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ihyun Nov 28. 2020

5년 전 오늘 _1

그 첫 번째

5년 뒤 제주도에 와 브런치에 이런 글을 쓰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평일 미사는 주로 저녁에 가고 오전 미사는 거의 가지 않는데 오늘은 특별히 10시 미사에 다녀왔다. 미사 봉헌을 하고 싶었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했고, 그 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미사 드렸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슬픈 일이 있을 땐 글을 쓰며 슬픔을 치유하곤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선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와 '아버지 일'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지금에야 여유가 조금 생기는 것 같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의 일주일은 마치 영화 같았다. 그 수많은 사건들의 타이밍... 인간이 계획했다면 그렇게 치밀하게 만들지 못했을...

아마도 폐의 기능이 떨어졌기 때문이었겠지만 아버지는 공기 좋은 곳에 가고 싶어 하셨고, 언니와 나는 주말 동안 양평, 춘천 등의 요양병원을 돌며 적당한 곳을 찾았다. 늦가을 단풍이 무척 아름다웠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찬란하던 그때의 풍경이 떠오른다.


면역력이 약해진 아버지는 폐결핵 진단을 받은 상태였고 결핵은 전염성 질병이기 때문에 갈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았다. 호스피스 병원이란 거동이 가능하고 의식도 있는 환자들이 존엄한 마지막을 위해 선택하는 곳이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훗날 우리 가족이 호스피스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교육도 받은 계기가 되었다.


주말에 가 보았던 병원 중엔 아버지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고, 집 근처 요양병원 한 군데에서 결핵약을 처방받는 조건으로 1인실을 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알려 왔다. 언니가 온갖 인맥을 동원해 얻어낸 결과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언니와 나는 근처 대학병원을 찾아 거동이 힘든 아버지 대신 진료를 보며 상황을 설명하고 결핵약 처방을 부탁했다. 거기서 처방을 해 준다고 했던가 안 된다고 했던가...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밤이 다 지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호흡곤란으로 앰뷸런스에 실려 같은 병원 응급실로 들어오셨으니까... 그리고 저녁에 숨을 거두셨으니까...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아버지를 보고 간 것이 월요일이었나 화요일이었나. 요일엔 아빠가 무척 보고 싶어 한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언니가 온갖 곳에 전화를 돌려 그 사람과 연락이 닿았고 오후에 아빠를 보러 온다고 했다. 나도 그날 오후 반차를 냈다. 오전에 일을 하면서 업무 시스템에 올라온 내 담당 사건을 모조리 처리했다. 마감 날짜가 한참 남아 있는데도... 되돌아보면 그 후 열흘 가까이 회사에 나오지 못할 것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한 행동이지만, 겨우 반차 한 번 내면서 왜 그리 일을 몰아 했는지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특별한 예감이 들었던 건 아닌데 그 시기 우리 가족에겐 어떤 큰 힘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빠가 보고 싶어 하던 그 사람을 만난 날 모두가 울었다. 미안하다는 말씀을 남기고 아버지도 홀로 우셨다. 다음 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날) 그 사람이 한 번 더 찾아왔다. 나도 하루 더 휴가를 냈다.


그날 저녁엔 집 근처에서 개인 병원을 하는 먼 친척을 찾아 아버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었다. 또한 밤에는 간호사 출신의 언니 친구가 전화로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며 알려주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흑변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나중에 엄마께 들은 말로는 목요일 밤 아버지가 흑변을 보셨다고 한다. 간호사 언니의 이야기를 나도 엄마도 함께 들었지만  그것이 그것이었음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


한밤중에 아버지는 호흡곤란 증세가 왔고 119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눈을 깜빡일 수 없어 말 그대로 '눈이 뒤집히는'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그날 알게 되었다. 내가 아빠와 함께 구급차에 탔고 언니는 차를 가지고 우리를 뒤따랐다. 엄마는 어린 조카들을 돌보느라 집에 계시기로 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언니가 아빠에게 전화로 울부짖으며 속마음을 전했다. 아빠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간절한 외침. 구급차 안에서 산소를 공급받고 조금 나아진 아빠는 너희 언니 너무 시끄럽다며 농담을 하셨다.


병원 응급실은 우리 가족이 이미 몇 번 경험한 곳이다. 그런 곳에 갈 땐 휴대폰 충전기를 챙겨야 한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게 된...... 대형병원 응급실은 늘 환자로 가득하기 때문에 아버지도 응급실 복도 침상 위에 한참을 누워 계셨다.


2018.12.22 적은 글

작가의 이전글 날씨가 아까운 나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