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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 young Feb 08. 2021

Don't Worry

우리 잘 지낼 수 있을거야

아이가 떠난 후 다가온 크리스마스에  쓸만한 물건들을 유기견 보호소에 보낸 적이 있다.

아이의 흔적이 갑자기 다 사라지는 것 같아 허전한 마음도 있었지만 좋은 곳에 쓰이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별것 아닌 일에 안 그래도 바쁘신 소장님에게 부담이 될까 봐 연락은 고사하고 SNS도 방문하지 않았었다. 어제는 왜인지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무심코 손가락이 움직여졌다. 너무나도 이쁜 첫 사진을 보고 나는 즐거운 눈물이 몇 방울 흘렀다.


아이가 입고 있던 가운이 어딘가에서 소중하게 쓰이고 있는 모습에 내 허전함을 채우고자 잠시나마 망설였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우리 아이나 아직은 태어난 지 오래되지 않은 듯한 저 아이나 마냥 사랑만 받고 자라도 모자란 존재들인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돌봐줄 수 있었던 나와 아이의 17년의 환경이 감사하다. 아무런 대가 없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수많은 유기견 보호소 소장님들과 봉사자님들에게 존경의 마음뿐이다.

무럭무럭 자라라 :)

유기동물에 대해서는 사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생각이 복잡하고 할 말이 많다. 아이가 단 며칠이라도 건강할 수 있다면 내 수명에서 얼마든 나눠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과 머리에서, 또 많은 보호자들에게는 동물을 유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삶으로 들여올 때 많은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시작인 듯하다. 나 역시 아이를 처음 키우기 시작했을 때 내가 앞으로  얼마나 짧지 않은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을  아이에게 투자해야 하는지, 앞으로 나의 개인적인 저녁 일정은 당분간 없을 것이란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6살 때쯤 혼자 불고기용 생고기 1KG를 삼킨 것 외에는 크게 사고 친 기억이 없는 아이를 만난 것은 오롯이 나의 행운이었다.


동물 유기를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들 처음부터 유기하기 위해 동물을 입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사회의 책임이다. 좀 더 까다로운 입양 절차와 지속적인 교육, 유기에 대한 처벌과 예방, 사회 공동체의 인지 등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분명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방법은 있다고 믿는다. 그 과정에서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마음이 더욱 안정되면 찾아가려고 한다.



아이가 마지막 누워있던 쿠션과 마지막 한 달 잘 썼던 타월들은 사실 집에 남겨놨었다. 혹시 아이가 찾아오면, 그래서 자기 물건이 싹 치워진 것을 보면 서운해하면 어쩌지 싶고 나도 아직 모든 것을 치울 만큼 용기가 나지 않았으니까. 아이의 가운을 입고 보송하게 목욕을 한, 아마도 곧 좋은 가족들을 만나 행복한 견생을 보낼 아기강아지의 모습을 본 후 나는 마지막 물건들도 모두 보호소로 보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누워있던 자리도 쓸어보고 아이의 향이 남아있지는 않을지 숨을 마구 들이켜봤다. 결국 향도 기억의 일부니 이 물건들이 이 공간에서 사라져도, 더 필요한 친구들을 위해 쓰인다면 아이도 이해할 것이다. 아마 목욕타월도 필요 없고 잠잘 시간도 없는 천국에서 마음껏 뛰어노느라 바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쿠션도 친구들의 고단한 몸을 위해 잘 쓰이고 있길


아이의 물건 중 이제 쓸만한 물건은 남아있지 않다.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지만 그만큼 내 마음에 아이가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난 느낌이다. 누구보다 사랑받았던 아이가 모든 생명들이 존중받고 행복할 수 있는 세상에 아주 조금이나마 기여를 했다고 스스로 뿌듯해하며 꼬리와 엉덩이를 신나게 흔들고 있길.


 마지막 병이라고 상상도 못 하고 구매했던 샴푸는 반도 남지 않았다. 조금 청승맞긴 하지만 정말 아이가 그리운 날은 한 방울씩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유기동물들을 위해 기부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과 다른 아이들을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때가 되면 봉사도 신청해볼까 하는 작은 계획도 세워본다.


아이가 혹시 바쁜 하늘나라 일정 중 언니는 나 없이 잘 사나 들리러 온다면, 언니는 네가 옆에 있으면 정말 말할 수 없이 행복하겠지만 너 없는 삶도 의미 있게 채워가고 있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나도 내 품에서 떠나 이젠 편하게 지내고 있겠지만 혹시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이 더 있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오는 순간들이 있다. 새침한 아이는 아마 나에게 얘기해 줄 것 같다. 밥은 좀 맛없는 날도 있었고 밖에서 더 놀고 싶은데 언니가 번쩍 들어 올려 집에 갈 때마다 좀 짜증은 났었는데 그래도 17년 동안 언니가 나만 보면 돌고래로 변하고 내 미간을 쓰다듬어 줘서 재밌었다고.


그러니 우리 서로의 안부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자. 이젠.


여배우님 혹시 서운하실까 봐 급 꾸며놓은 포토존


나 잘 지내고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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