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변호사를 통해 앞으로 아이를 보지 않겠다고 의사를 전해온 뒤로 나는 아이를 혼자 책임져야 하는 내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니 당연히 따라오는 생각은,
'내가 독일에서 갑작스럽게 무슨 일을 당해서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거나 만에 하나 사고로 죽는다면, 내 아이는 어떻게 되는가...'였다.
심사숙고 끝에 나는 비상연락망을 만들어 돌리기로 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우리 엄마도, 내 친구들도 모두 첫마디가 무슨 그런 생각을 하느냐 였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게 세상사라는 것을.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런데 내가 아무런 조치도 취해 놓지 않는다면 내 아이는 이 독일 땅에서 순식간에 오갈 곳이 없어지고, 심지어 우리 엄마는 나의 생사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걸...
남편에게 아이를? 더 끔찍하다.
남편은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일방적으로, 그것도 전화로 나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아이를 거부했다.
정 그렇게 이혼을 원한다면 내가 한국에서 취직할 준비를 마치고 독일로 돌아갈 때까지 1년 만이라도 아이를 맡아달라고 하자 펄쩍 뛰며 자기는 절대 애 못 키운다고, 고아원에 줘버리겠다고 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바로 소름이 끼쳤고, 그 시간부로 아이를 남편에게 주겠다는 생각을 일절 접었다.
왜냐하면, 그는 정말로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임신 중 기형아 검사를 받던 시기에, 그에 관한 얘기를 나누자 남편은, 자기는 예쁜 아이만 키울 거라며 아이가 장애가 있으면 교회 앞에 버릴 거라고......
임신한 부부라면 으레 나누는 일반적인 대화를 기대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불쾌해진 나는 결국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며 화를 냈다.
하지만 이내 '실제로 일어난 일도 아닌데 괜한 얘기로 쓸데없는 분란만 만들었구나. 지나치긴 했지만 그래도 그냥 하는 말이겠지. 설마 진심일까.' 하고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 더 흥분하지 않기로 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가 남편에게 가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우리가 한국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ihr(너희들)"이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었다.
오로지 "du(너)"였다. 내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독일인 친구들과 수없이 많은 연락을 나눴지만, 나에게 wie geht's dir? (너 잘 지내?)라고 안부를 묻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wie geht's euch? (너희들 잘 지내?)다.
한국어와는 다르게 문법상 주어가 정확한 독일어에서 이것은 엄청난 차이다. Du를 쓴다는 것은 이미 남편 머릿속에 아이가 없다는 뜻이었다.
별거를 시작할 때도 아이를 안아보지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별거 직후 3개월 간 내 면접교섭요구를 그는 무시했다.
내 연락을 다 차단한 줄도 모르고 보호소에 있는 동안 아이가 열이 펄펄 끊던 3일간 나는 매일같이 받지 않는 남편 번호로 전화를 걸며 울고 또 울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결국 서면으로 아이를 보지 않겠다고 했다.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할까.
이미 그는 수없이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었다, 그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낳아줬다고 해서 다 감사해야 할 부모도 아니요, 낳았다고 해서 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언제까지 피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자식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아버지 노릇을 구걸해야 하는가.
나중에 늙고 병들어 장기기증이 필요할 때 빈이를 찾아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곧바로 아이를 맡아줄 사람, 그다음 내 사고소식을 필요한 곳에 알려주고, 신변 정리를 해 줄 사람, 한국에서 우리 엄마가 올 때까지 장기적으로 아이를 맡아 줄 시이모님 베아테, 그리고 나와 갑작스레 연락이 안돼 애가 탈 한국의 우리 엄마에게 독일에서의 상황을 알려줄 한국인 지인.
나는 이렇게 네 사람에게 서로의 연락처와 역할을 돌렸다. 이로써 나는 독일에서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이 생겨도 아이에 대한 걱정은 좀 덜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베아테에게 특별히 하나 더 부탁을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남편이 아이를 데려가 고아원에 주는 일은 없도록 막아달라고, 우리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아이를 꼭 지켜달라고.
베아테도 울먹이며 나를 꼭 끌어안고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테지만, 만약 그렇더라도 절대 빈이가 고아원에 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무래도 남편과 빨리 서류 정리가 끝나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사람이 죽을 때를 알고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죽을 날 받아두고 날짜를 세야 한다는 게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인사도 하고 내 새끼 잘 부탁한다 말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
어린 자식을 키우니 죽음 자체가 두렵기보다는 어미 없이 살아야 할 내 새끼가 눈에 밟혀 그게 더 두렵다.
다들 나는, 내 가족은 죽음과, 사고와, 범죄와 연관될 일 없는 듯이 살아가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어떤 일이든지 벌어질 수 있는 게 우리 인생이다.
어린아이를 둔 젊은 엄마라고 해서 죽음이 비켜가란 법도 없고, 아직 두 돌이 안된 아이라고 해서 예외도 아니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조차도 우리는 모르고 잠자리에 든다.
그것이 인생이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래로 나는 그것이 더욱더 머릿속에 박히게 되었다.
그리고 별거를 하면서 더 공고해졌다.
너와 내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너무 비관적인 사람일까?
하지만, 죽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삶은 더 빛이 나고, 생은 가치가 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매 순간순간 빈이를 한번 더 안아주고, 한번 더 뽀뽀하고, 한번 더 쓰다듬어준다.
째려보기보다는 웃는 얼굴로, 사랑하는 내 마음을 가득 담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빈이 눈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보면, 웬만해서는 아이가 그 어떤 사고를 쳐도 밉지 않고 이성을 잃을 만큼 화가 나는 일도 거의 없다.
사실은 이게 내가 지난 2년간 독고다이 육아를 하면서 남편의 외도와 이혼을 겪었는데도 큰 육아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육아를 할 수 있었던 비밀이다.
기껏 만들어놓고 무용지물이 되기를 바라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아무 일 없이 잘 살아서 비상연락망이 그냥 무용지물이 되기를 바란다.
예쁜 내 아들이랑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6년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