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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프랑스, 못 오를리 없건마는

챕터 8.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게 하는, 안전과 열정 사이

by 노마드 써니

<챕터 8 미리보기>

- 돈을 잘 벌든 마일을 잘 모으든 뭐든 해서 장거리 비행은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자

- 내 안의 영어밭과 한국어밭이 합병을 하는 과정

- 버티는 힘을 길러주는 클라이밍

- 몸의 감각과 의사소통 기술을 키워주는 아크로요가

- 안전으로 단단한 땅에 열정을 부어주면 성장의 꽃이 핀다.




***


남아공을 떠나 나는 태국으로 날아갔다. 나미비아에서 친하게 지낸 제임스가 태국의 코란타(Koh Lanta) 섬에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Kohub)에 대해서 하도 얘기를 했어서 궁금하기도 했고, 3월에는 회사에서 한국에 있으면서 일을 하길 원해서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곳으로 지내기에도 태국이 괜찮다 싶었다. 하도 대륙을 잘 건너 다니다 보니 6시간 정도면 가깝지, 그럼. 대륙 건너기를 옆동네가듯 한다. 그렇게 태국에서 지내면서 아침에 바다로 나가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저녁에는 일을 하고 숙소에 들어와 바로 잠에 빠져드는 빡센 일정을 보냈지만, 밤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때면, 석양이 지는 바닷가에서 가격 저렴한 마사지를 받을 때면 남아공을 뒤로하고 온 것이 덜 아쉬운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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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태국


한국에 들어와서는 정신이 없었다. 거의 주말에도 업무 협력할 회사들과의 미팅이 있거나 고객들과의 행사로 정신없이 분주한 시간을 보냈고, 햇수로는 지금 직장 6년 차였는데 그중에서 시간을 따졌을 때 가장 일을 많이 한 달이 되었다. 그 와중에 시간을 쪼개 친구들도 만나고 부모님 하고도 시간을 보내려니 얼마나 사람이 효율적이어야 하는지. 부모님 댁이 있는 지방에 내려가 2주를 보내고 다시 떠날 때가 금방 다가왔다.


한국을 다시 떠날 때 비행기표는 인천발 파리행 비즈니스 석으로 구매했는데, 항공사 제휴 신용카드들을 발급받아 사용한 덕에 발급할 때 받은 마일리지와 구매금액에 따라 적립한 마일리지, 이전에 조금 있던 탑승 마일리지를 합쳐서 편도 비즈니스 석 예약이 가능했다. 처음 타보는 비즈니스 석이라 기대가 많았는데, 비행시간 자체도 길어서 힘든데 기체가 흔들리는 순간들이 많았어서 이걸 이코노미로 갔으면 정말 나는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짧은 비행은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는 것이 정말 문제가 되지 않는데, 긴 비행은 이제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싶다. 돈 열심히 벌어야지. 아니면 짧은 비행편만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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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먹어버린 사진도 있지만. 요즘엔 대한항공 파리행 비행편이 슬리퍼 기체라던데, 저때는 스위트였다


파리에 도착해서 나는 바로 기차역으로 향했다. 낭만의 파리라고들 하건만 나에게는 관심 밖. 이미 지금까지 갔던 여행지들을 살펴보고 알아챘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도시, 특히 사람이 많은 도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부대끼는 느낌을 힘들어해서, 서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이유도 이 부분이 크다. 어쨌든. 기차역에 도착을 했는데 도무지 어디서 기차를 타는지를 모르겠는 거다. 내 기차에 대한 정보가 역 어디에도 안 보여서 이게 도대체 뭐지 하고 역무원을 붙잡고 물어보니, 내 기차가 버스로 바뀌었단다. 아니 뭐 이런 게 다 있어. 역무원에게 물어 물어 버스를 타는 곳을 찾아 탑승했다.


밤 버스를 타고 내가 향한 곳은 프랑스 알프스 지역에 브리앙송(Briançon)이다. 클라우드 시타델(Cloud Citadel) 코리빙이 있는 이 지역은 산의 풍경이 기가 막히다. 내가 만난 코리빙 친구들 중 상당수가 이미 클라우드 시타델에서 지냈었던 경험이 있었던 데다, 내가 안세우코리빙에서 지낼 당시에 여기를 방문했던 클라우드 시타델 주인 커플 조이와 옐레나를 만나면서 내가 꼭 들러야 할 코리빙 1순위가 되었다. 한 달을 일단 예약했다. 한 달은 짧은데 그 뒤에는 자리가 없다고 하는데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그냥 갔다. 누군가가 취소를 해서 내 자리가 나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자리가 났다. 결국 두 달을 채우고 세 번째 달도 이어서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세 번째 달은 거절하고 나왔지만.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혹시나 해서 물어봤었다. 내가 한국에서 챙겨갈만한 거나 코리빙에 필요한 거 있으면 알려줘~ 그랬더니 호떡을 만들 걸 사 오랜다. 난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어? 호떡? 거기 호떡을 아는 애가 있어? 도착해서 알고 보니 프랑스인 티보라는 친구가 한국에서 오래 생활을 했어서 한국말도 잘하고 심지어는 누룩을 구해다가 막걸리도 직접 만들어먹는 걸 여기서 하고 있었던 거다. 오메 이게 어쩐 일이냐고. 한국인 없이 김치 만들고 있는 코리빙이 요기 잉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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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호떡과 수제막걸리


그런 티보의 존재는 내 디지털노마드 생활에 새로운 면을 더해주었다. 내가 할 줄 아는 언어는 한국어와 영어뿐이었어서, 코리빙을 포함한 디지털노마드 생활 동안 나는 오직 영어로만 의사소통을 해왔다. 가끔 친구들이 자기네 나라에서 온 다른 친구들과 그게 불어든, 독어든, 스페인어든 자기네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할 때면, 그 느낌이 궁금하기도 했었다. 어딜 가도 한국인은 나 혼자였어서 한국어로 대화를 할 일은 없으니까. 영어는 모두가 알아듣는 언어인데, 함께가 중요한 이 공간에서 모두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이야기하며 작은 소그룹을 만드는 것은 어떤 감정을 일으킬까. 비밀스러운 내용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소리 내어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렇다고 혼잣말이 아니라 그 말을 알아듣고 소통하는 사람이 있는 것, 그리고 그렇게 대화가 이루어질 때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이 한국어의 소리에 집중해 주는 것, 모두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궁금증 외에도 생각해볼 거리는 있었다. 최근 몇년간 나는 99% 이상 영어의 밭에서 삶을 살아냈다. 나의 영어로 사는 삶은 한국어로 사는 삶과는 달랐다. 영어로 살아낸 경험과 한국어로 살아낸 경험은 각각 내 안에서 다른 밭을 일구어냈다. 다른 나무가 자랐고, 다른 열매와 꽃이 맺혔다. 그런데 티보는 나와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데, 우리말인데 영어밭의 열매와 꽃을 말한다. 경계가 허물어진다. 내 안의 밭들이 합쳐진다.


언어는 그저 말과 소리가 아니다. 언어 자체가 공간이기도 하다. 생각이 파동으로 구체화되고 실물화되는 공간. 나는 영어로 말해야만 편한 주제들이 몇 가지 있는데, 한국어로 그 부분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인 경우도 있고, 주제에 대한 생각 자체가 영어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인 경우도 있다. 김영하 작가님이 한 방송에서 호캉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던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굳이 호캉스를 가는 이유, 집에서는 같은 휴식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집에는 상처가 있기 때문이라고. 나의 일상이 있는 공간에 작은 생채기들이 나있는데 그곳에서 충분한 치유와 휴식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는 것이 나는 많이 와닿았었고, 언어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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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재미따


우리가 언어 안에서 자라왔는데, 자라면서 들었던 언어, 말했던 언어라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받는 것도 말을 통할 때 이 언어에, 내가 다른 이들에게 주는 상처도 이 언어 안에 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상처도 모든 감정들의 표현이 이 언어에 있기 때문에 모국어에는 집처럼 상처가 있다. 그래서 외국어로 내 안의 이야기를 할 때 내 감정과 생각이 우리말로 이야기할 때보다 훨씬 더 쉽게 객관화가 된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게 이미 나는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는데, 티보와 만나 우리말로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영어와 한국어의 영역이 겹쳐지는 합병 작업이 시작되었다. 내 안의 내가 많은데 그 많은 내가 하나가 되어간다. 나는 내가 되어간다.


우리말로는 얘기를 할 사람이 없었는데 티보가 있다. 티보가 한국말을 잘하지만 한국인은 아니라서, 여전히 외국인 친구와 대화를 하는 느낌은 주지만 한국어를 말하는 내 입장에서는 이게 똑같지가 않더라. 너무 신기해. 이게 어쩜 이렇지. 이 사람의 언어는 정말 순수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나의 행복보다 생채기가 더 도드라지는 한국어가 서서히 치유되는 느낌이 올라온다. 거기에 호떡도 만들어먹고 막걸리도 마시니까 최고지 뭐야. 다 같이 둘러앉아서 ‘마시따’를 모두에게 알려주니까 내 얼굴에 웃음이 흐른다.


클라우드 시타델은 그 이름처럼 낭만적인 곳이다. (인생은 낭만이지) 해발 1300미터가 기본인 동네라 어디로 등산을 가더라도 숨이 찬다. 등산로는 셀 수 없이 많다. 암벽 클라이밍의 천국이다. 나는 여기에서 처음 암벽 클라이밍을 배웠는데, 신세계다. 인생의 너무나 큰 재미를 알아버렸다. 최고야. 짜릿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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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페라타 할 때인데, 배경이 너무 멋있쥬?


사실 시타델에서 곧바로 암벽 클라이밍을 시작한 것은 아니고, 등산과 암벽 클라이밍의 중간 그 어디메쯤에 있는 비아페라타(Via Ferrata)를 먼저 시도했다. 비아페라타는 암벽 클라이밍에 비해 비교적 안전한 등반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등산로에 철로 된 줄과 계단 등을 설치해서 몸에 단 안전장치를 매번 그 줄과 계단에 클립을 고정하는 방식으로 등반을 하게 되어있다. 시타델에서 걸어서 15분 정도면 도착하는 입구에서 산을 따라 올라가면 비아페라타 시작점이 보인다. 나는 고지대에서는 등산을 조금만 해도 숨이 차서 엄청 느려지는 걸 티보랑 잭이 가방도 들어주고 뒤에서 밀어줘서 겨우 시작점에 도착했다. 이게 웬걸. 올라올 때는 죽는 줄 알았는데 막상 비아페라타는 시작하고 나니까 숨이 안 찬다. 느려졌던 속도를 금방 따라잡았다.


클라이밍도 할 만하겠는데? 도전! 비아페라타 시작점을 향해 가는 길에서 다른 갈래로 빠지면 클라이밍 학교라고 불리는 큰 암벽이 나온다. 초보자가 암벽등반을 배우기에 딱 좋은 난이도의 루트들이 있어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클라이밍을 시작했는데, 중독성이 끝장난다. 움직임 하나 하나, 내가 닿을 수 있는 위치를 가늠하고, 잡고 또 밀어내고 당길 수 있는 힘을 조절해서 매달린다. 또 오른다. 날카로운 돌에 긁히고 미끄러운 돌에 손가락 끝을 통해 힘을 미친 듯이 주어야 하는데, 신음소리를 내고 징징대면서도 아니야 올라갈 거야, 올라가고 싶어, 하면서 발버둥 치는 내가, 줄에 매달려서 내려오는 동안 그래도 오늘도 이만하면 잘했다 고생했네, 하고 부둥부둥할 수 있는 그런 운동이다. 반면에 나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나 스스로를 위해 몰입을 멈추고 내려올 줄도 알아야지, 안 그러면 부상의 위험도 크다. 조심해야지.


클라이밍을 몇 번 하고 나서는 이 운동이 나와 쉽게 헤어질 인연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친구들하고 클라이밍 쇼핑을 하러 갔다. 가장 중요한 신발을 샀다. 클라이밍 장비 구매의 시작이었다.


시타델에서 클라이밍만 배운 것은 아니다. 아크로요가도 여기서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데, 아크로요가는 짝을 맞추어 할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 아크로바틱이 파트너요가와 합쳐진 것인데 클라이밍과 마찬가지로 중독성이 크고 재밌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중독에 쉽게 빠지는 재미만 따지는 사람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이걸 하는 와중에 일을 꼬박꼬박 하루에 5시간 이상은 해왔다.


아크로요가와 클라이밍 모두 부상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대한 이해와 운동능력, 순간순간 내 몸이 느끼는 것을 신뢰하고 그에 맞추어 선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게 쉬워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 몸이 말하는 것들을 무시하고 억제하도록 키워졌다. 특히 한국인은 더 그런 것 같다. 아프다고 하면, 꾀병은 아닌지,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프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일단 학교에 갔다가 조퇴를 하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요즘은 안 그런가요? 나 때는 그랬다우) 그래도 개근상은 받아야 하지 않니? 개근상 그게 뭐라고. 아파도 참는 것이 익숙하고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들은 신뢰할 수 없으니 무시하고 머리로 계산을 한 것을 더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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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요가도 재미따


그런데 나는 이게 적어도 나라는 사람에 한해서는 틀린 이야기 같다. 내 몸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고 나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기 몸하고 안 친하다. 나도 한 때는 그랬고. 사이가 안 좋아.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긴커녕 살쪘다고 구박하고, 공부한다고 피곤한데 고문에 가깝게 잠은 안 재우고, 그렇다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얼마나 먹이길 하나, 움직이면서 같이 친해지는 시간은 또 부족하니, 나랑 내 몸이 관계가 좋을 수가 없지. 내 몸은 나를 가고 싶은 데에 데려가주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데, 나랑 사이가 데면데면하니 긴 시간 동안 서로 상처를 준 일도 많고, 한 순간에 사이가 확 좋아지지는 않는다.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 학점은 놓았지만 어찌 된 것인지 내 몸을 놓지는 않았다. 끊임없이 운동을 하면서 내 몸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고, 특히 2019년부터는 내 몸의 감각과 또 내 몸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에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에 따라 선택을 해서 신뢰관계를 다져왔다. 그 관계가 계속적으로 좋아지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다. 햄스트링, 복근, 갈비뼈, 어깨 부상도 있었다. (어깨는 낫는데 한참 걸렸다 진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몸과의 관계가 좋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내 몸이 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누구나 느끼는 것은 한다. 그런데 내 몸이 느끼는 것을 행동으로 선택하는 것은 어려워한다. 신뢰관계를 쌓으려면 여러 번의 성공경험이 필요하다. 내 몸이 그 경험을 살아냄으로서 내 세포에 그 성공을 입력하고 새기는 과정. 내 몸이 말하는 것을 따라갔는데 그 경험이 나에게 긍정적인 것으로 다가와야 이후에도 같은 성공을 반복하는 데 유리하다.


아크로요가를 하면서도 이 긍정적인 성공경험을 내 안에 많이 쌓았다. 내 몸을 상대방의 발바닥에 올려놓는 것은 무섭다. 솔직히 그렇잖아. 떨어지면 다치는데. 바닥에서 받치는 사람을 베이스(base)라고 하고 위에서 동작을 하는 사람을 플라이어(flyer)라고 하는데, 많은 경우에 남자 또는 무게가 더 많이 나가는 사람이 베이스를 하고 여성 또는 더 가벼운 사람이 플라이어를 한다. 베이스의 부상은 오랜 시간 동안 플라이어의 무게를 받아내는 데에서 오는 소모적인 부상이다. 무릎이나 손목, 팔꿈치에 많이 온다. 플라이어의 부상은 순간의 찰나에서 오는 부상이다. 떨어지거나 부딪혀서 생기는 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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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닉, 비아페라타, 아크로요가, 저 잘 놀았쥬?


나의 몸을 잘 모르는 상대방에게 맡기기란 쉽지 않지만,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내 골반뼈를 알파벳 L 모양으로 되어있는 베이스의 발바닥 위에 올려놓고 나는 하늘을 나는 새가 되는 것에서 출발하자. 그렇게 출발을 하고 나면, 과정을 지나며 알게된다. 아크로요가가 스스로의 몸, 상대방의 움직임에 대한 민감함과 의사소통의 기술을 요구한다는 것을. 아크로요가를 통해서 키울 수 있다, 아니 키워야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몸에 대한 민감함이 없으면 무리해서 하다가 나와 상대방을 부상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솔직히 내가 잘못해서 내 몸이 다치는 거야, 나니까 그렇다 치지만 상대방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된다. 우리는 모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하지 않나? 나 때문에 누군가가 다치는 것. 거기에 내가 상대방이 제안하는 것에 대해 예스(Yes), 노(No)를 표현하고 또 반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예스, 노의 의사표현을 했을 때 그것을 수용하고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아크로요가에서의 의사소통은 다른 영역의 내 삶에도 퍼져나가서, 시간이 점점 더 흐르면서 스스로의 커뮤니케이션의 레벨이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클라이밍도 안전(Safety)에 대해서는 유사한 면이 있다. 리드클라이밍의 경우 등반을 할 때에 몸을 끈에 연결하고 빌레이어(belayer)가 밑에서 끈을 잡고 있다. 내가 추락할 경우 내 생명줄을 잡고 있는 사람은 밑에 있는 빌레이어다. 빌레이어는 반드시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반대로 내가 빌레이어라면 상대방이 나를 신뢰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다 하고, 또 나의 손에 이 사람의 안전이 달려있음의 무게와 책임감을 온전히 인지하여야 할 것이다. 나의 눈과 손이 상대방을 떠나지 않아야한다. 순간의 흐트러짐에 상대방과 나의 안전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상대방이 나에게서 안전함을 느끼는 것은 또 그 반대로 내가 상대방에게서 안전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아주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코리빙 안에서 함께 지내는 이들과 아크로요가와 클라이밍을 하는 것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고 나는 느꼈다. 이 사람은 안전한 사람. 나는 안전한 사람. 그렇게 느낀다면, 그 관계 사이에서의 교류의 깊이는 크게 달라진다. 같이 사는데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좋지 못하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안전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열정이 크게 자라날 좋은 발판이 된다. 클라이밍도 아크로요가도 나한테 시타델에 있는 동안 제일 많이 알려준 친구는 이름이 블라드였는데 이 친구의 끊임없는 열정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것이었어서, 주변사람들을 전염시킬 정도였다. 아마 그 달에 제일 먼저, 또 제일 많이 감염된 사람이 나일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거의 매일 아크로요가를 하루에 한 시간씩 연습했고, 클라이밍도 최소 주1회씩은 했다. 내가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안전에 기반한 뜨겁게 들이붓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챕터 8에서 누락된 에피소드들>

* 토요일 패밀리 디너

* 주중에 두 번 패밀리 런치

* 스킬쉐어

* 항상 있는 등산

* 퐁듀, 라끌렛

* 시타델 투어

* 피크닉

* 이탈리아 옆동네 등산, 비아페라타

* 아크로요가 루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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