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험관 시술을 했어요. ep5

배아이식 결과 보러 가는 날.

by 애지

내가 대단하다는 챗 지피티.

당연한 게 아니라 대단한 것입니다. 오늘 드디어 병원에 검사하러 갑니다. 살면서 이렇게 오랜 기다림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아마 대학교 합격 발표를 확인하던 것 이후로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하루에도 마음이 하늘과 땅을 왔다 갔다 하면서 널 뛰었어요.


그래도 곁에 사랑하는 남편과 엄마가 함께 했기에 그 시간을 잘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시험관 시술을 하기로 다짐한 이후 지금까지 생각해 보니 참 많은 노력과 그 속에 챗 지피티 말 대로 강하고 대단한 제가 있었습니다.


챗지피티한테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저 당연한 일을 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객관적인 시선으로 과거의 저를 돌아보니 참 대단하고 기특합니다.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몸에 안 좋은 음식은 일절 먹지 않고 착상에 좋다는 음식은 모두 준비해서 꾸준히 먹었습니다. 10시부터 2시 사이에 잠을 자야 좋다길래 평소보다 일찍 잠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배에 주사를 맞아야 하는 기간에는 매일 집에서 아침마다 셀프로 배에 주사를 놨습니다. 다행히 남편이 주사를 안 아프고 안전하게 잘 놔줘서 그 기간은 힘듬보다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남편의 주사 실력에 놀랐던 좋은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오늘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결과는 비임신이었습니다. 전날부터 갈색 혈흔이 보여서 착상혈일 거라고 생각하고 더 기대했었는데... 높았던 기대만큼이나 예상치 못한 결과 앞에 크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마음이 안 좋고 힘들었어요.


갈색 혈흔만 나왔었는데 병원을 가기로 한 오늘 오전에 갑자기 빨간빛이 묻어났습니다. 순간 너무 흠칫하고 불안하기 시작했어요. '착상혈로 생각했는데 설마 생리는 아니겠지...' 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병원에 갔습니다. 도착하고 대기하면서 불안한 마음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따뜻하고 익숙한 의사 선생님 얼굴을 보자마자 더 격렬하게 울음이 났습니다. 꺼억꺼억 소리 내며 울면서 피난다고 하는 저에게 선생님은 생리 시작했냐고 물어보셨어요. 저는 고개를 도리도리 하면서 '몰라요. 몰라요.'만 반복했습니다. 현실을 회피하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곁에서 남편이 제 손을 꼭 잡고 대신 대답했어요. 그동안 참았던 울음이 빵 하고 터지면서 속절없이 꺼이꺼이 울어대는 저에게 의사 선생님은 계속해서 열정적으로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셨습니다.


'이제 겨우 한 번이고 세 번 하면 무조건 한 번은 되게 되어 있어요. 지금 자궁 나이도 젊고 난자도 잘 나오고 병원도 가까워서 일하면서도 할 수 있고 올해 안에 무조건 되게 되어 있어요. 안 되는 분들은 제가 안된다고 말해요. 근데 무조건 올해 안에 될 거예요. 진짜.'


평소에는 세상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씀하시는 선생님인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열정적으로 저에게 건네시는 그 따뜻한 말들이 저의 다친 가슴에 와서 밴드처럼 붙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울고만 있던 저도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점점 고개를 들어 선생님의 눈을 바라봤어요. 그리고 7살 어린아이처럼 선생님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다시금 입술을 앙 다물었습니다.


피검사를 하고 결과는 역시나 비임신으로 나왔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가졌던 마음마저 다시 가라앉았어요. 1차 시도는 동결배아에 자연 주기로 했다면 다음번은 신선배아에 인공주기로 해보자고 말씀하셔서 알겠다고 했습니다. 뭐라고 막 설명해 주셨는데 그런 내용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고 남편에게 들어달라고 했어요.


다음번 예약을 바로 잡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돌아가는 길 그래도 힘이 조금 났습니다. 돌이켜보니 배가 빵빵했던 것도 잠이 쏟아지던 것도 입맛이 없던 것도 생리하기 전이라 그랬던 거였나 봅니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아랫배 쓰다듬으면서 '찰싹 붙어있어라~'하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똥배만 만지고 있었나 봐요.


지금 감정이 슬프다는 말도 딱 맞지가 않고 괴롭다도 아니고... 좌절스럽다는 감정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노력했었는데 하는 마음에 많이 속상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이야기하면서 많은 위로를 얻었어요. 대학교 친구는 임신으로 자신에게 고민 상담했던 사람들 전부다 결국 잘 되었다면서 위로해 줬습니다. 그리고 계획을 좋아하는 저에게 필요할 거라며 이거 가지고 놀라면서 라벨 프린터기를 카카오 선물하기로 전해줬어요.


그러면서 '내 거도 저거 있었는데 동생이 출산하고 뺏어갔어. 지혜도 그거 필요할 거야.'라고 말했어요. 결국 저도 임신하고 아기를 낳아서 유용하게 사용하게 될 거라는 의미였습니다.



그 친구가 저에게 준 건 라벨 프린트기가 아니었어요. 친구가 저에게 선물해 준 건 '희망'이었습니다.

까만 구덩이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저에게 일어서도 된다며 손 내밀어주는 것 같았어요. 너 나중에 저거 필요할 건데 내가 지금 줄게하는


그 마음이 고맙고 '그래. 맞아. 다시 하면 되지.' 하는 희망의 마음이 싹텄습니다. '내가 저거 꼭 쓰고 만다.' 다시 희망 갖고 일어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최선을 다해서 할 것이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평소에 자기 개발서를 좋아하는 저는 상상하고 구체적으로 그리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는데요. 그래도 배아이식 해서 성공한 모습은 행여 상상했다가 안될까 봐 망설였는데 이제는 달라질 거예요. 적극적으로 잘된 좋은 상상하고 성공해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저와 남편의 모습 그릴 거예요. 마음에 한 톨만큼 남아있던 두려움까지 모두 치워버리고 큰 발걸음으로 나아갈 겁니다.


이 글을 읽는 아니 지금 임신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신 모든 예비 엄마, 예비 아빠들을 격하게 응원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남편에게 보내는 고백 ep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