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체크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효리가 찬혁에게 물었다.
"요즘에는 그러면 삶의 낙이 뭐야?"
"딱히 어떤 대상이 있다기보다는.. 저로서 살아가는거? 그거면 된 거 같아요."
"좋아? 지금 너무 좋아?"
"막 먼 목표가 아니고 그냥 오늘 자기 전까지, 오늘 내가.. 되게 나였다. 그러면 오늘 삶이 끝나도 좋아요."
"나 오늘 나였다? 나 오늘 이찬혁이었다?"
"네"
아마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 아닐까. 하루를 나로서 살아가는 것.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곳에서, 나 자신을 속이고 숨기는 것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최선을 다해서 해내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 해야 할 말은 자유롭게 하고 불필요한 말은 안 해도 되는 것. 내가 내 자신에게 당당해지는 것. 내 자신이 작아지지 않는 것. 이렇게만 산다면 찬혁이 말한 대로 당장 삶이 끝나도 아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와 강연에서는 우리가 이같이 살기를 권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를, 세상이 요구하는 역할보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가기를. <서울 체크인>의 위 장면이 클립으로 만들어져 퍼지는 상황도 '이렇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이다'와 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는 듯하다.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좋아 보인다. 결국엔 모두 그렇게 살아야만 할 것 같다. 이렇듯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 퇴사를 권유하고 삶의 방식을 바꾸기를 제안하는 이야기는 많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로 결정하는 데에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은 쉽게 간과되는 듯하다. 회사를 나오면 당장은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지 않아도 되고 상사에게 깨지지 않아도 되고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나 자신이 초라하고 작아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아침 늦게까지 늘어지게 잘 수도 있고 햇빛이 쨍쨍한 낮에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있을 수도 있고 러시아워에 혼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진정으로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찾아볼 수도 있고, 평소에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을 공부할 수도 있으며, 근무시간을 채우기 위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던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안정적인 수입을 포기하는 것이며, 사회에서의 소속감을 포기하는 것이며,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포기하는 것이다. 나는 내 소비습관을 바꿔야 하며, 외로움과 고독함에 익숙해져야 하며, 수시로 올라오는 내 자신에 대한 의심을 극복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초라해지는 나 자신을 견뎌야 한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멋지고 대단한 일이지만, 사회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그 순간 바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다. 그런 면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찬혁이 나는 마냥 부럽기만 하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지 이제 약 5개월이 되었다. 매일 나를 하찮고 볼품없는 존재로 만들었던 조직을 나오는 순간 나는 말 그대로 자유를 찾았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고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혼이 나고 구박을 받았던 시간들은 끝이 났고, 매일매일을 '나답게' 살고 있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나 책을 마음껏 보고, 나누고 싶은 생각이나 의견이 생길 때면 그림이나 글로 기록하고 있다. 사회생활에서 살아남으려고 내가 아닌 모습으로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충만하게 가질 수 있다. 복잡한 조직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힘든 나는 모든 과정을 내가 주도하고 결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나는 더 이상 작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비싸지도 않은 옷을 선뜻 결제하지 못하고 며칠을 고민하는 나를 보며, 다음 월급을 믿고 주저 않고 카드를 긁던 내 모습이 생각날 때가 있다.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날, 삼삼오오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 직장인들을 보면 문득 사람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평일 낮, 한산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 '다들 일하고 있을 텐데 이렇게 있어도 되나'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직장인 시절과 달리 불규칙한 수입과 보장되지 않은 미래가 유독 걱정이 되는 날이면, 마음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나를 괴롭게 하기도 한다. 찬혁이 '생긴 대로' 살면서도 자기 앞가림을 하는 것과 같은 수준에 아직 오르지 못한 나는 마음의 자유를 얻은 대신 비어버린 통장과 수시로 덮쳐오는 불안감도 같이 얻었다.
결국 나는 이러한 결론에 다다랐다. 어느 삶의 형태든 올바른 길은 없다고. 뚝심 있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찾아 도전하는 삶이든 생계를 위해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삶이든 각자의 선택이라고.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넉넉한 생활 방식을 포기하는 대신에 자기 자신에 대한 당당함을 얻는 것이고, 사회의 부품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잔인하고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상처받는 대신에 가정을 부양하고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재력을 얻는 것이다. 스스로의 도약을 위해 준비 중인 자에게 현실을 모르고 허송세월 한다고 비난할 일도, 매일 회사에서 똑같은 일과를 견뎌내는 이들에게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고 폄하할 일도 아니다. 어떤 형태의 삶이든 모두 치열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매일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일과를 마친 후 찬혁처럼 "오늘 내가.. 되게 나였다"고 말하는 하루도, 자기 자신을 잠깐 죽이고 열심히 일하고 나서 "오늘 나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고 말하는 하루도 모두 옳다. 나 답게 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모두가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정을 바치는 삶도, 퇴근하고 누워서 유튜브나 티비를 보며 휴식을 취하는 삶의 방식도 모두 귀하다.
그래서 오늘도 사고 싶은 옷을 장바구니에 넣기만 하고 결제를 누르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싫어하는 일은 안 하면서 돈도 여유롭게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너는 욕심쟁이야. 소비의 자유를 포기한 대신에 너는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마칠 수 있잖아. '오늘 내가.. 되게 나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