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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 young Dec 24. 2020

슬픔이 그리움으로

그리고 무거움으로

22일, 23일은 회사일로 미친듯 바빴다.

일이 산더미처럼 쏟아져서 커피는 고사하고 화장실 갈 시간도 넉넉치 않았다.

이렇게 정신이 없으면 조금은 덜 슬플줄 알았는데. 뇌가 콩처럼 두쪽으로 나뉘어  반은 아이 생각, 반은 일 생각으로 각자 움직였다.


9일이 지나면서 아이의 죽음은 점점 실감이 나기 시작하고 슬픔의 결도 조금씩 달라졌다.

아이가 떠났던 모습, 마지막으로 쓰다듬었던 감촉들, 잘가라고 뽀뽀할때 차가움만 올라와서 더욱 보내주기 싫었던 내가 사랑했던 아이의 코가 생각나서 아무 외부 자극 없이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었는데 점점 아이와 행복했던 시간, 내가 다른 일로 바쁘면 놀아달라고 조르던 새침한 얼굴, 이맘때쯤 크리스마스 요리를 하고 있는 내 뒤에서 로케트모양으로 앉아있던 아이. 그래, 우린 함께 참 행복했구나 싶은 그리움에 조금씩 눈물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고 있다.


심바의 소식을 늦게 전해들은 전 회사동료가 위로의 전화를 했다. 정신없는 이틀이었지만 회의실과 정수기통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저 분도 지금 많이 아픈 아이를 돌보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우리 서로 수고했고, 아이들 위해서 그만 울자고, 새해에 상황이 괜찮으면 웃으면서 함께 점심을 하기로 했다.

회사에서 툭하면 눈물을 쏟는것이 나도 지치고, 어쩌면 주변 사람들도 점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전쟁같은 업무 후 간신히 퇴근을 했다.

오늘은 동생이 키우고 있는 2살 상수가 집에 놀러오기로 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태어난 조상관계가 조금은 복잡하고 광기어린 친구다.

세대차이도 너무 크고 심바가 너무 예민한 나머지 자주 만나지는 못해서 아쉽지만.


첫만남. 너 정말 해맑구나.


아직 치우지 못한 아이의 가장 오래된 쿠션.  그 앞에서 생각에 잠긴 상수


심바 누나 떠나기 전 잘 썼던 방석위에서 누나 장난감을 아작내고 있는 남동생


며칠간 온라인이던 오프라인이던 다른 강아지를 보는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동네를 산책하고 있는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마주쳐 오면 눈을 감아버리기 일수였다.  이 공간에 아이는 없고 다른 강아지가 있다는 것이, 며칠전까지 누워있던 자리에 또다른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럽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이와는 또 다른 활발한 에너지에 나도 정말 며칠만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꾸 상수야 대신 심바 이리와봐가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해맑게 놀고 있는 상수를 번쩍 들어 안아보았다. 유난히 폭 안기기 좋아했던 아이와는 너무 다르게 어색하게 뒷다리를 쭉 뻗는다. 그래, 너도 사랑만 잔뜩 받고 행복하기만 하길.


공간에 다시 나 혼자 남자 공기가 무거워진다. 집은 상수의 털로 가득하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털 한올 나오지 않는 매정한 너란 녀석과는 매우 다르구나. 하룻밤만 잠시 놀다가면 안될까. 

나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 다른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며 조심스럽게 권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그런 생각은 당연히 들지도 않을 뿐더러 아이의 빈자리를 다른 생명으로 채우고 싶지는 않다. 대신 심바의 방석은 앞으로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올 상수를 위해 비워놓기로 했다. 이정도는 욕심쟁이 심바도 이해해주겠지. 언니가 조금은 슬픔을 이겨나가는 방법이라고.


크리스마스 이브, 평소라면 아이와 산책도 하고 집에서 뒹굴거리고 맛있는것도 뒤적거리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텐데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크리스마스 트리  대신 추모테이블을 만들어보았다. 아이의 유골과 떠날때 찍어 두었던 발바닥 도장을 조심스럽게 옮겨 유리케이스에 넣고, 밥 다음으로 좋아했던 산책길에 늘 함께했던 하네스, 1년전 생일날 썼던 꼬깔모자와 축하메세지, 마지막 생일에 함께 했던 생일초 등과 함께 꽃과 물그릇까지 가져다 놓으니 이게 무슨 청승인가 싶다가도 다 만들어 놓고 나니 오랫동안 못치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매우 거칠었던 1년전 생일



오늘은 아이가 떠난 후 처음으로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픈걸 느끼는 내가 갑자기 너무 동물같이 느껴진다. 내가 조금씩 덜 울고 있다고 아이가 서운해 하진 않을지.


얼마 못먹었지만 그래도 오랫만에 뭔가 음식다운것을 먹었다
어느해 연말 파티라고 특별히 만들어줬던 음식. 저때 확실히 우리 아이는 동물이라는 것을 인지한 날.


주변에서는 내가 너무 슬퍼하면 아이가 마음 아파한다고 해서 사실 그런것을 믿지는 않지만 최대한 참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눈물은 이제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되고 있지만 그리움은 나날이 커져간다. 그냥 갈 길이 멀구나 싶다. 아니면 끝이 없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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