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귀족과 왕족은 상당한 사회적 위치와 힘을 누리고 있었다. 이를 대변하듯 어느 자리에서든지 상석부터 마련해 놓고 위계질서에 따라 차례대로 자리에 앉았다. 서구사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그러나 영국 브리튼 사람들의 이야기인 '아서왕의 전설'에서는 이른바 원탁의 기사라고 일컫는 인물들이 나타난다. 원탁은 말 그대로 동그란 식탁, 기사는 아서왕과 운명을 함께하는 중세 기사들이다. 아서왕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한 협력관계에서 사회적 이슈를 논하기를 바랐다. 동그란 식탁에는 상석이 없으며 누가 높은 위치에 있는지, 누가 낮은 기사인지 자리로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유럽에서 큰 영웅담이 되어 영국 귀족사회뿐만 아니라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 퍼졌고 '원형 식탁'은 평등한 관계라는 의미가 부여되어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나는 프랑스에서 그 원형 식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었다. 어느 기숙사 식당이나 가정집에 있는 식탁은 대게 동그란 모양이었다. 비록 사회적 계급 체계는 무너졌을지언정, 자본주의와 물질적 풍요로움 안에서 형성된 사회적 위계질서는 여전히 남아있기에 원형식탁이 꼭 필요한 것이다. 어느 사람이든지 식탁이 놓인 공간의 문을 여는 순간 자신이 갖고 있던 지위와 명예는 갖고 들어오지 못한다.
하필이면 왜 밥 먹는 시간에 원형 식탁이 필요한지 하찮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철저한 개인주의 하에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영역이 분명히 있으며 그 영역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이 침범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개개인의 주체가 하나의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게 바로 프랑스다. 그런데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충분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니 바로 밥 먹을 때다. 같은 식탁에서, 같은 음식을 먹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 사회적 논의 등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내뱉는다. 그래서 프랑스 사회에서 밥 먹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며 이 사람들이 몇 시간을 가지고 오랜 시간밥을 먹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토록 우리나라에서 위계질서가 중요한지 의문점을 가지며 살아왔다. 아무리 유교적 이념이 우리나라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쩔 때는 너무 심하다 싶을 때도 있다. 올바르고 논리적인 상황의 흐름에서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한 마디를 하면 논리마저 몽땅 무너지는 게 바로 우리나라 사회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는 사회적 지위가 꼭 높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단 사원이든 고위급 사장이든 각자의 해야 하는 역할에서 오는 '다른 위치'라고 본다. 일의 효율성을 위해 조직이 생겼고 여러 사람을 진두지휘할 책임자가 있으며 또 그 책임자들을 총 관리할 감독관들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위치와 권력 곧 힘은 그 조직 안에서만 이뤄져야 하고 조직 안에서도 일을 효율성을 위해서만 휘둘러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곳곳에서 사회적 위치와 힘이 주어진 조직을 벗어나 다른 사회, 친목 단체 심지어 가정과 종교에서도 그 힘이 휘둘러지는 일이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점에 무척이나 아쉬움을 안고 비판과 대항을 해왔다. 그러나 열이면 열 번 모두 그 싸움에서 지고 말았았고 권력자의 힘 있는 누름과 사회적 배제, 낙인 등을 안고 살아야 했다. 최근에도 어느 종교단체 지도자로부터, 내가 끊임없이 사회적 불의에 비판을 하면 대의를 위한 일에 껴줄 수 없다는 강한 어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한때 나는 내 생각이 너무 허무맹랑하고 허황된 꿈을 갖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내가 너무 몽상가처럼 살아가는 게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쌓여온 역사와 문화가 다르지만 최소한의 존중 차원에서 원탁을 지키고 있는 프랑스 사회만을 보더라도 나는 내 생각이 전혀 뭉게구름 같은 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프랑스도 처음부터 원탁을 놓고 민족과 나라가 시작한 게 아니었다. 사회적 불의에 따라 언제나 소리 내어 자신의 의견을 내어 살아온 시민들의 합의에 따른 결과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상하관계에 집착할까? 우리나라 사회 곳곳에서도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평등한 관계에 따른 사회적 구성을 주장하는데도 언제나 묵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커다란 의문점을 내게 안겨주며 가슴 한편에 불편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