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1. 오랜 우정
<챕터 11 미리보기>
- 싱글인 학자 친구가 학회 갈 때 따라가면 친구랑도 놀고 호텔은 공짜고 개꿀
- 디지털노마드의 다음 행선지 결정 방법
- 내가 선명하면 그만큼 나에게 맞는 사람들이 내 삶에 온다
- 오랜 우정은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사랑으로 가꿔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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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에서 5주간을 보내고 나는 파나마로 향했다. 뉴질랜드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친구가 전에 칸쿤에 학회를 갔을 때 내가 따라갔었는데, 같은 친구가 이번엔 파나마로 학회를 간단다. 내가 안 따라갈 수가 없지. 코로나때문에 뉴질랜드 국경이 닫히고, 우리가 못본지 2년이 지났다. 그렇게 너무나도 오랜만에 파나마의 호텔 앞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이건 뭐 이산 가족 상봉이지.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서 껴안고 부둥켜 울었다. 훌쩍거리면서.
내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일정을 잡은 것은 이 친구와의 파나마 열흘, 미국으로 올라가서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친구들 각 일주일씩 해서 삼주, 그리고 코스타리카로 이동이었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결정된 일정은 1월에 초대를 받은 친구 앨리의 결혼 리셉션이었다. 앨리와 나는 내가 호주에 있을 2016년에 만나서 한 동네에서 일하면서 우정을 쌓고 2017년에는 같이 퍼스에서 멜번까지 한 달간의 캠핑여행, 이어서 멜번에서의 한 달 살기를 한 사이였다. 호주에 있을 때 영상통화로 얼굴만 본 남자친구와 결혼식은 가족들끼리 작게 하고 결혼 리셉션을 남편과 본인이 있는 펜실베니아에서 친구들을 초대해서 하기로 했다고 오라고 그래서 나도 8월에 그 리셉션 일정에 맞춰서 가기로 했는데, 때마침 뉴질랜드에 있던 친구도 파나마에 학회 온다니까 일정이 딱 정리가 됐다. 펜실베니아주에 사는 친구들 개비, 데니에게 연락하니 그럼 나도 보고가야지! 우리 집에 와! 하는데 얼마나 고맙나. 사랑한다 친구들아.
어디로 언제 갈지 어떻게 정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왔다. 나는 혼자 여행을 다니고, 끊임없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지만, 소중한 인연들이 되는 것은 언제나 소수이기 때문에, 그 소수의 소중한 인연들을 귀하게 여긴다. 현재에 집중하는 편이라 연락을 자주 꾸준히 이어가는 것은 잘 못하지만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계획을 세우는 것은 좋아한다. 특히 노마드 친구들의 경우에는 서로 어디에 가려고 한다는 계획을 공유하면서 타이밍을 같이 잡기도 하고, 어디에 같이 갈래? 하는 초대를 주고 받기도 한다. 초대를 받으면 거의 바로 나는 대답을 할 수 있다. FUCK YES 이거나 아니거나. 어, 아마도? 는 일단은 No 다. 지금은 아니라는 것. 행선지를 정하는 것 외에도 많은 결정들은 이런 식으로 정하면 후회가 적다. 아 대박 완전 좋아, 무조건 할래! 하는 마음이 아니라면. 디지털노마드로 산다는 것은 정착하여 사는 것보다 훨씬 많은 선택들을 계속해서 해야하는 삶을 산다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내 다음 행선지는 그렇게 정해진다. 물론 친구 하나만 보고 가는 것은 아니다. 이전 행선지에서의 동선도 고려하고 유럽의 경우에는 쉥겐지역에서의 날짜 수도 체크하고, 나는 겨울스포츠를 즐기지 않기 때문에 날씨와 기후도 중요하다. 거기에 지금 나의 마음 상태와 나의 방향, 나의 에너지 탱크가 얼마나 차 있는지를 마지막 관문으로 보고 결정을 한다. 나는 이동을 할 때에 마음가짐에 대해서 어느 정도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는데, intention 의도라고 부르고 있다.
이번에 불가리아를 떠나면서 내가 가졌던 마음가짐은 친구들과의 우정에 다시 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8월 이 한 달을 불살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야지. 피곤한 거? 때려쳐. 9월에 쉬어도 쉬고 그 전까지는 달린다.
그래서 파나마에서 친구가 학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이에 나는 시차로 인해 새벽 4시, 5시에 일어나서 업무 영상통화를 했고, 낮에는 노트북으로 업무를 하고, 저녁에는 친구와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을 때는 같이 먹고, 아닐 때에는 혼자 먹었다. 학회가 있던 호텔이 도심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던 곳이어서, 우리는 학회 기간동안에 열심히 일을 하고 학회가 끝나면 노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디지털노마드인 사람들 모두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에는 업무 영상통화는 시간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대륙에 있든지 그 시간에 매여있다고 봐야한다. 그래서 나는 보통 유럽/아프리카 지역에서 지내는 것을 선호한다. 업무 영상통화를 오후에 할 수 있고, 아침에 일어나서 내 시간을 쓸 수 있어서다.
이 아침이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 앞서 챕터 몇이었지 안정성과 새로움의 균형에 대해서 언급을 했었는데, 안정성에 대해서 일이 차지하는 무게도 있지만, 일정한 루틴에서 오는 안정성도 나에게는 크다. 가장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아침 루틴의 경우 일어나자마자 걷거나 뛰면서 몸을 움직이고, 일기를 쓰고 공부가 될 책을 읽거나 팟캐스트를 듣고 메모를 남기고, 하루 일과에 대한 정리까지 마치면 나는 오늘 하루가 이미 좋은 날이 될 것임을 안다. 하루가 내가 생각한 대로 풀리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더라. 이미 오늘 하루를 나를 아끼고 돌봐주고 좋아해주는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게 아메리카 시간대로 넘어오면 무조건 하루 아침을 일, 업무 영상통화로 시작해야 해서 힘이 들었다.
디지털노마드는 또 누가 옆에 없어도 스스로 시간관리를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렇게 호텔에서 일을 하게 되면 일을 안정적으로 할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서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보니 시간관리에 더더욱 신경을 써야한다. 변수에 대한 예상을 하고 업무 시간을 조금 더 넉넉하게 잡는 식으로. 파나마 호텔 방 안에서 인터넷이 약해서, 나는 로비에 내려와서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최대한 소음을 줄여가며 업무 영상통화를 했다. 그러고 나서 조식을 먹으면 방에 들어와서 업무에 집중했다. 학회가 끝난 날에는 호텔 수영장에서 사진도 찍고 물놀이도 하고. 아 이런게 신선놀음이지. 역시 노닥거리는 게 최고야.
다음 날 우리는 파나마시티 구심으로 이동했다. 예약한 숙소에서 짐을 풀고 관광을 시작해야지. 파나마 운하 투어도 예약했고, 맛있는 것도 먹고. 멕시코 칸쿤에서처럼 코코봉고같은 강렬한 쇼는 없어도 놀 게 얼마나 많겠나. 파나마시티 구심은 관광구역인 듯 했다. 어딜 가도 우리 같은 관광객들이 많았다. 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사진 찍기에도 좋고 공사중이거나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이 버려진 건물들이어서 멀리서 보면 예쁘기도 했다.
파나마 운하는 생각보다 훨씬 볼거리가 많았다. 유명배우 모건프리먼이 목소리 녹음을 한 영화가 파나마 운하 투어에 포함되어 있었고, 물이 직접 차 올라서 배가 이동하는 모습을 보니 사진 찍던 사람들이 다같이 박수를 치더라. 원리를 알아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또 기분이 날라서, 신기하기도 했다. 진짜 사람들이 지혜가 기가 막혀. 똑똑해가지고들 저런걸 다 생각해내고 말이야. 고맙단 말이지.
그 외에도 우리는 갤러리도 가고, 맛있는 레스토랑들도 들리고, 낮이 너무 뜨거울 때는 숙소에 들어와서 에어컨 바람 맞으며 누워 쉬기도 했다. 사실 어디를 가든 무얼 하든, 그건 크게 상관이 없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계속 쌓아가는 게, 그게 좋아서 온거니까. 우정이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서로의 옆자리에 계속 있고 싶은. 친구야, 다음 학회에서 또 만나. 내가 뉴질랜드에는 당분간 갈 것 같지가 않거든!
오랜 우정을 유지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나는 우정을 오래 유지하는걸 항상 어려워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니기도 했어서 (초등학교를 4개 다님) 빠르게 친구들을 사귀는 데에는 나름의 도가 텄지만 이사를 가서 새 친구를 사귀게 되고 나면 이전 친구들은 빠르게 잊혀졌다. 그 친구들은 나를 잊지 않고 연락을 해도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어린 나의 마음은 이전 관계를 유지하자는 것이, 참 그게 쉽지가 않더라. 지금 생각해도 이사간 나에게 마음을 써준 친구들이 고맙고 미안하다. 시간이 흘러 이게 나에게 하나의 특성처럼 굳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십대 중반이나 되어서였다. 어느 순간부터 보이기 시작한 나의 친구관계. 내 가까운 친구들은 보통 유효기간이 2-4년 정도이고 물갈이가 된다는 것. 솔직히 당시에는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친구관계를 오래 유지를 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왜?
아닌 관계를 억지로 붙잡는 것도 당연히 안될 말이지만, 왜 계속해서 친구관계가 컴퓨터를 밀어버리고 새로 프로그램을 까는 것처럼 아예 바뀌느냐는 것이지. 그런데 반복되는 나의 패턴, 우정의 양상을 보게되고 내 스스로에 대한 가치관을 명확하게 알게 되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커지니까 오래 만날 친구들을 사귀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전에 내 친구관계에 있어 명확하던 특성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귀게 되는 친구들의 느낌이 달랐다. 우리의 인연이 오래 갈 것 같은 느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서도. 내가 선명해져서 내 선명함을 보고 이끌려서 붙게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Attraction, being magnetic. 내 사람을 부르는 것은 바로 나였다.
그렇게 생긴 친구들이다보니, 숫자도 적고 더 귀할 수 밖에. 내 사람이니까. 그렇게 키워온 우정이 10년을 향해 간다. 20년 30년 40년 우정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작 10년?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크다. 이 오랜 우정을 사랑으로 계속 가꿔 나가야지. 물도 주고 햇볕도 쬐고 퇴비도 붓고 영양제도 주면서 잘 키워나갈 것이다.
<챕터 11에서 빠진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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