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돈 관리, 어떻게 해야할까?
고정수입인 월급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생활비는 물론 당장 매달 내야하는 은행 대출이 머릿 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월급쟁이로 살아왔고, 또 한동안은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은행 대출이 내 발목을 잡게 될 줄 몰랐다. 적어도 은행대출 기간까지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러다가 나 신용불량자 되는거 아니야...?)
퇴사 후 안전한 생활을 위한 재정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이를 위해 정확한 현금 흐름을 따져보고, 퇴사 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예상해보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부분을 특별히 신경써야 하고, 또 어떤 부분을 꼭 마련해두어야 하는지 등을 알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내가 퇴사 후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쳐갔던 고민의 과정을 간략하게 서술해보려고 한다.
현재 나의 현금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크게 자산, 수입, 지출 항목으로 나눠 상세하게 살펴보았다.
사회초년생으로 회사를 다닌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상 모아놓은 돈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 전세 대출이나 적금으로 돈을 묶어놓았기 때문에, 당장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자산은 한 달치 월급 정도의 비상금 뿐이었다. 따라서 만약 현재의 재정 상태로는 버티기 어렵다면 적금을 깨거나 전세집을 팔고 본가로 들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비상금
전세자금(1년 6개월 계약 남음)
적금(10개월, 1년 남음)
다음으로 당장의 퇴사 후 수입으로는 퇴직금, 1~2달치의 월급, 실업급여, 긴급재난지원금이 있었다. 이 중에서 퇴직금은 일단 먼 미래를 위해 연금으로 묶어놓을 계획이라 사실상 수입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는 걸로 변경!) 이 중에서 가장 기대할 수 있는 수입원은 실업급여뿐이다. 운좋게도 2019년 10월부터 구직급여 상한액과 예상지급일수가 더 나은 조건으로 변경되었다. (퇴직급여 및 실업급여 관련 작성 글)
퇴직금
월급(1~2달치)
실업급여
긴급생활지원금
마지막으로, 지출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관리 포인트는 은행 대출이었다. 은행 대출은 잘 관리하지 않으면 신용불량이라는 정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출 관리 대상 1순위였다. 지출은 크게 고정 지출(비소비성 지출)과 변동 지출(소비성 지출)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고정 지출: 대부분 매달 은행에서 자동이체 되는 비소비성 지출이었다. 해당 내역들은 퇴사 이전과 이후의 비용 차이가 없으며,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신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각별한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특별히 이 중에서도 말 그대로 지출뿐인 비용과 저축 비용으로 나눴는데, 그 이유는 저축 비용은 당장은 지출이지만 추후 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변동 지출: 식비, 음료, 교통비 등 대부분 생활과 관련한 소비성 지출이다. 해당 내역들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퇴사 이후에 지출을 줄일 수 있다. 변동 지출 중에서도 생활함에 있어 필수 비용과 부수 비용을 나누었다. 그 중에서도 '음료(커피)'는 끝까지 필수비용에 넣어야할지 부수비용에 넣어야할지 고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수비용에 넣은 이유는, 커피에는 '음료'뿐만 아니라 '카페'라는 공간 사용료가 포함되어 있음을 고려했을 때, 퇴사 후에 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집 외에 카페를 이용하는 것이 내게 필요한 지출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필수 소비 지출을 제외한 부수 비용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최대한 아낄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위에서 현금흐름을 파악하더라도, 미래의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따라서 위의 현금흐름을 토대로, 퇴사 후 재정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상황과 그로 인한 위기 및 대처 가능성을 예상하기 위해 가상 시나리오를 설계해보았다.
Scene #1. 가족 경조사, 의료비, 교육비 등 갑자기 큰 비용이 나가는 일이 생긴다.
Scene #2. 고용시장이 마비되어 예상보다 구직 활동이 길어진다.
Scene #3. 전세방이 예상보다 늦게 빠진다.
이외에도 더 많은 시나리오가 발생할 수 있겠지만, 위의 세가지 상황이 가장 발생할 가능성 높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재정 문제와 대처 방법을 집중적으로 생각해보았다.
첫번째 상황과 두번째 상황은 공통적으로 '현금흐름의 문제'가 생기는 경우이다. 첫번째 상황은 예상한 현금흐름에서 지출이 커지는 것이고, 두번째 상황은 수입의 공백기가 길어지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두 가지 상황 모두 안전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재정안전망'을 마련해두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기본 2~3달은 재정을 안전하게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을 따로 모아두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적금이나 퇴직금을 깨야하는 상황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음을 미리 인지하고 있어야겠다.
세번째 상황은 '자산 처리의 문제'와 연관된다. 일단 전세는 계약 기간까지 내가 거주해야할 의무가 있어 만약 그 계약을 파기했을 시, 내가 부동산 중개비를 지불하고서라도 다음 살 사람을 구해야 한다. 사실상 올해 안으로 구직에 성공하지 않는 이상, 계약기간(내년 하반기)을 다 채우고 나오는 것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계약 파기 비용은 미리 염두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더 문제가 되는 상황은 전세방을 내놓았는데 예상보다 늦게 빠지는 경우이다. 이 경우, 예상치 못한 대출금 지출과 집 처리 문제로 인한 심적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 있다. 세번째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내가 희망하는 시점보다 2~3달 전에 미리 방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혹시 모를 전세대출금의 여비를 비상금으로 준비해놓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전체적인 현금흐름을 파악하고 가상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나니, 이제 퇴사 후 재정을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았다. 처음 퇴사를 결정했을 때만 해도 "서울 전세살이 싹다 정리하고 본가로 내려가서 지출을 무조건 줄이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지출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세자금의 대출 원금을 바로 현금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이 궁하다고, 나의 삶에 있어서 돈의 문제만 따질 수는 없었다. 퇴사 이후에도 구직, 경제생활, 자기계발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서울에 머물러 있는 것이 유리했고,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해진 자취생활을 버리고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따라서 재정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 단순히 "비용을 줄이자"보다는 "나만의 명확한 기준을 세우자"라는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나만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 최소한의 재정 안전망(2~3달치 자금 + 비상금)을 마련한다.
- 재정 안전망을 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전세 생활을 지속한다.
- 고정지출 외 식비, 교통비, 쇼핑비 등 변동지출은 최대한 절약한다.
- 최대한 적금, 청약, 퇴직금 등은 중간에 깨지 않도록 한다.
위의 기준을 바탕으로 "올해 말까지는 일차적으로 자취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사실 퇴사자에게 돈 문제란 정말 짠하고, 다소 부끄러운 부분이라 어느 정도까지 솔직하게 글을 써야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퇴사에 있어 가장 현실적이고 우선적인 문제는 돈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쓰려고 했답니다.ㅎㅎ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