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을 보는 시선에 대하여
스무 살의 내가 가장 궁금했을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대학을 못 갔다는 사실에 세상 무너지며 울었던 나에게 그러니깐 또 다른 고졸 스무 살에게.
대학에 가야 하냐고 물으면 가면 좋지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니다. 이다음 말이 중요한데 대학에 갔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고 대학을 가지 않았다고 해서 망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물론 나는 대학에 간 삶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저 봤을 뿐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반대의 삶이다.
대학에 안 가면 어떻게 될까?
내가 겪은 세 가지 이야기 중 첫 번째
사람들이 고졸을 보는 시선
브런치 작가 스마일펄님이 쓰신 연세대 졸업장이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이란 글을 읽었다. 작가님은 글에서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란 단어를 썼는데 그건 타인의 평가 혹은 시선이 어떠한지에 따라 내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이다. 그러니깐 부모님, 친구, 선생님, 직장 상사 등 나에게 가까운 사람이 나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감을 보이면 그에 맞는 성과를 현실에서 이루어 낸다는 것이다. 대학으로 이야기하면 명문대에 간 사람은 그 사실만으로도 믿음직스럽고 똑 부러진다는 시선을 받기가 쉽다는 것. 반면 나는 그 반대의 시선을 받은 적이 두 번 있는데 말해주고 싶다.
첫 번째는 스무 살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의류매장 아르바이트를 한 때이다. 친구가 엄마와 함께 쇼핑할 겸 나를 보러 왔다. 친구의 반가운 얼굴을 보니 일하다가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근데 어머니는 어디 계시지?' 하고 쳐다보는데 매장 한 발치에 떨어져서 어딘가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시곤 팔짱을 끼고 계시는 게 아닌가. 잠깐 인사한 친구는 다시 어머니에게로 갔고 인사할 틈조차 없었다. 그때 나를 위아래로 흘겨보던 시선이 여전히 생각난다. 말하지 않아도 무어라 하는지 알 것 같은 눈빛에 그때 처음으로 세상이 나를 보는 시선을 생각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맘시터로 일하러 간 때이다. 요목조목 나에 대한 소개를 써서 올렸고 강남 어느 한 가정에 지원서를 넣었다. 초등학생 여자 아이를 돌보는 일이었는데 어머니는 외교관, 아버지는 대학교수 의사인 그런 집이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하신 말. '사실 아이 아빠가 선생님 고졸이라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저는 선생님 글이 좋아서 면접을 보고 싶었던 것이고요.' 나에 대한 고민이 적나라하면서도 명쾌했다. 나는 대학에 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면 되었으니깐. 그리고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까지도. 대학 갔다면 설명이 좀 더 짧지 않았을까 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대학생이냔 말에 나는 아니라고 답하며 묻지도 않은 설명을 덧붙이곤 했다. 마치 내가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것이라는 걸.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애써 설명했다. 그렇다고 내가 사람들의 말과 시선에 상처받은 건 아니다. 의외로 저런 말을 듣고 시선을 받았을 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덤덤히 넘기곤 했다. 어쩌면 내가 선택한 일에 대한 당연한 수순처럼 말이다. 그래도 그때마다 다짐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없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고. 나는 남들에게서 너 진짜 멋지다, 잘 될 것 같아라는 말을 듣지 못했지만 내가 내게 해주었다.
학교에 가지 않은 시간을 스스로 채우려 노력해 왔다. 스무 살에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학교가 아닌 나를 찾는 시간이었으므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보고 듣고 느꼈다. 다시 돌아와서 대학에 안 가면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답을 하고 싶다.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세상 무너지진 않는다. 다만 나만 멈추어 있는 듯한 느낌에 이따금 외롭고 불안하다. 그럼에도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니 자기 사랑을 부지런히 펼치는 데 제격이란 말을 하고 싶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응원해주어야 한다는 것. 나를 멋지다고 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내가 나를 멋지다고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 정말 잘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