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편에게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쑥쑥이가 낯설어”
놀란 반응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덤덤한 답변이 돌아왔다.
“몰랐어? 너는 다른 사람은 다 낯설어해. 그런데 자식도 그러는구나”
아… 몰랐다. 다른 사람을 그렇게 낯설어하는 게 티 나는지.
사실은 타인뿐만 아니다.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이 낯설다. 어느 순간 어떤 식으로 툭툭 튀어나오는 또 하나의 자아를 바라볼 때면. ‘음, 너 참 낯설다. 그래도 이렇게 된 거 같이 잘 살아보자’하며 자신을 다독 거렸다.
그런데 자식이라고 달랐을까.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자식을 키우면 키울수록 ‘아, 너는 정말 나랑 다른 인간이구나. 내 품 안에서 안고 나왔지만 역시 다른 인간이야.’라고 생각이 든다는 거다.
누군가는 말했다. “딸 낳아서 참 좋겠어. 딸은 평생 친구야”라고.
이 말에 담긴 좋은 의미는 잘 알고 있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속 한켠으론 의문이 피어오른다. 평생 친구? 그런 게 가능한가? 근데 그게 다른 이유가 아니라 딸이라서 가능하다고?
나는 쑥쑥이가 친구인지 어쩐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엄마가 친구인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엄마는 엄마고 딸은 딸이고 나는 나인 것 같다. 예전에는 그것을 몰라 내가 엄마의 ‘소유’가 아닌 것 같아서 ‘친구’가 아닌 것 같아서 괴로웠던 시기도 있었다.
나의 사십 평생, 쑥쑥이의 30 몇 개월의 평생, 엄마의 육십몇 년의 평생 중에 서로가 얼마 간을 같이 살아왔어도 다른 건 다르고 낯선 건 낯설다. 그 사실이 앞으로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남들과는 다른 낯선 감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할 수 없다. 그것이 '나'이다. 이건 선을 긋는 게 아니다. 나의 한계를 명백히 알고, 마음껏 사랑하되 안 되는 것은 안된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쑥쑥이가 자주 보는 <퍼핀 가족>에선 정착해서 사는 주인공 퍼핀 ‘우나’와 그 마을을 잠시 스쳐 다니러 온 ‘클로이’가 나온다. ‘우나’와 ‘클로이’는 좋은 친구이지만 함께 할 수는 없다. ‘클로이’는 철새이고 ‘우나’는 정착해서 사는 새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다음 해의 만남을 기약하며 평생의 우정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쑥쑥이는 어느 날 이런 말을 내게 했다.
“엄마는 ‘클로이’고, 쑥쑥이는 ‘우나’야”
아마도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오고 가는 엄마가 ‘클로이’처럼, 그리고 다시 만날 시간을 기다리며 나름의 하루를 보내고 있을 자신을 ‘우나’에 빗대어하는 말 같았다. 하지만 그 말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안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엄마는 ‘클로이’고 쑥쑥이는 ‘우나’지. 우리는 서로 다르고 어떨 때는 함께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서로를 생각하고 사랑해. 이런 우리를 친구라고 부를 수도 아닐 수도 있을 거야. 때론 서로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고 서로 상처를 주는 시기도 있겠지. 그래도 우리 이것만은 잊지 말자. 엄마는 그게 무엇이 됐든 언제나 우리 쑥쑥이를 사랑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