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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 young Dec 18. 2020

꽃보다 고운 아이

킁 킁 킁 킁

떠나기 20일 전즈음, 갑자기 신장 수치가 급격히 올랐다.

아마 그 몇주전 전 염증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오랫만에 사용했던 소량의 스테로이드가 문제였던것 같다.

3일간 가볍게 치료를 받고 건강한 수치로 퇴원한 심바 머리 곁에( 엄밀히 따지면 그냥 내 방에 )

꽃시장에서 싸게 파는 동백가지를 몇개 물에 담가 놓았다.

어차피 이미 잘려진 가지일 뿐이라 변화도 없고, 더 자랄것도 아니기에 물도 잘 안갈아 주고 그냥 저냥 겨울 느낌 인테리어 정도로 방치해 놓았다.


어제 이른 새벽, 심바가 쓰다만 물티슈로 무언가를 닦고 있다가 마음이 기쁘게 쿵하는 장면을 발견했다.

이 말도 안되는 반 죽은 나무 가지에서 꽃봉우리가 수줍게 올라온 것이다.

물한번 제대로 갈아준 적이 없는데. 

나 빼고는 심바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었던 생명체에서 이렇게 말도 안되는 작은 빛이 피다니.


사실 나는 아이가 좋은 곳 갔을 것이다. 네가 계속 울면 아이가 얼른 천국으로 못간다.

이런 이야기들을 요 며칠 계속 듣고 있긴 했지만, 정말 그런게 있을지에 대한 의심은 계속 되었다.

영혼이 있다는 건 알지만 좋은 곳에 가는건 어찌 알고, 또 가는 길이 며칠이 걸리는 건 누가 정하고, 

흔히 이야기 하는 무지개 다리가 정말 무지개 색인지, 걷기 힘든 돌멩이길인지 그 누가 어찌 알까. 하면서

사실 믿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나를 보란듯 안심을 시켜준다.

꽃보다 고왔던 아이의 길을, 생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몇천원 짜리 가지에서 피어난 꽃은

안그래도 꽃향기, 풀냄새를 엄청 좋아했던 아이가 의심 투성이인, 그래서 어둠에 쌓여있는 나에게 보내는 메세지인듯 하다. 나는 지금 가는 길이 꽤 재밌고 흥미롭다고.




 장례식장으로 향하기 한시간  전, 난 아이와 함께 보낼 꽃을 사러 잠시 집앞을 나섰다.

우리집 반경 50m안으로 꽃가게가 4개가 있다. 다들 한번씩 가보긴 했지만 오늘은 왠지 한번 불친절하게 나를 대했던 그 집에 가고 싶어졌다. (물론 그때 꽃도 사지 않았고) 문은 잠겨 있었다. 괜한 고집이 생겨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다. 

젊은 사장님은 여전히 약간은 불친절한 목소리로 

"제가 지금 가고 있긴 한데 차가 막혀서요." 

그럼 그렇지, 그냥 끊으려는 나에게

"가게 문 열려있으니 들어가셔서 아무거나 골라가시겠어요?"


목소리에 대한 괜한 오해였나. 내가 급하다고 한것도 아닌데. 

가야하지만  영원히 지나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복잡한 마음을 읽은걸까.

나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가장 심바와 어울릴법한 꽃을 고르며 울음이 터졌다.

지금 급하게 우리 강아지 장례식에 써야 되는데 감사하다고. 전화 넘어 상대방의 울먹임은 항상 눈물샘을 촉진하는 묘한 힘이 있다.


덕분에 아이는 여리여리 고운 꽃들 사이에 편안히 잠들었다.

오늘 나는 다시 그 꽃집을 찾기로 했다. 잘 닫혀있는 집이라 오후 미리 전화를 했다.

그때 그 강아지집인데 오늘 아이한테 어울릴만한 화려한 꽃을 선물했음 좋겠다고.

내가 좀 늦게 갔나보다. 사장님이 얼어 죽을 뻔했다고 하는데 그냥 그분 성격이 그런것 같다.

그리고 이건 제 선물. 하면서 따로 포장한 꽃도 내미신다.

사람은 역시 함부로 판단하는게 아니다.


심바가 마지막 누워있던, 아직은 감히 치우지도 못하는 이불위에 꽃을 가만히 놔둬본다.

이 아이가 꽃이었다면 이렇게 쨍한 색이었을까.

한번도 얼굴 본적 없는 강아지를 위해 만든 꽃


오늘은 그래도 여기 저기서 꽃향기가 나서 그런지 다리가 괜찮았던 불과 몇달전까지 길가에  이파리 하나 지나치치 못했던 꽃같은 아이가 많이 신나하고 있는 느낌이라 마음이 놓인다.

심바, 킁킁거리며 잘 가고 있는거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꽃방울 달아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꽃모자 써본날


나 지금도 온갖 향기땜에 바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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