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asy young Jan 18. 2021

동백꽃 필 무렵

우연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떠나기 3주 전쯤 꽃시장에서 파는 동백꽃 가지를 들였다. 사실 정말 어디서 대충 잘라온 듯한 나뭇가지 모양이라 크게 신경 안 쓰고 아이가 자는 머리맡에 무심하게 물에 담가놓았다.


아이가 떠난 월요일은 사실 나에게 또 다른 월요병을 선물하였다. 일요일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때 이 시간에는 밥 먹고 아이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을 시간이었는데. 월요일 아침에 잠에서 깨면 심장이 멈춰있는 아이를 발견했을 때의 그 감정. 하루 종일 무거웠던 하루가 아직은 그대로 느껴진다. 다행이라면 상대적으로 회사와 관련된 월요병은 언제 앓은 병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는 것.


아이가 떠난 후 수요일 아침. 3주간 아무런 미동도 없던, 그래서 물도 갈아주지 않았던 동백 가지에 꽃이 피었다.

개화하고 삼일은 애지중지했는데 결국 떨어졌다

아이가 피우고 간 것은 아닐까. 지금 잘 가고 있다는 사인인가. 여러 가지 생각이 나기도 전에 나는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이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다뤘지만 어이없이 물을 갈다가 뚝 떨어져 버렸다. 나는 두 번째 동백 가지를 주문했다. 동백이 찬 곳에서 꽃을 피운다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 알고 창가로 자리를 옮겼다.


억지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이 몇 주. 꿈에서라도 찾아오면 좋으련만 아이는 야속하게 자기만의 여행을 하고 있는 듯 나타나지 않았다. 섭섭했지만 우리는 각자 서로 보고 싶어도 볼 수는 없는 각자의 패턴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첫 번째 동백이 피고 정확히 이주 후, 처음으로 아이가 거의 소품처럼 등장한 꿈을 꿨다. 평소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 친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주변 사람들의 피가 엄청 튀기 시작하는 이상한 꿈. 아이는 그냥 내 무릎에서 반쯤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두 번째 동백이 꽃을 피웠다.


이번 동백은 완벽하게 동그란 모습이었다. 동백이 이렇게 이쁜 꽃이었나 싶었다. 어떤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특히 슬픔 어린 추억을 무엇으로 남기는 것을 청승맞다고 생각하는 나였지만 이번은 달랐다. 마치 아이가 나 잠깐 왔다 가~ 하고 무심하게 남긴 쪽지 같았다. 어떤 의미도 없이 그냥 나 왔다감. 심바 다웠다. 


그리고 그저께 세 번째로 아이가 꿈에 찾아왔다. 이번에는 완벽하게 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30초 정도 아이가 나에게 엄청 애교를 부렸다. 안기고 뽀뽀하고 꼬리를 미친 듯 팔랑거리며. 꿈에서 깨는 것이 너무 아쉬울 정도였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세 번째 동백이 지저분한 잎들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우연이라면 우연일 수 있겠지만 아직은 아이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이 머리 곁에서 처음 꽃을 피웠던 나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5천 원짜리 나뭇가지를 통해 이제는 내 머리맡에서 우리는 점점 이별하고 있다.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지 아직 모르겠고, 아마  정답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내 마음 가는 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어떤 날은 "나도 언니랑 놀고 싶어!" 하며 칭얼거리는 아이의 천진한 모습을 그리워하고, 또 어떤 날은 "까멜리아를 사랑했던 코코샤넬처럼 언니도 씩씩하게 살아."라고 나를 지켜주는 아이의  시크한 응원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려 한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꽃도 영원할 수 없다. 말린꽃도 잠시 시간을 연장하는 것뿐이다.  항상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아이처럼 날이 따뜻해지면 동백꽃은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이제 매년 바람이 차가워지면 나는 또 동백꽃이 피기를 기다릴 것이다. 아이가 떠난 겨울을 너무 슬프게만 보내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개넬 - 


매거진의 이전글 4주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