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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우 Sep 22. 2024

행복에 관한 메모

 철학 교수님들의 대담 속에서 인상깊었던 구절이 있었다.


 "행복은 시그널, 목표가 될수 없다."


 더 상세한 의미로는, 행복이라는 것은 인간이란 종이 적자생존을 위해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잘 나아가고 있다는 동기부여를 위해 설계된 시그널인데, 생존의 문제를 면한 현대에서는 그 자체가 목표가 되기에 결핍의 원인이 된다는 취지이다. 시그널은 시그널일 뿐인다. 시그널은 그 자체로 내성이 더해지고, 영속하지 않는 특성을 가진다. 결국 시그널이 목표가 되면 끝없는 결핍에 굴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이다. 행복을 가져다주고, 현대인이 갈망하는 많은 것들의 본질을 파고들면 적자 생존의 길과 연결되어 있다. 생존의 길은 직관적으로는 안전 보장의 길이다. 안전 보장을 위해서 가장 인간이 택한 전략은 협력이고, 이 협력에서 관계와 권력이 나온다. 협력을 통해 대외적인 안전을 확보할 수 있고, 권력을 통해서는 개인 차원에서의 생존, 즉 번식과 대내적인 안전이 보장된다.


 협력은 관계에 대한 갈망으로 진화한다. 개별과 보편, 개인과 집단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절충 지대로서 관계는 깊고 단단할 수록, 넓을수록 유리하다. 그래서 사회적인 행위나 타인을 만나고 교류하는데에서 행복이 등장한다. 관계의 기회가 과잉으로 발생하고, 관계가 의무 비슷하게 인식되는 현대에 넓은 관계에 대한 피로감은 자주 목격되지만, 그것은 깊고 단단하지 못한, 즉 건강하지 못한 허위매물과 같은 기회 낭비에 대한 경각심에 가까운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관계가 제약된 사회에서 발생한 집단적 우울감이나, 정책을 우회하거나 회피하며 사회적 행위를 하려던 열망들은 이 관계가 시그널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권력은 모든것을 돈으로 일단 환산하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 들어서서 가장 유동적인 권력인 돈으로 환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직 생활에서는 더 많은 급여나 금전 보상과 더불어 승진으로 인한 권력 획득이 유용한 동기부여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 병립하여 존재하기도 한다. 물론, 최근의 사조는 승진을 기피하고 차라리 돈으로 받거나 회사 생활을 소홀히하고 자산 운용 등을 통해 자체적인 돈을 버는데 집중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현대의 조직이나 회사의 문화가 승진에 따른 적절한 권력을 주지 않거나, 권력에 따른 책임에 대한 부담(돈 자체는 책임을 거의 전제하지 않는다) 나아가서는 삶의 주요 요소로서 직장이 크게 메리트가 사라진 현상 탓이다. 오히려 회사의 제약을 벗어나 자유롭게 삶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자기자본에 대한 추구는 권력의 본질과 닿아 있고, 어쩌면 더 강력히 자본주의화된 사회를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SNS는 그런 관계와 권력 추구의 정점이다. 자신의 권력(돈, 소비력)을 과시하면서 상위 관계에 들고자 자신을 광고하면서, 지금 관계에서 도태되지 아니하고 우월성을 애써 과시하려 한다. 실상 아무도 진중하게 인식하지 않고, 대부분이 무미건조하게 화면을 두번 탭하여 좋아요를 찍을지라도, 플랫폼은 그 것을 정확한 숫자로 보여주고 알림을 보내 집착하게 만든다. 누구도 이사람이 지난주에 무슨 포스팅을 올렸는지 기억하지 않지만, 결국 포스팅할 것을 힘겹게 찾고, 만들고, 소위 힙하게 촬영하여 올리는 것에 삶의 많은 공력을 쏟아붇게 된다. 그렇게 해서 올라가는 좋아요로 하여금 이미 메말라버릴대로 비틀어진 행복이라는 시그널을 긁어 모으려 한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다. 순간순간의 시그널이 충만한 삶을 위한 동기부여가 될 수는 있다. 시그널이라 하여 굳이 바라지 않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것이 목표할만한 정적인 지점이 아니라는 원리를 충분히 인지해야 한다. 인간은 기대의 동물이기도 하다. 거래를 할때도 100만큼 매출 준다고 했다가 50만큼 주면 서운해한다. 반면 10정도 예상했다가 50이 들어오면 즐거워한다. 도달할 곳인줄 알았는데 지나칠 곳이면 허망하고 고통스러워진다. 지나칠 곳인지 알면 그래도 괜찮다. 그럼 도달할 곳은 어디일까? 아직 거기까지는 알수 없다. 일단은 시그널이 인도하는 대로 성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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