, 화장실 휴지는 다 풀어놓고, 내 가방이며 지갑 속에서 잡다한 물건들을 다 꺼내 바닥에 던져 놓는다.
립스틱이나 볼펜이라도 손에 들어오면 화가 선생 출동이다.
침대 밑 서랍을 열어 옷을 다 꺼내고 그 안에 들어가 앉아 있는가 하면, 냉장고 안전장치는 이미 진작에 마스터해서 자기 장난감들을 냉장고 안에 쑤셔 넣기도 하고, 과일을 주물럭거려서 으깨고, 계란도 여기저기 옮겨 놓다가 다 깨고, 버터도 주물러놓아 못 먹게 만들고, 치즈도 꺼내 먹는다.
그나마 먹으면 다행이지만 보통은 얼굴이나 손, 옷, 방바닥에 떡칠을 해놓고 놀다가 미끄러져서 뒤통수가 깨져 죽어라 우는 일이 다반사다.
버터나 살라미, 치즈를 망가뜨려놓으면 아침식사는 없다.
마트 가서 사 오기 전에는...
그것도 모자라 손이 안 닿는 곳은 의자를 밀고 가 밟고 올라가 물건들을 꺼낸다.
냉장고 위는 빵, 소금이나 후추, 쌀, 칼, 커피 같은 걸 올려두는데 아이는 6개들이 생수병을 밟고 올라가면 자기 키에 딱 맞는 냉장고 위가 아주 마음에 드는 듯하다.
특히 전날 먹고 남은 빵을 그렇게 꺼내 먹는데 나는 보통 곡물빵을 사기 때문에 아이가 빵을 꺼내면 온 방안에 씨앗 부스러기가 천지다.
한마디로 청소하기 너무 힘들다는 말이다.
냉장고를 손에 넣으려는 아이와 막으려는 나의 전쟁은 절대 끝나는 법이 없다.
아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올리고, 옷장에 숨기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아이가 유난히 번잡스러운 아이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 가지에 집중하면 30분도 넘게 혼자서 잘 노는 아이이다.
그저 아이에게 안전한 별다른 장난감 없이 16개월 아기가 지내기에, 보호소 방 한 칸은 너무 작을 뿐.
이 많은 일들은 모두 내가 아침에 아이 소리에 눈을 떠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기까지 30분 이내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럼 나는 늦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니다.
그냥 체력이 달리니까 침대에 몸만 뉘어 뒀을 뿐 틈틈이 아기가 안전한지 지켜봐야 하고, 물이나 우유를 달라고 울면 일어나 그것도 챙겨줘야 한다.
스스로 마실 줄 아는데 왜 매번 챙겨줘야 하냐고?
이제는 좀 컸다고 물이며 우유를 입에 머금고 있다가 온 방안에 뱉고 다니니까.
마시는 것보다 뿜거나 뱉어내는 양이 더 많다.
그래서 한 입 마시면 다시 빈이 손이 안 닿는 곳에 올려둬야 한다.
어디 조용하기나 한 아이인가.
요즘은 말문이 트이려고 한시도 조용히 있는 법이 없다.
얼마나 카랑카랑한 지 가끔 몸이 정말 너무나 힘들면 아이 목소리에 귀가 아프기도 하다.
엄마! 엄마! 엄마!
물죠, 우유죠, 까까죠, 딸기, 망고, 바야야 (바나나), 빵, 끼(켁스), 아우토...
주문이 끝도 없다.
말을 거는데 대답을 해줘야지.
무한반복이다.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이런 일이다.
어차피 내가 침대에 누워서 비비적거리면 거릴수록 일어났을 때 치워야 할 것들만 더 산더미라 몸이 얼마나 천근만근이던 그냥 일어나는 게 요즘 아침 풍경이다.
날씨도 더우면서 축축하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이고, 해도 해결이 안 되는 큰 문제들도 많고, 몸은 바쁘고, 힘들고,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배는 고픈데 매번 밖에서 사 먹을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고, 돈은 더더욱 없고, 미친 듯이 종종거리며 볼 일을 보고 돌아다니는 와중에 아이는 끼니마다 먹여야 하고, 기저귀 갈아야 하고, 씻겨야 하고, 놀아줘야 하고, 반응해줘야 하고, 매번 아이 안고 2층부터 지하실을 오르내리며 빨래도 해야 하고, 해서 널어야 하고, 걷어와야 하고, 장도 봐야 하고...
마트는 또 가깝기나 한가.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가는데만 15분이 넘는 알디로 가야 한다.
알디 가는 길은 특히 그늘이 전혀 없어서 정말 땡볕을 걸어가야 한다.
웬만하면 10시 이전에 가려고 하는 이유이다.
저녁에는 또 어떤가.
녹초가 된 몸으로 보호소에 돌아와도 몸을 뉘일 수 없다.
아무리 내 몸이 땀범벅이라도 아이가 먼저다.
아이와 함께 씻으려면 욕조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제는 아이가 컸다고 양치도 거부하고 머리 감는 것도 거부한다.
힘은 또 얼마나 센 지.
발버둥 치는 아이를 잡다가 맞기도 엄청 맞았다.
이미 욕조에 들어갈 때부터 내 몸은 녹초이지만 아이와 목욕을 끝내고 나면 정말 온몸이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한없이 쳐진다.
그래도 온몸에 로션 발라 새 옷 입혀 머리 말려 우유도 한잔 먹이고 침대에 눕혀 노래도 불러주고.
아이 감기 들까 봐 나는 발가벗은 채로 아이 먼저 싹 끝내 놓고, 나는 언제나 뒷전이지만 당연한 일이다.
이 갑갑한 상황에서 내가 받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또한 어마어마하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주말마다 올라오는 그냥 소설 같은 글일 뿐이겠지만, 나에게는 벌써 두 달째 현실로 벌어지고 있는 내가 처한 상황이다.
돈 나올 곳이 없어서 빈 집에 맨 몸으로 들어가 살게 생긴 것도 나고,
이사야 해결된다 쳐도 앞으로 1년 안에 어린아이와 생계를 책임지고 이 독일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아직 아무런 비전이 없는 것도 나다.
이 암울한 상황...
기약 없는 미래...
괜찮아, 잘 될 거야 한 마디로는 솔직히 위로가 안된다.
그냥 닥친 상황이니 견디고 있는 것일 뿐.
다른 옵션들은 상상할 수도 없으니까.
오롯이 아이 하나만 키우기에도 세 돌까지 육아는 참 녹록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아이를 길러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그 와중에 나는 내 피붙이라고는 내가 건사해야 할 이 어린아이 하나뿐인 독일 땅에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다.
날벼락같은 남편의 외도와 이혼 통보로 가슴 아파할 감성적인 여유조차 없다.
정신없이 사느라 남편으로부터 남자 대 여자로, 또 인간 대 인간으로 상처 받은 내 가슴은 아직 아픔이 시작하기도 전인데 누군가는 미움이 도움이 안 된다며 잊고 아이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길 바란다고 한다.
새 여자와 밀회를 즐기며 그 대가로 승진도 잘하고 계시는 내 남편이 오늘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그 여자와 여유로운 커피 한잔, 키스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내 아들 기저귀 갈 시간도 없이, 나 밥 먹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우리가 살 보금자리를 마련하느라 여름 한낮 무더운 땡볕에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로 유모차를 밀고 다녔다.
24시간 아이와 함께하며 아빠가 떠난 빈자리를 메꾸고 있는 매일매일의 내 모습보다 더 좋은 모습이 아이에게 있을까?
나는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다.
남편은 그냥 무책임한 정도가 아니라 나에게 스스로 설 최소한의 시간조차 주지 않고 악질적으로 나와 아이를 버렸다.
우리는 비록 헤어지더라도 아이에게는 아빠가 되어달라고 했지만, 그는 그것 마저도 거절했다.
나는 그런 아이를 안고 장대비가 쏟아지던 6월 23일, 마약과 매춘, 정신병 등 온갖 문제들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여성 보호소로 들어와 지금까지 버텨냈다.
이틀에 한 번씩 각기 다른 채소들로 영양소 맞춰 만든 이유식을 9개월부터 스스로 수저질을 해 떠먹고, 향긋한 로션 냄새만 나는 아기들이 가득한 아기 모임에서 개월 수에 맞는 발달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내 아이가 지금은 수십 마리의 파리떼가 들끓는 쓰레기통 옆에서 놀고, 재떨이를 쏟아 먹기도 하고, 담배냄새 쩐 소파에 얼굴을 파묻고 까르르 웃는다.
맨 발로 보호소를 누비느라 어린 아기 엄지발가락에 이미 굳은살이 배기고, 피부병을 앓는 여자가 끌어안고 뽀뽀를 하기도 하고, 주지 말라는 초콜릿과 사탕을 얻어먹고, 더러운 머리카락이 감긴 빵을 집어먹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를 이런 곳마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갈 수밖에 없게 만든 남편을 용서하고 좋은 엄마가 돼라...
내가 이렇게 된 지 3년이 된 것도 아니고, 1년이 된 것도 아니고, 반년이 된 것도 아니다.
아직도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다.
남자 친구와의 단순 이별을 극복하기에도 짧은 시간이 아닌가 두 달은..
나는 성모 마리아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니고, 마음씨가 비단결 같은 여자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한 아이의 엄마이자 여자일 뿐.
분노와 증오도 내가 겪어야 할 과정이고, 그 뒤에 찾아오는 슬픔과 공허함도 겪어내야 할 부분이고, 남자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에 대한 불신 역시도 극복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가고 난 뒤에 찾아오는 편안함이 진짜 편안함이겠지.
나는 아직 그럴 수 없다.
하루하루 이성을 잃지 않고, 그나마 웃는 낯으로 버텨내고 있는 것 자체로 나는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
힘들다.
힘들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많이 힘들다.
나를 아름답게 포장하고자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아니다.
한국 드라마라면 이럴 때 남편회사의 오너 아들인 잘생긴 재벌 총각이 나타나 나와 사랑에 빠지고 나와 아이를 신분 상승시켜주며 남편과 상간녀를 회사에서 자르고 사회에서 매장시켜 줄 것이다.
아니면 내가 평소 숨겨둔 사업 수완이나 능력을 발휘해 김치사업 같은 걸로 회사를 만들어 보란 듯이 독일 사회에서 성공을 하던가.
하지만 현실의 나는 다르다.
블로그에 내 사생활을 노출해가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있지만, 솔직히 내가 자립에 잘 성공할지도 모르겠고, 아이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 경제력을 갖추게 될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살다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건 아닌지, 언제까지나 독일 사회 하층민으로 살아가는 건 아닌지, 모든 게 두렵고 어렵고 그렇다.
이런 내가 그나마 내 개인 블로그에 전남편 개자식이라고 타이핑이라도 해서 풀지 못한다면 그 응어리가 고스란히 어디로 가겠는가.
화병이 든 사람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그 자식이 나에게 쏟아 부운 똥물들이다.
쏟아낼 것이다.
개운해질 때까지.
평온함도, 들어올 자리가 있어야 들어올 테니까.
아기를 키운 다는 것.
다들 육아가 헬게이트라고 했지만, 나에게 아이는 달랐다.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정말 힘들어도 힘든 줄도 모르고, 아이가 주는 달콤한 행복에 취해 남편의 변화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나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안다.
아이를 키운 다는 것이, 아이를 키운다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보호소에 들어오던 그날 밤부터 아이는 정말로 나의 전부가 되었고, 나는 정말로 아이의 전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일 수밖에 없다.
오늘도 나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내일도 모래도 나는 아이를 키울 것이다.
그리고,
아이도 나를 키우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 자라고 있다.
사랑한다, 아들!
힘내자, 우리!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검색어 "Traurige Frau"중고 매장 사장님과의 만남ㅇㅇ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