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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코스타리카, 정글 속에서 찾은 내사람들

챕터 13. 너와 나의 연결됨

by 노마드 써니

<챕터 13 미리보기>

- 아닌 건 닫아야 열린 것들을 제대로 할 수 있다

-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대화

- 어려운 대화 속에서 상대방이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알기

- '너는'의 대화법 말고 '나는'의 대화법

- 코스타리카의 자연이 축복한 생일


***



“나 코스타리카에 가게 됐어. 너 어디야? 코스타리카에 있어?”


클라우드시타델에서 만난 코스타리카 친구 다니는 일년 중에 최대 몇 달만, 주로 여름에 노마드 생활을 한다. 시타델에서 같이 지낸 날이 일주일도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며칠 사이에 나는 다니에게서 느껴지는 게 있었다. 어떤 당김. 그래서 '안된다고 하면 마는거지 뭐', 하는 마음으로 연락을 했더니 아니 글쎄 자기 집에 와서 있어도 된대잖아! 겨우 5일 본 애를 자기 집에, 자기 공간에 한달 여나 되는 시간동안 들인다는게 절대로 쉬운 결정은 아닌데, 내가 정말 괜찮냐, 안된다고 해도 진짜 괜찮고 오란다. 내가 다시 한 번 물어봤다. 다니야, 너가 안 된다고 말을 해도 그걸로 널 탓하거나 할 일은 없다고, 코스타리카에 있을 데가 없겠냐고, 그런데 다니는 나한테 오라고 했다. 다니 최고. 만세 만세 만만세.


내가 친구들 집에 머물 때 돈을 따로 주지 않는 경우에는 내가 친구들 생활비를 낸다. 요리도 주로 도맡아 한다. 장을 볼 때 내 돈으로 결제를 하거나, 자동차 기름을 내가 채우거나, 어디를 가게 되면 입장권을 내가 사기도 하고, 아침에 자동차 배터리가 말썽이면 내가 배터리를 바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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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와 나의 일상들


미국에서 막 코스타리카에 넘어와서 다니의 아파트에 짐을 풀고 쇼파에 앉아서 그동안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눈다. 어쩌다가 코스타리카에 오기로 한거냐고 물어보는데, 내가 또 할 말이 있지. 그냥 아무 나라나 골라서 코스타리카에 오게 된 것은 아니란 말씀.


프랑스에 있을 때 아크로요가를 시작하게 된 이후로 인스타그램에서 많은 아크로요가 관련 계정들을 팔로우하던 와중에, 같이 아크로요가를 하던 친구가 한 계정을 나에게 보내왔다.


“너하고 결이 맞아. 한 번 봐봐. 9월에 코스타리카에서 이벤트 있는 것 같던데 너 미국간다며. 가깝잖아.”


그렇게 해서 나는 아크로요가와 탄트라를 결합한 아크로탄트라에 대해서 알게 됐다. 탄트라가 요가의 갈래들 중에서도 섹슈얼한 부분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기도 하고, 나도 호기심은 있었지만 전혀 모르는 분야인지라 이게 무얼까 했는데, 설명을 보면서 더 궁금해졌다. 탄트라의 영혼에 대한 가르침을 아크로요가의 몸의 움직임에 적용한다고. 이건 뭘까. 탄트라라는 단어만 몇 번 어디서 들어본 게 다였는데 그렇게 나는 코스타리카에서 있는 아크로탄트라 이벤트에 신청을 완료했다. 일주일 휴가도 미리 승인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아크로탄트라 이벤트 덕분에 코스타리카에 온 김에 여기에 더 있으면 좋겠다, 한거지. 또 코스타리카가 자연환경으로 유명하니까 그것도 느낄 겸.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가 있잖아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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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와 내가 꾸준히 갔던 실내 암벽장


실실 웃음을 흘리는 나를 보고 다니도 웃는다. 내가 온다고 가구배치도 다시 하고, 내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신경을 많이 써준 내 친구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맙다. 우리는 특별히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른 아침 나는 업무 영상통화를 했고, 후에 다니가 일어나면 함께 강아지 산책을 했다. 돌아와서는 아침을 같이 먹고 각자 일을 했다. 오후에는 일을 끝내고 나서 클라이밍을 갔다. 다니는 클라이밍 고수다. 이 때 다니랑 클라이밍 꾸준히 다니면서 진짜 많이 늘었다. 어휴, 고마운거 투성이네. 저녁에는 돌아와서 같이 클라이밍 비디오를 보면서 테크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영화마라톤을 하거나 (반지의제왕하고 헝거게임 시리즈) 각자 책을 읽었다. 우린 이러면서 대화를 정말 많이 했다.


서로가 가까워지는 대화는 마음의 벽을 허물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대화다. 이런 대화는 누구하고나 할 수 있지만 아무하고나 할 수는 없다. 다니와 나는 서로를 안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이런 대화를 많이 했다. 내가 생각할 때에 가장 큰 필요조건은 안전함이다. 안전에 대해서 이전에 잠깐씩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대화를 할 때에 안전하다고 함은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충분히 들어주는 것, 상대방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뒤덮어버리지 않는 것, 상대방의 이야기를 곡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상대방의 이야기에 방어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 상대방의 이야기를 밖으로 옮기지 않는 것 등등.


안전한 친구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내 깊은 곳에서 상대방에 대해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면 상대방에게 나를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것은 힘들다. 다니와 나는 서로에게 안전한 사람이 될 줄을 알았다. 서로가 걸어온 길은 많이 달라도 각자의 길에서 어떻게 안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조금씩 배워왔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나는 전혀 예상을 못했는데 이걸 아크로탄트라에서 워크샵으로 하더란 거지.


다니하고 2주 반을 보내고 나는 코스타리카의 정글로 향했다. 아크로탄트라 이벤트에서 아크로요가를 빼고 도대체 뭘 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미 내가 아는 아크로요가도 평범한 아크로요가를 할 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다를지는 전혀 모른 채로, 기대 반 궁금 반에 도착했는데. 아, 왜 다니가 산호세는 정말 볼 것 없고 별 것 없다고 했는지 알겠더라. 코스타리카의 정글은 정말 울창하고 색감이 끝내준다. 자연에 묻혀서 산다면 이런 데서 살면 좋겠다, 싶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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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속에서의 우리


아크로탄트라 이벤트를 하는 장소는 프로토피아(Protopia)라는 리트릿센터였다. 원래 회사 사람들이 와서 일할 수 있도록 한 사업인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크로탄트라를 만든 제스와 제스의 친구 제이피가 지내면서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는 센터 주변에 직접 키운 채소와 과일들을 수확해서 요리를 하는데, 세상에나 나는 이렇게 맛있는 채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이런 채식이라면 이 세상 마지막날까지 고기를 안 먹어도 괜찮을 맛이다. 농담이 아니고 진지하게 진짜다. 원래도 야채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 곳에서의 채식은 그저 별세계의 음식 같았다. 역시 수확한지 얼마 안된 신선함을 식탁으로 옮기는 것은 중요하다.


모인 인원은 열다섯명 정도 되었는데, 이벤트를 아크로 탄트라 페스티벌이 아닌 개더링(gathering, 모임)이라고 해서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이벤트에 기여를 하도록 기획구성을 했다. 몇 명은 워크샵을 진행함으로 기여를 하고, 나처럼 아크로탄트라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사람은 부엌에서 일손을 보탰다. 도착하자마자 스케쥴을 확인했다. 재밌을 내용들이 많았다. 컨택트 임프로브(Contact improvisation), 안대를 두르고(blindfolded) 하는 아크로요가, 동의의 바퀴(the Wheel of Consent), 농장투어, 불 놀이,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Don’t take it personally) 등등. 부엌에서 일손을 보태려면 식사시간 전에 있는 워크샵을 못 듣게 되는데, 난 도무지가 아무리 봐도 단 하나의 워크샵이라도 빠지고 싶지가 않았다. 다른 친구들하고 조율을 해가며 아침식사 돕기로 바꿨다. 나 원래 새벽 4-5시에 일어나서 새벽 6시에 알람 없이 잘 일어나는거 일도 아냐~


그렇게 모든 워크샵을 참석하길 정말 잘했지. 솔직히 나더러 이 때 얘기를 하라고 하면 날밤을 까도 내가 할 말이 안 끝난다. 할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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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채식을 이만큼 좋아했던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방금 수확한 채소로 요리를 한다는 것은 그렇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들을 배우는데 어찌나 재미있는지, 아크로요가를 하면서 눈을 뜨고도 떨어져서 부상을 입기가 부지기수인데, 안대를 쓰고 스카프를 눈에다가 질끈 묶고선 아크로요가를 한다니까. 그래서 이렇게 할 때에는 베이스나 플라이어 외에 부상을 입지 않도록 끊임없이 옆에서 앞에서 잡아주는 스파터(spotter)가 필수다. 아크로요가는 베이스, 플라이어, 스파터 3인 1조가 정석인 것.


처음에는 베이스나 플라이어 한 명만 눈을 가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눈을 감고 한다니, 너무 위험한 거 아닌가, 평소엔 쉽게 잘 하는 것도 잘 안되고 그런거 아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게 정말 신기하게도, 가장 크게 의존하던 시각을 삭제하고 다른 감각에 집중하기 시작하니까 그 다른 감각들이 극대화가 된다. 이론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맞는 말인데 실제로 몸으로 느껴보는 것은 또 다르단 말이지. 내 몸의 온 세포들이 집중하는 것이 느껴진다. 베이스는 등을 대고 누워있는 상태에서 다리를 일자로 들고 있는데 그 발 위에 내 어깨를 올려놓고 살짝 점프를 하거나 뱃심, 즉 코어의 힘으로 다리를 들어 올려서 베이스의 발 위에 내 몸을 일자로 세우는 것을 리버스 스타(Reverse Star)라고 한다. 내 몸의 피의 흐름, 손과 어깨에 닿아있는 감각, 내 몸의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눈을 감았다고 해서 더 어려울 건 없다. 오히려 더 집중할 수 있다.


나중에서야 생각한 것이지만, 이렇게 우리의 집중력을 올릴 수 있겠구나 싶다. 생각보다 우리는 많은 것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집중력을 나도 모르게 강탈당하고 있는 것일 수도. 정말 필요한 채널, 열려있어야 하는 것 외에는 닫아야 해. 온전히 나의 100%를 줄 수 있도록. 그것이 사람이든 일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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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탄트라 개더링


이번에는 베이스도 눈을 가리고 스파터만 눈을 뜨고 있다. 자신의 감각과 우리를 봐주고 잡아주는 스파터에게 의지한다. 아크로요가의 키워드인 신뢰와 의사소통이 눈의 감각을 지우고 하니까 중요성이 더 올라간다. 믿지 않으면, 의지할 수 없다면 눈을 가릴 수 없다. 마음이 불안해진다. 나의 진심을 말로 행동으로 또 말과 마음 속의 에너지로 전달한다. 진심을 통해 불안이 사라지면 믿고 간다. 충분한 의사소통을 하면서 내가 아닐 때에는 물러선다. 실은 노(No)인데 가짜 예스를 주면 그 예스는 신뢰관계를 쌓는 데에 방해가 된다. No 를 말할 수 없는 사람의 Yes 는 신뢰할 수 없어. 예스와 노가 모두 진심이어야 해. 예스인지 노인지 잘 모르겠다는 때라면, 대답은 노가 맞다. 지금 당장은 예스가 아니라는 뜻. 작은 경험을 통해서 그렇게 신뢰를 쌓고 더 어려운 일도 도전한다. 그런데 이걸 아크로요가를 통해서 연습하면 재미도 있다. 어려운 동작을 하고 나서 내려와서 낄낄대고 웃으면서 발을 동동구른다. 해냈어, 이거 실패를 몇 번을 했는데 드디어 했다. 으캬캬컁 하면서 서로 하이파이브를 연신 해대는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밤에 하루는 불 놀이(Fire Play) 워크샵이 있었는데 막대기 끝에 불이 붙어있고 입에서 기름을 뿜어내서 내가 불을 뿜어내는 것 같이 보이게 하는 트릭을 배웠다. 처음에 시연을 보는데 '어우씨 이걸 내가 한다고?' 물론 우리는 모두의 의사를 존중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억지로 하는 일은 없다. 입을 올리브오일로 먼저 코팅하고, 불이 잘 붙는 다른 기름을 입에 머금고 있다가 뿜어낸다. 눈 앞에 보이는 뜨거운 불이 퍼져나간다. 몇 번을 반복해서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이 불에 가까워져있다. 불은 그렇게 매력적이지만 모두 알다시피 위험해서 의식적으로 간격을 넓혀야 한다. 불과 물의 연결, 인간과 불, 물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씩 더 깊게 배우게 된 것은 몇 달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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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탄트라 개더링


가장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온 워크샵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Don’t take it personally)였는데, 워크샵을 진행한 이안, 다니엘라 커플은 어떻게 이 워크샵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먼저 설명했다. 무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이 것을 상대방이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듣게 되거나, 반대로 상대방이 무언가를 이야기했을 때 그것을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들이 생기는데, 연인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인간관계에서도 일어나는 이 증상이 얼마나 의사소통의 질을 떨어뜨리고 관계를 망가뜨리는지.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그 뾰족한 부분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까? 내가 털어놓는 상황에 대한 불평 불만이 때로는 상대방의 귀에는 상대방을 탓하는 것으로 들리는 경우도 여기에 속하지. 너 왜 말을 그렇게 해?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그 표현이 나에게 상처로 오는 것은 상대방도 나도 힘든 일이다. 상대방의 표현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니다. 나를 향한 것이 아니고 말하는 그 사람에 대한 것이고, 나는 그것을 묵묵히 지켜본다. 나는 그 표현의 증인이 된다. 상대방의 표현을 할 공간을 지키는 지킴이다.


워크샵에서 배운 것은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듣는 것, 배려하는 것의 가장 큰 열쇠가 그 사람의 의도와 마음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게 답이 아니었어. 우리가 때로는 나의 마음도 잘 모르겠는데, 어떤 이의 말의 진의를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 알겠나. 이안과 다니엘라는 그래서 특히 연인관계에서 어떻게 대화를 할지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 두 사람은 대화를 할 시간을 따로 만든다. 그리고 서로가 지내면서 하지 못한 말이나 지금 느끼는 말들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말의 형태와 말을 하는 나, 그리고 말을 듣는 나의 내면의 상태다.


말을 듣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마음과 귀를 연다. 상대방의 표현을 받는 나의 몸도 크게 공간을 만든다. 어깨도 펴고 몸도 곧추 세워서 크게 만들고 손바닥도 몸의 양 옆에 펼치자. 그렇게 몸을 크게 만들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나의 중심을 무겁게 배꼽 아래로 땅 속 깊이 내린다고 계속 그림을 마음 속으로 그리면서, 상대방의 왼쪽 눈을 보고 속으로 얘기한다. 왼쪽 눈은 감정을 나누는 창구다. 나는 산이야. 흔들리지 않는 무거운 산. 사랑하는 그대 앞에서 그대가 하는 말이 내가 당신의 산이기 때문에 하는 것임을 나는 알아.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흔들리지 않아. 너는 여기서 안전해. 그러니 나에게 들려줘. 그대가 그대로 내 앞에서 흐를 수 있도록 내가 여기에 있을게.


듣는 사람이 이 에너지를 내뿜을 때, 말하는 사람은 얼음에서 물이 되어 흐른다. 자유함을 느낀다. 이 안에서 말하는 이는 어떤 모양으로든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다. 말을 할 때 말의 형태는 ‘나는’ 으로 시작한다. 네가 어쩌고 저쩌고가 아니고 나는, 내가, 하고 시작하는 것. 너를 탓하는 게 아니고 내가 이렇게 느꼈다는 것. 나의 모든 느낌을 내보인다. 파트너를 찾아서 연습하면서 누구와 이야기를 하더라도 상대방을 상대방 그대로 받아들인다. 설령 그 사람의 날카로움이 보이더라도 흙에 꽂힌다. 내 심장에 닿지 않는다. 이게 탄트라 워크샵이라니. 내가 이렇게 레벨업을 하는구나가 느껴진다. 조금 더 큰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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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생일 케이크를 2년 연속으로!


개더링 기간 동안 생일을 맞은 디아나와 나를 위한 깜짝 생일케이크까지 5일간의 끝없는 배움과 깨우침, 즐거움, 그리고 이 모든 걸 나눌 사람들이 너무나 감사한 시간을 보냈다. '아, 이 사람들이 나의 사람들이구나' 하고 디지털노마드 커뮤니티 생활을 하면서 느꼈는데, 이번에 새로이 느끼게 된 아크로탄트라 내 사람들. 내 사람들이지만 디지털노마드 커뮤니티와는 또다른 느낌의 인연들을 내가 디지털노마드이기 때문에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필연이구나.


탄트라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섹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에 대한 것이라는 것이고 섹스가 그 안에 있는 것. 인간의 에너지적인 만남. 그 연결로, 만남으로 향하는 에너지를 침실 밖으로, 아크로요가의 놀이터로 가지고와서 몸을 서로에게 내맡기는 아크로요기들이 더 나은 의사소통을 하고 즐겁고 진하게 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크로탄트라였다. 히야 진짜 난 이런 세상이 있는 줄도 몰랐잖아. 모르고 죽었으면 아쉬워서 어쩔 뻔 했어.


그렇게 아크로탄트라를 다녀오고나서 업무 영상통화를 하는데, 내가 달라졌다고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참 신기하다 생각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콕 집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느껴지는 아우라나 에너지가 달라졌다고 그러더라. 산호세에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다니도 같은 얘기를 했다. 너 되게 좋았나봐. 다른데? 웃으면서 답했다. 응. 나 달라졌어. 내 사람들을 다시 볼 때까지 나는 이 깨우침들을 계속 내 몸에 잘 새겨야지. 내 안에 잘 흐르게 해야지.


아크로탄트라 이후의 나의 코스타리카 시간은 다시 다니와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다니와 나는 내 생일주간을 특별하게 보내기위해 4시간 거리에 있는 해변으로 갔다. 코스타리카가, 이 자연이 날 축복했다. 야생동물을 잔뜩 봤는데, 다니는 코스타리카 로컬이고 이 해변 동네에 자주 오는데도 이렇게 야생동물을 한꺼번에 많이 보는 건 처음이라 그런다. 우리는 스쿠버다이빙을 나가서 엄마고래와 아기고래를 봤고, 만타레이도 봤고, 거북이도 봤다. 운전하며 가다가 재규어가 튀어나왔고, 너구리와 여우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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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너무나 큰 가르침과 선물, 축복을 안겨다주는 자연과 삶을 보면서, 내 생일에 내가 붙잡은 단어는 Surrender 였다. 저항하지 않고 나에게 오는 것들을 온전히 다 받아내기로. 쏟아지는 축복에 대한 완전한 항복. 나에게 다가오는 이것이 정말 나에게 좋은 것일까 하는 의심따윈 없어. 성스러운 인도를 따라 내게 오는 모든 것들에 나는 새로 태양을 한 바퀴 돌면서 나를 내맡기기로 했다. 살아보자 또 이렇게.



<챕터 13에서 빠진 이야기들>

친구의 바닷가 별장

중미의 스위스, 코스타리카의 물가

장터

클라이밍짐과 야외클라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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