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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writer Nov 07. 2021

[번외] 내 책이 반짝반짝 빛나는 건 너무 당연해

<생활감성에세이,애도에세이 '제무제'> 독립서점 입고기



오전에 잠깐 외출했다 꽃을 샀다.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월요일(21.11.8.)이면 첫 책의 발행일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출간이 많이 늦어졌고,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이라 긴장도나 기쁨이 크지 않았는데 한 꺼풀 바쁜 시기가 지나가고 한가롭게 책을 포장하며 거리를 거닐 여유가 생기니 이제야 제대로 마음이 선선하다.


책을 출간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들(친구들의 축하, 서점 계약, 입고문의- 그러니까 단순히 내게 이런 책이 있으니 입고가 가능하겠냐는 바로 그 질문 등)을 누리며, 비로소 이제야 '하길 잘했다'는 옅은 감정이 오른다.




                                                                                       :::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려 할 때는 두 가지 종류의 긴장감이 따른다.

이는 평소의 상관성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는 대충 어떻게 진행되고 하면 되는지 아는 데서 비롯하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극도로 미약한 긴장감, 하나는 머릿속으로 한 번 스치듯 떠나던 생각을 붙잡아 시행하는데, 정말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이고 어떻게 하면 될지 1부터가 아닌 0.0000001부터도 몰라서 찾아오는 극강의 긴장감.


책을 만드는 일은 사실 내게는 전자다.

나는 글에는 아주 익숙하고, 디자인은 적어도 실무를 경험했다.


요즘, 책이 제작되고 다시금 필요한 여러 정보를 검색하면서 정말 출판업이나 관련 실무를 조금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독립서적을 만들고 그 일시집약적 경험을 잊지 않고 기록하고 공유하고자 쓴 시간의 일대기들을 몇 번 접했는데, 용지부터 인쇄, 포장, 계약 등 처음 접하는 일들을 성난 파도 속을 헤집듯 헤치고 나간 분투기를 읽으며 내가 다 아득할 정도였다.


실무를 경험한 나도 이 반복되는 노동과 정보 수집에 지치는데, 하물며 인쇄나 출판에 대해 전혀 모르는 그들이 자신의 첫 책을 만들기 위해 유튜브와 블로그를 뒤지고, 시행착오를 거친 과정들은 무지의 경이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다.

일단 용지만 해도 그렇다. '대체 어떤 종이를 어떻게 써야 한단 말인가?'

지금의 나로서도 감히 그들에게 답할 수 없다.

정말 한 발자국, 발자국이 결단 자체였을 것 같다.

나라면 절대 시도할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겠지만, 출판사를 만들고 책을 제작함에 있어 내가 가지고 있던 긴장감은 바로 전자의 '대충 어떻게 진행되고 하면 되는지 아는 데서 비롯하는 극도로 미약한 긴장감'이었다.

책을 어떻게 만들면 되는지, 어디서 만들지, 어떻게 유통할지, 종이를 뭘 쓸지, 어떻게 판매할지 등… 100%의 관행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85% 정도는 다 알고 있었다.

그 안에서 좀 더 세분화되는 불문율들을 이번 경험을 통해 더 정확히 배웠을 뿐이다. 이정표가 다 손에 쥐여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아주 새로운 재미를 만나고 있다.

대충 안다는 것은 어쩌면 전혀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현재 느낀다.

바로 '독립서점 입고 문의' 때문이다.

관행적인 절차로 여겼던 이 과정에서 내가 사뭇 예상하지 못한 큰 기쁨을 맛보고 있기 때문이다.


85% 다 안다는 관행성이 내게 큰 긴장감을 못 주듯 기쁨도 크지 않았는데,

반대로 이는 전혀 모르는 15%의 기쁨이 숨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



보통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경험해 보고 싶다'라며 무언가 해보지 않을 것을 추구할 때, 이미 오직 자신의 인지 안에서 가능한 상상으로서만 자신이 경험할 것들을 제한해 둔다. 즉, "새로운 것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하나, 이미 그 기대 안에서 자신이 가닿을 수 있는 경험론적 지점(=한계)이 제안되어 있고, 이를 "체현한 상태에서 선택한다"라는 뜻이다. 즉, "새로운 것을 추구하겠다"고 하며 방향을 트나, 이미 머릿속에서 체험한 감각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새로운 것'에 끌려 자신이 생각하기에 '새로운 것(그러나 이는 이미 열린 정보)'을 추구한다고 말하나, 이미 인지론적으로 아는 것을 추구하는 것에 사실상 가깝다. (상상 역시 하나의 경험이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만나는 것은, 자신이 '새로운 것'이라고 믿었던 것, 자신이 추구하겠다고 공표한 그 '새로운 것 자체'가 아닌 그 곁가지에서 파생되는 무인지적 상태의 경험들이다. 이것이 정말로 새로운 것이다. 하지만, 만나기 전에는 존재하는 줄 알 수 없으므로, '경험할 것'이라고 공표하거나 기대할 수 없다. 무엇을 향해 가는지도 모른다. 정말 새로운 것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일들이 벌어지거나, 예상된 절차였으나 그 안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감각들이 교차적으로 피어나는 데서 맛보는 신비에 존재했던 것이다. 내겐 독립서점 입고 문의가 그러한 부분 같다.





이제야 미리 추려둔 독립서점 몇 곳에 처음 입고 문의를 했고, 다음 날 추가로 더 문의했는데, 사실 첫날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독립서점 입고에 평소 거대한 의의를 둔다거나 그만의 매력이나 큰 설렘에 부풀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이렇게 많은 책이 쏟아지니 주인들도 응대하거나 고르기 힘들겠지, 애로사항이 있겠지, 무수한 책 중 하나일 뿐일 테니 입고 거절도 많이 받겠지' 하는 같은 업계 관계자로서의 심심하고도 평온한 마음이 컸다.


이왕 만들었으니 그래도 '관행'처럼 접촉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받아준다면 품을 판 서점 주인에게 미안하지나 않게 '조금이나마 선택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다.

이번 출간으로 수익을 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 보니 큰 욕심도 바람도 없어서 그랬다.

최소로 문의하고자 했다.


그런데 입고 문의를 시작하며 알게 된 몰랐던 사실이 있다.


제주의 한 책방에서 가장 먼저 답변을 받았는데 판매용 도서는 기본적으로 개별포장을 선호한다고 하셨다. 특히 제주는 환경상 습기에 약해 무리해서 포장을 따로 할 필요는 없지만 가능한 방안이 있다면 해주시면 좋다는 안내를 받았다. 생각해 보니 그래야 서점 주인 입장에서나 책을 만든 내 입장에서나 보관과 관리가 용이할 것 같았다. 종료된 텀블벅 후원에 사용한 포장재가 많이 남았기에 바로 포장을 시작했다. 이때까지는 좀 번거롭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막상 다 포장하고 서점지기님께 작은 쪽지를 쓰는데 이상한 기쁨을 느꼈다. 일단, 나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개별 포장'이라는 절차 하나를 만난 데서 새로움이라는 감각이 들러붙었다. 또 하나는, 살아 있는 나로서 누군가와 상호작용하는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생동감이 있었다. 책을 만든 사람으로서 나보다 더 책을 사랑할 서점 주인과 1 대 1로 대화할 수 있었다. 마치 '내가 여기 살아 있다'는 입력어를 세상으로 송출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포장을 따로 하니 출판사 소개서도 넣을 수 있어 나로서도 더 좋았다. 팔리지 않는다면 버리는 포장이 될 테지만, 그래도, 이 시간들을 소중히 보듬고 싶었다. 내가 가보지 못한 먼 어느 지점으로 책을 떠나보낸다는 생각이 이상한 생경함과 생동감을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조금 더 어울릴 곳들을 찾아볼까' 하고 검색하다 보니, 그동안은 일에 지쳐 느끼지 못했던 호기심과 감흥들이 솟아나며 '여기도 좋겠다, 저기도 좋겠다, 여기 놓인다면 정말 잘 어우러지겠다' 하는 상상들이 피어났고, 메일 몇 개를 더 보냈다.

진짜 살아 있는 감각이었다.


영원히 그곳에서 팔리지 못한 채 스러진 데도 만족스러운 충만함이었다.

물론 서점 주인과 나,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 팔리는 책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도 함께 공존한다.


그런데, 그렇게 그냥 선택받지 못한 채 스러진 데도,

그게 이 책의 짜임과 너무 알맞아서,

그 자체로 본의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일에 부담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다.

발송비, 재고 감당, 포장비, 시간 등 이것저것 한답시고 조금씩 더해진 지출이 돌아보면 꽤 클지 모르겠으나, 돈은 언제든지 또 벌 수 있다.

어쨌든 그렇게 생각해 보지 못한 이 책의 스스로서의 생명력을 마주 보게 된 것이 내가 예상하지 못한 세 번째 즐거움이다.


마지막 네 번째 즐거움은 이 글의 제목과 연결된다.


독립서점에 자신의 작은 책들을 입고시킨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언젠가 꼭 방문할게요"라는 약속과 실제 방문하게 돼 "내 책이 입고된 OO 서점에 왔다"라는 소회에 젖은 잦은 문장들을 보며 불현듯 나도 내 책의 입고로 연이 닿은 서점에 '언젠가 꼭 방문해야지'라고 입으로 곱씹던 때 이 즐거움은 찾아왔다.


그 핑계로, 그 탓으로, 난 제주에도, 대전에도, 전주에도, 아마 가게 될 것이다.

말로만 "가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렇게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내 책이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내 책이 작은 책장 귀퉁이 어디엔가 꽂혀 있을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나 예쁠까.

얼마나 좋을까.


그때, 이 말이 울렸다.


"내 책이 반짝반짝 빛나는 건 너무 당연해."


이건 내가 내 책을 볼 때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책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그들의 눈으로 투영하던 감각이었다.

나에게는 그 감각이 전혀 없었다.

그들이 그래 보여서, '저들은 그런 것 같네'라고 느꼈던 감각이었다.

그들의 눈에 자신의 책들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고로, 이제야 다른 이들이 책을 제작할 궁리를 하며, 실제 제작하며, 완성된 후로 처음부터 그토록 즐거이 꿈꿨던 기쁨들을 나는 꿈꾸는 중이다.

당연히 내 책이니까, 내 눈에 반짝반짝 빛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부끄러울 필요가 없다.

모두 이런 마음이겠지?


다, 자신의 책이 얼마나 빛날까.

얼마나 예쁠까.


저렇게 홀로 반짝이는데 왜 사람들이 "이 반짝이는 건 대체 무엇이냐"고, "도대체 무엇인데 저렇게 혼자 반짝이냐"고 수군대지 않는다는 것이 퍽 이상할 것이다.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붙잡고 묻고 싶을 것이다.



                                                                                       :::





어느 날 나는 꽃을 샀고, 누군가는 그 시간에 꽃과 나무를 심었다.

동시에 낙엽은 무심하게 떨어졌다.

뒤돌아보지 않는 아름다움은 가장 무섭고 큰 아름다움이다.


생각해 보면 서로 할 일을 하며 사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맞물린다는 것은 언제나 참으로 오묘하다.


책의 생명력도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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