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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여니 Jul 14. 2022

매일매일의 인간 승리

 


 아침에 알람을 듣고 힘들게 일어나고 밤에는 늦지 않게 잠이 든다.

삼시 세 끼를 챙겨 먹는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으면 몸에 좋지 않으므로 건강한 음식을 골고루 챙겨 먹는다.

활동하기 위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한다.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하고 근력운동도 한다.

짬이 날 때는 책을 읽거나 취미활동을 하거나 공부를 한다.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똑같이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체력을 길러야 하며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에 규칙적으로 잠이 들어야 한다.

  이렇게 끝도 없이 연결된다.


  어느 날 저녁 늦게,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켜 밖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동물들은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인간은 억지로 몸을 힘들게 움직이면서 운동을 해야 할까. 그렇다. 달리기를 하기가 너무 싫었던 나머지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달리기 트랙 옆 개울가에서 유유히 떠다니고 있는 오리는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이고 가만히 있고 싶을 때 가만히 있어도 동물로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는데, 인간으로 태어난 나는 가만히 누워 있고 싶은 내 본능과 싸워서 억지로 밖에 나와 숨이 넘어갈 듯이 달려야 한다. 그것도 어쩌다 한 번 하면 안 되고 규칙적으로. 달리기를 당장 멈추고 걷고 싶지만 안 된다고 내 자신을 채찍질하는 나를 보며 생각한다.

  인간으로 사는 거, 너무 피곤하다.



  가끔은 인간으로 제대로 기능하며 살기 위한 모든 과정이 귀찮고 피곤하다. 꼬박꼬박 끼니를 챙겨 먹어야 하는 것, 동시에 너무 칼로리가 높거나 맵거나 짜거나 염분이 높은 음식은 먹고 싶어도 자제해야 하는 것,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서 활동량을 유지하고 체력을 길러야 하는 것, 편한 자세로만 생활하면 몸이 엉망이 되니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것, 계절에 맞는 옷을 제때제때 준비해 입어야 하는 것, 자기 자신을 꾸며야 하는 것. 이 모든 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으레 요구되는 것들이나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반대로 이를 위해 매 순간 본능과 싸워야 한다. 자고 싶지만 눈을 떠야 하고, 먹고 싶지만 참아야 하고, 움직이고 싶지 않지만 운동을 해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라 평소에는 의식을 하지 못하다가도 가끔씩 이 모든 게 새삼스레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동물들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되는데 인간은 왜 일어나는 것도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엄청난 의지가 필요한 것일까. 동물들은 따로 운동을 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되는데 인간은 왜 힘들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일까.

  당연한 것들이 나에게는 순간순간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고 투쟁이다. 자고 싶지만 눈을 뜨는 나만의 싸움. 누워 있고 싶지만 일어나서 운동을 열심히 하는 나만의 싸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나만의 싸움. 본능을 거부하는 싸움. 평생이 귀차니즘과의 싸움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이 기본적인 역할들을 해내는 것도 투쟁인 나에게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가 상대적으로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비교할 여유조차 없다. 인간으로 기능하기도 간신히 하고 있는 나인데 언제 주변을 둘러보고 평가하고 비교하겠는가. 자고 싶은 본능을 누르고 아침에 눈을 뜨면 그게 나에겐 승리이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싶은 본능을 누르고 내가 요리해서 건강한 집밥을 먹으면 그게 그날의 승리이다. 움직이기 너무나도 싫지만 일어나 운동을 하러 문 밖을 나서는 데 성공하면 그게 나에게는 인간 승리이고 기적이다. 부자인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 명예를 가진 사람, 너무나도 대단한 사람들은 많지만 엄청난 고민 끝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숨을 헐떡거리며 달리고 와서 야식을 먹지 않고 제시간에 잠드는 나는 이미 그날의 투쟁에서 이긴 것이며 그날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끝낸 것이다. 귀차니즘이 몸을 지배해버린 나에게 더 큰 욕심은 과분하다. 나는 이미 인간으로 존재하는 데 온 에너지를 쓰고 있으며, 매일매일 인간 승리와 기적을 이루고 있다. 인간으로 사는 게 피곤한 나이지만 동시에 그 피곤한 일을 나는 해내고 있다.


  이상 달리기가 너무나도 하기 싫은 자의 공상이자 주절거림이었다. 인간이니 본능이니 하는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운동이나 하러 나가라고 내 자신을 소파에서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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