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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불가리아 - 토마토 너무 맛있어 빵도

챕터 10. 번아웃과 재충전

by 노마드 써니 Mar 26. 2025

<챕터 10 미리보기>

- 번아웃이 올 때에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챙겨라: 수면과 음식

- 불가리아는 그런 점에서 재충전에 아주 좋았다


***


스위스 알피니스 코리빙에서의 시간을 마무리짓고 취리히로 돌아와 제시카와 주말을 보냈다. 알피니스 코리빙에서 보낸 생활에 대한 얘기도 들려주고 그동안 어찌 지냈는지 일은 계획대로 열심히 했는지 얘기하고 제시카도 나와 같은 날 떠날 예정이었어서 같이 초콜렛 선물 쇼핑을 하러 나갔다. 제시카는 영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불가리아로 떠나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불가리아가 쉥겐조약국이 되기 위해서 승인을 기다리던 때라 쉥겐지역에서 이미 3개월의 시간을 보낸 나는 불가리아에서 (여전히 유럽이기는 하지만) 쉥겐 걱정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지난 2024년 3월 말을 기점으로 쉥겐조약국이 되었다.)


*유럽 장기여행을 할 이라면 필수적으로 고려해야할 부분이 쉥겐조약이다. 쉥겐조약은 유럽내 국가들간의 조약으로 국경이 없는 것처럼 여권이 없이도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게 하는 것인데, 쉥겐조약에 속하지 않는 국가의 시민인 경우에는 쉥겐조약 국가들 내에서 입국일 기준 최근 180일 중에 90일까지만 체류가 가능하다. 쉥겐조약이 없다면 우리나라가 유럽의 각 국가들과 맺은 협정에 따라 각 나라별 90일 체류가 가능하겠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쉥겐조약이 우선되기 때문에 각 나라 90일이 아닌, 합쳐서 90일까지 체류가 가능하고 이후에는 쉥겐조약에 속하지 않은 국가로 이동을 해야한다.


불가리아를 생각하면 모두 불가리아의 최대도시 소피아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소피아를 가기 위해서 불가리아에 간 것이 아니다. 다시 강조해서 말하면, 나는 도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안 땡겨. 나는 한적하고 시골스러운 동네가 딱이야. 버가스코리빙(Burgas Coliving)은 불가리아의 해안타운 버가스에 위치해있다. 흑해를 맞이하고 있는 이 곳에 내 안세우코리빙 친구들이 같은 기간에 있을거라고 해서 내가 날짜를 맞춰서 왔다. 


버가스코리빙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사실 기대를 크게 하지는 않았었는데. 건물 자체도 크고 넓직해서 개방감이 있을 뿐 아니라, 뒷마당 정원에 해먹과 편안한 소파들이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일기장을 들고 내려와 정원에 앉아서 살랑살랑 글을 쓰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너무나도 따스한 공간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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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스코리빙의 정원은 마법이 깃들어있다


주변에는 큰 공원이 있어서 아침에 다같이 5km 뛰기를 도전하기도 했다. 나는 단거리면 몰라도 장거리 뜀박질이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인데 다같이 하니까 할만하더라. 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싫어하는데 이게 된다고? 같이의 힘은 대단하다. 이 공원에는 브루어리도 있어서, 주말에 한 번은 다같이 맥주를 마시러 왔다. 


“여기 토니 경쟁업체에서 하는거야.”


버가스코리빙은 카티야의 가족이 소유하고 있던 건물을 개조해서 만들었는데 카티야는 도시기획일을 했고, 전남편인 토니는 맥주사업을 했다. 덕분에 버가스코리빙 한 켠은 여러 종류의 스페셜 맥주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내가 술을 끊은 걸 물러야 하나 싶게 맛이 좋았다. 누가 알았겠어, 불가리아 맥주맛이 이렇게 좋을 줄. 꿀맛이야 꿀맛.


날씨가 더워져서 일하다가 도중에 다같이 물총, 물풍선 싸움을 하러 주차장으로 달려나가기도 했다. 흠뻑 젖었지만 이렇게 식혔으니 또 일을 해야지, 하고 들어와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을 이어갔다. 퀴즈나잇이나 뮤지컬 영화보면서 같이 노래하고 춤추는 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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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와 물총싸움


버가스 지역에는 소금밭이 있었는데 여기가 그냥 소금밭이 아니고 갯벌이 같이 있어서, 사람들이 돈을 내고 입장하면 소금기가 어마어마한 물에서 둥둥뜬 채로 놀고, 갯벌 진흙을 몸에 묻혀서 진흙 피부마사지도 할 수 있었다. 주말에 하루 날을 잡아 다같이 가봤다. 피부에 좋은게 맞는지는 확인이 어렵지만 느낌은 확실했다. 


“피부가 부드러워진 것 같아 히히힣” 


참 우린 노닥거리는 걸 좋아한다. 이건 아마 인류의 공통적 특성이지 않을까. 둥둥 떠서 수영을 해도 재밌고 제자리에서 굴러도 재밌다. 대신 옆사람에게 튀기지는 않는다. 눈에 들어가면 아프잖아. 나와서는 물샤워 대충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야지. 


불가리아에서는 외식도 괜찮지만, 직접 해먹는 것도 정말 추천한다. 일단 식재료가 싸다. 버가스코리빙에서는 장을 볼 때 집에서 5-10분 정도 걸어가서 나오는 식료품 가게에서 기성품을 사고 거기서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작은 과일 야채가게들에서 신선식품을 샀다. 토마토 하나만에 나는 반해버렸다. 왤케 싸. 근데 또 왤케 맛있어. 식재료가 이렇게 신선하고 좋은데 가격마저 싸다니 여기 좋은 곳이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물론! 내가 원하는 종류별 간장이나 젓갈, 한국식 고춧가루, 굴소스 같은 것들은 구하기 어렵지. 그런 걸 기대하지는 않지만 일단 기본 식자재들이 좋으니 요리할 맛이 났다. 여름이라 수박도 사서 속은 먹고 겉 흰 부분은 챙겨온 고추장으로 수박 껍질 무침을 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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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식재료로 (친구들이) 직접 요리한 음식들


토요일 아침마다 베이커리도 갔다. 여느 베이커리가 아니고 토니의 친구가 직접 빵을 굽는 곳이었는데, 마당에서 식재료를 직접 키워서 다양한 빵을 만들었다. 식사빵들부터 시작해서 디저트류에 맛있는 음료수까지, 너무 완벽해. 매주 메뉴가 바뀌는 빵들을 먹는 것은 너무나 큰 행복이었다. 이제 막 구워서 신선하고, 무슨 재료를 썼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었는지도 하나하나 설명해주니 얼마나 재밌냐고.


그와중에 불가리아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활동은 공(Gong) 명상이다. 카티야는 나랑 에너지 주파수가 참 잘 맞는 사람이었는데 이것도 맞을 줄은 몰랐지. 내가 공 명상을 처음 접한 건 썬앤코 친구들을 만나러 영국 토트네스에 갔을 때였는데 공을 연주할 때 나오는 소리, 파동과 에너지로 나의 몸과 마음, 에너지를 씻어내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때는 실내에서 했는데, 불가리아에서 카티야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해변이었다. 


“이 공 연주자가 공 명상 이벤트를 할 때마다 공지를 해주거든. 같이 갈 사람?”


그렇게 새벽에 4시반에 일어나서 우리는 바다로 향했다. 그 시간에 운전을 한 토니가 대단하지. 비몽사몽 간에 앉아서 떠오르는 태양을 느끼며 우리는 눈을 감고 공의 울림에 스스로를 내맡겼다. 이상하게 잠은 오지 않았다. 표면에서 코어, 중심부까지 파고드는 깊은 진동이 내 세포들을 건드린다. 그렇게 한참 나를 울림 속에서 씻어내고 나면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떠오른 태양이 있다. 내 몸에는 에너지가 흐른다.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뜨는 해를 조금 더 쳐다보고 서로를 안아주었다. 다들 기분이 너무 좋아서 기념촬영도 했다. 주말을 시작하는 방법도 우린 참 가지가지야.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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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태양빛 아래에서 그 깊이 울리는 파동으로 나를 닦아낸다


나중에는 이른 아침이 아닌 해질녘에 공 명상을 가기도 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태양 앞에 앉아서, 해변이 아닌 바다 앞 절벽에서 우리는 시간을 멈추었다. 집중할 때, 시간은 멈춘다. 버가스코리빙에서의 시간은 그런 점에서 나에게 집중하고 외부와의 시간의 속도를 달리하는 데에 최적이었다. 차분하고 호들갑스럽지 않은데 그래도 귀여울 것 같은 분위기, 잔잔한 재미와 소소한 웃음, 함께 어깨춤을 출 사랑스러운 친구들, 내 몸과 마음, 영혼을 살찌우는 음식까지. 


나는 이 곳에 다시 돌아오겠구나. 함께 속에서 나를 잘 돌보고 싶은 때에. 이 곳의 친구들이 보고싶어질 때. 불가리아가 쉥겐조약국이 된 게 다시 아쉬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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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10에 빠진 이야기들>

* 스파, 수영장, 도심 바닷가,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의 바닷가

* 썬데이 패밀리 브런치

* 파당 게임

* 고양이

* 버가스 콜림픽(Co-olym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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