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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Oct 10. 2023

손 안의 모래

일에 대한 집착

 명상을 할 때 마지막에 꼭 두 손을 싹싹 비벼서 눈에 가져다 마사지를 해준다. 그리고 안내 음성에 따라 손바닥을 눈에서 떼고 시선을 손바닥에서 주변으로 넓힌다. 하루의 시선이 그렇게 넓어지고 나면 느낀다. 오늘도 손바닥만 보고 살지 말자.


 나는 워낙 어렸을 때부터 '내 것'에 대한 집착이 심한 편이었다. 내 물건을 동생이 만지는 일은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고, 유순하고 말이 없던 어릴 적 내가 거의 유일하게 난리를 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정리를 잘 못하는 편이라 주변이 항상 어수선하지만 거기에도 내 우주가 있어서 그 자리에 그것이 없으면 안 된다. 제삼자가 볼 땐 혼돈이지만 그 안에서 내가 나만의 질서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그 성미는 일을 시작하고 나서 더 심해졌다. 나는 내 일이 좋았다. 성과를 크게 보여주는 직업은 아니었지만, 내 자리에서 내 몫을 해내고, 일 년을 버텨내는 일이 좋았다. 사람과 일에 크게 데여도(주로 사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내 자리를 지키고 다음 날 굳건히 출근하는 게 좋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웃으며 내 할 일을 해내는 내가 좋았다. 동료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그날의 일을 토로하는 것도 좋았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쥐고 "내 것"으로 생각하며 정상적인 하루에 집착했다.


 아침 7시에 기상한다. 씻고 출근 준비를 한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동료들과 커피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다시 업무에 복귀하고, 이제는 꽤 익숙해진 업무를 쉽게 처리한 뒤 퇴근한다. 이게 내 우주고 내 손바닥 안의 예쁜 모래들이었다. 나는 이것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루틴은 내 것이어야 했다.



 그러다 돌연 책임이 없는 일에 내게 책임을 묻는 이가 생겼다. 티끌이라 생각했던 일을 태산으로 넘기는 이가 생겼다. 그는 이걸 보라며, 모두 네 책임이라 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상부에 보고하며 내게 책임을 묻게 했다.


 생각해 보면 이 일은 9년 동안 같은 일을 하며 일어났던 일 중에 크게 힘든 일도 아니었다. 그동안 별의별 일이 다 있었기에 나는 그냥 술기운에 자고 일어나서 다시 '내 하루'를 살아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와인을 마셨다. 항상 먹던 약을 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하고 쓰러졌다.


 술에 취하자 제법 솔직해진 내가 내일 눈 뜨기 싫어져서 약을 14 봉지나 한꺼번에 털어먹었다고 했다. 나는 약을 먹고 쓰러진 직후부터 병원에서 깨어나 집에 다시 왔을 때까지 모든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약을 얼마나 먹었는지 어떻게 쓰러졌는지, 병원에 어떻게 실려갔는지, 병원에서 본 남편의 얼굴은 어땠는지, 남편이 나를 집에 어떻게 데려왔는지, 그 이후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단 한 가지, 나는 그날 정신과 입원 권유를 받았다.



 남편은 그 즉시 내가 항상 다니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연락을 해서 급히 상담을 받게 했다.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조현병 정도가 아니면 3개월 이상의 진단서는 끊어주지 못하신다던 선생님은 내게 당장 쉬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남편은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를 데리고 심리 상담을 예약해서 바로 데려갔다. 역시 똑같은 뉘앙스였지만, 선생님은 계속 내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셨다.


 "이미 3년 동안 정신과 진료를 받고 계셨고, 약물치료도 꾸준히 하고 계셨네요?"

 "네."

 "힘이 든다, 하기 싫다, 이미 몸이 말하고 있었네요?"

 "그래도 괜찮을 줄 알았어요. 일이 하기 싫은 건 아니에요."

 "원인이 있고, 그 일로 인해 힘이 들어서 쓰려지기까지 했어요. 그런데도 왜 쉬지 못하는 건가요?"

 "쓸모없어지는 게 너무 무서워요. 제가 올해 해온 일들이 마무리되는 걸 제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게 힘들어요."

 "내가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지 않을까요?"

 "회사는 잘 굴러가겠죠."

 "네. 그거예요. 어찌 됐든 일은 마무리가 됩니다. 몸을 갈아서 해 온 일들을 마무리 한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또다시 몸을 갈아 넣는 것밖엔 안 되죠. 그건 날 위한 보상이 아닙니다. 쉰다고 해서 쓸모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나는 손안에 모래를 꽉 쥐고 있었다. 내 것이라 생각했던 알갱이들. 일과 동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효능감, 사회에 소속되었다는 안정감 등등 예쁜 모래알들이 알알이 내 손안에 쥐어져 있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손바닥을 쫙 펴보았다. 손바닥의 모래알들은 의미 없이 펴진 내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 내려갔다. 손바닥이 텅 비자 나는 그제야 손바닥에서 시선을 떼고 멀리 바라보게 되었다. 똑같은 하루 속에서 나는 넓은 세상은 바라보지 못했다.


 솔직해지기로 했다. 이대로의 하루는 아무리 완벽한 내 것일지라도 나는 이제 이렇게 살기 싫었다. 나는 결국 일을 쉬기로 했다. 손바닥을 탁탁 털어서 남편의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간다. 그동안 퇴근하면 지쳐서 눕기 바빴는데, 이제야 남편 손을 잡고 하늘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내 손이 더 자유로워지면 아름다운 세상도 만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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