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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바람 Nov 22. 2019

내 이름 세 글자를 불러주는 장소

한강 한가운데의 노들섬에서 쓴 글

김모레라는 나의 이름. 이 이름이 온전한 세 글자의 이름으로 완성되어 불리운 것이 언제인지 생각을 해보았다. 바로 떠오르는 장소가 있었는데, 집도 회사도 아니었다. 남편은 나에게 모레야라 부르고, 엄마 아빠는 나에게 딸이라 부른다. 회사에서 나는 김선임 혹은 모레선임으로 통한다. 단골 서점에서도, 인스타에서도, 스타벅스에서도 나는 모레님이지만 김모레님은 아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는 한 달에 일곱여덟 번 김모레님 이라 불린다. 작년 초부터 임신을 준비하며 다니게 된 병원이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접수처에 가서 내 이름 석자와 생년월일을 적는다. 그리고 진료실 앞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면, 간호가사 '김모레님' 하고 내 이름을 호명한다. 보통 나는 삼십 분에서 어떨 땐 한 시간도 넘는 대기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며 기다리는데, 아무리 이어폰을 타고 흥미로운 대사들이 흘러나오고 있어도 내 이름 석자를 놓치는 적은 없다. 평생을 동반한 이름이기에 몸이 먼저 반응을 하고 알아챈다.


피검사를 받을 때는 혈액 샘플을 담은 작고 길다란 유리병에, 소변 검사를 받을 때는 종이컵에 내 이름 석자가 제대로 프린트되어 스티커로 붙었는지 확인한다. 시술을 진행하기 전, 수면 마취에 들어가기 전에도 늘 김모레 님이 맞는지 물어본다.


생각해보면 병원에서 나는 대체될 수 없는, 아니 절대로 대체해서는 안되는 뚜렷한 한 개인으로서 존재한다. 나의 혈액형과, 항체 호르몬 치수, 황체 호르몬 지수, 유전자 결과, 간염 수치, 기타 나의 몸에 관한 세세한 상태 정보들은 절대 타인의 것과 바뀔 수 없다. 내 몸의 가장 마이크로한 우주가 전부 나의 이름과 생일 뒤에 저장되어 있다. 비록 몸에 살짝 부족한 부분이 있어 찾아온 병원이지만, 그래도 내 이름만은 여기서 온전해진다.


김모레, 라는 완성된 세 글자로.




(이 글은 노들서가에서 진행된 고수리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 중, '내 이름을 주제로 30분 안에 글쓰기' 과제로 작성되었습니다. 제 브런치 계정에 본명을 밝히고 있지 않기에, 이름이 들어간 부분들은 모두 필명으로 대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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