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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바람 Oct 31. 2020

난임 일기를 마치며

처음 생각했던 결말은 아니지만

난임 일기의 끝은 어떻게 맺어야 할까.


2018년 2월, 첫 번째 난임 일기를 블로그에 올리고, 같은 해 9월 브런치에도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쓰는 이 글이 나의 마지막 난임 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 다음 글부터는 임신 일기였으면 좋겠다고. 더 이상 이런 글은 쓰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나는 3년 동안 블로그에는 26편 브런치에는 34편의 글을 남겼다. 그리고 오늘은 나의 지난했던 난임 일기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어제 나는 11번째 시험관 이식이 실패했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다음 달에는 12번째 시험관 시술을 진행한다.




사실 나는 아주 전부터, 나의 난임 일기를 어떻게 끝내야 할지 고민해왔다. 그건 타인의 난임 일기를 읽을 때마다 자꾸 형체를 드러내는, 나의 이기적이고 못된 심보에 기인한 걱정이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분들의 글을 읽고 그들의 채취 경험, 이식 일기에 공감하며, 나만 아파하고 있는 게 아니구나 위로를 받았다. 내 주위에는 다들 한 번에 자연 임신이 되어 유산 한 번 없이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하는 친구들만 있는데, 그래서 세상에서  혼자 힘든  알았는데,  과정을 함께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외로워졌다. 그래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이 글로만 마주친 사람들에게 모두 마음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난임 기간이 자꾸 연장되는 동안, 나는 다시 혼자가 된 기분을 떨칠 수 없게 되었다. 난임 휴직에 대해 서로 정보를 주고 받고, 배주사 슈게스트의 통증을 함께 공감하며 맺었던 블로그 이웃들이 지금은 다들 아기 사진들이 잔뜩 첨부된 육아 일기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블로그든, 브런치든 - 누군가 난임 일기의 졸업을 선언하고 임신 일기를 시작하면, 나는 그들을 온 마음으로 응원하겠다 다짐하면서도 자꾸 쓸쓸해졌다.


다른 경우도 있었다. 10년동안 임신을 시도했는데 결국 포기했다가, 결혼 18년차에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을 때 아이가 찾아왔다는 (그러니 포기하지 말라는) 댓글을 누군가 달아주신 적이 있었다. 정말 기적 같은 이야기였고, 감사한 댓글이었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그 댓글은 그 분의 선한 의도와는 전혀 상관 없는 부작용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때 나는 아마 시험관 3차 정도 되었을 것이다. 이 짓을 10년동안 더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무서웠다.  마찬가지로, 나는 습관적으로 네이버 맘스홀릭 카페에 드나들며 의도적으로 시험관 고차수 후기들은 피했다. 그건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어야만 했다.


그동안 애써 고차수 후기들을 외면해왔는데, 내가 고차수 당사자가 될 줄이야. 나는 시험관 시술을 할 지 말 지 결정하기 위해 알아보려는 분들, 시험관 시술을 막 시작한 분들이 요즘 내가 쓰는 글을 읽고 힘을 얻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 과정이 이렇게나 길어지는 건 흔한 케이스가 아니다. 괜히 이례적인 사례를 보며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


요새는 난임 일기, 시험관 시술에 관한 글이 브런치에서 꽤 많이 보인다. 아무리 내가 해당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빈번하게 추천을 받고 있는 거라 해도, 브런치 인기글이나 메인글에 뜨는 난임 일기의 저자가 매번 다른 사람이라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처음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 나 말고 난임 일기를 쓰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었다. 갑자기 몇년 새 난임 인구가 늘어난 건 아닐테고,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들어내는 일에 조금 더 용기있어진 거라고 생각한다.


요새 들어 실패를 다루는 법에 대한 글만 반복해서 올리고 있는 나의 난임 일기와는 달리, 그 분들의 글에는 시험관의 과배란부터 채취, 이식까지 상세한 기록이 정리되어 있다. 나는 같은 과정을 너무 많이 반복해온 나머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성 글을 정리하는 것에 지쳤다. 길어지는 시험관 시술 중에도 포기하지 않을 힘을 얻기 위해 그 동안 글을 써왔지만, 이제는 오히려 글보다는 남편을 통해 힘을 받고 있다.  


지금의 나는 계속 시도를 하고 있고, 그 끝이 결국 임신일지 혹은 포기일지는 알 수 없다. 남편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네가 노력해서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일에는 너무 마음 쓰지 마. 이번에 임신이 되면 좋은 거고. 아니면 다음을 기약하는 거고. 그러다 힘들면 언제든지 포기하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입양해서 함께 살면 되는 거고,"라고 말해준다. 나는 아직 버틸만하다.


그러니 나는,
'임신했습니다. 난임 일기는 졸업합니다' 라는 소식도,
'결국 임신을 포기하고 남편과 둘이 살기로 했습니다'라는 선언도 아닌,
'아직은 계속 시도해보겠습니다' 라는 씩씩한 다짐으로 이 난임일기를 끝맺어 보려고 한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 혹시 지금 시험관 시술을 진행 중인데 말벗이 필요하신 분들은 언제든 저에게 메일을 보내주세요. 사실 저는 철저히 정보를 확인해가며 시술에 임하는 사람은 아니기에, 어느 병원/전문의가 좋은지, 주사마다 어떤 효능이 있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에 대한 정보는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 쪽으로는 도움이 전혀 안 될거에요. 그러나 혹시라도 제가 그 동안 쓴 난임 일기에 대해서 궁금한 내용이 있으시다면, 혹은 시험관을 진행하며 주변 사람들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있으시다면, 제가 시간 되는대로 읽고 답장해 드릴게요.


-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저는 난임 일기가 아닌 모든 일상에 관해 두 번째 브런치 계정 '선의'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세상이 어려워도 나는 다정할래"라는 매거진으로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음, 이상하고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난임 일기'라고 콕 한정해서 글을 쓰지 않더라도, 어쨌든 난임은 지금 저의 일상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시험관 시술에 대한 상세 정보보다는, 우울함이나 불안함을 마음 한 켠에 기꺼이 끌어 안은 채 하루 하루 살아가는 일상에 더욱 집중해 글을 쓸 예정입니다. 응원해주세요 :)

 https://brunch.co.kr/@sunyoungprk/133





PS. 혹시 그거 아세요? 네이버 웹툰 <마음의 소리>의 후기가 4편인 거.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시험관 시술 진행하다가 또 특별한 경험을 겪거나 쏠쏠한 정보를 알게 되면, 그래서 다시 도움이 될만한 글 소재가 생기면 저는 언제든 '에필로그'라는 핑계를 대고 또 글 쓰러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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