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그녀를 겨우 침실로 데려다 눕히자 서우는 다시 벌떡 일어나더니 화장실로 가서는 구토를 했고 내가 등을 두드리며 괜찮냐고 묻자 그녀는 내게 옷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문을 닫고 샤워를 했고 당황한 내가 옷방으로 향해 갈아입을 옷을 챙겨 나와 화장실 앞에 두고
" 저 그만 가볼게요. 쉬세요."
라고 말하자 그녀는 샤워를 하다 말고는
" 잠시만 기다려줘요. "
" 옷 화장실 입구에 뒀습니다."
서우에게 그렇게 말하며 화장 실 입구 사방에 벗어둔 옷을 주섬주섬 챙겼다.
사뭇 다른 평소 모습을 떠올리며 좀처럼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던 그녀가 왜 이렇게 오늘따라 술을 과하게 누구와 마셨는지 궁금하기는 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혼자 두고 가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챙겨든 옷가지를 빨래바구니에 담아 두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한병 쭉 들이키고 앉아 있자 그녀가 나왔다.
" 미안해요. 샤워를 하니 조금 정신이 드네요. "
" 속은 좀 괜찮아요?"
서우는 냉장고로 다가가 물을 꺼내 마신 뒤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쉬었다.
" 무슨 일인데 이렇게 술을 마신 거예요?"
" 본부장님과 한잔했어요. 어제 뉴스 보셨어요? 하아."
나는 문득 미국에 일어난 테러 소식이 뇌리에 스치듯 지나갔다.
" 혹시 미국 테러 말인가요?"
" 흐음. "
그녀는 긴 한숨을 쉰 채. 물병을 쥐고는 한참을 돌려대더니,
" 그 현장에 제 전 사수가 같이 있었는데 소식이 끊겼어요. 여러 채널을 통해 연락을 취해봐도 도통 연락이 안돼요. 안 그래도 제가 전날 통화하며 말한 것 때문에 이것저것 국내 자료를 찾아서 보냈다고 했었거든요. 제가 바로 받는 게 위험할 것 같아 부득이 휘우씨 회사주소를 알려줘서 아마도 휘우씨 회사로 갈 수 있어요. 그래서 그거 부탁드리려고 기다려 달라 말한 거예요. "
" 아... 그럼 제 이름으로 오는 우편물을 챙겨서 드리면 되는 건가요?"
" 아마 양이 제법 된다고 해서 택배상자로 올 거예요. 휘우씨 이름 옆에 제 이름도 같이 쓰게 부탁드려서 그렇게 올 건데 혹시 받게 되면 연락해 주세요. 항공보다는 경계가 덜한 배편으로 보냈다고 해서 통관까지 생각하면 10여 일 정도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
" 중요한 자료인가 보네요. 받으면 챙겨둘게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려 돌아섰다. 그런데 그녀는 웬일인지 일어나 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내가 곁으로 다가가자 그녀의 가녀린 어깨는 들썩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서우의 어깨를 감싸고 그녀를 품에 앉자 그녀의 흐느낌이 온몸으로 느껴져 왔다. 서우의 어깨를 다독이며,
" 늦었어요. 너무 고민 말고 푹 자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이끌어 침대로 안내한 뒤 그녀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 가지 말아요. "
서우의 울음 섞인 나지막한 외침.
돌아서는 내 팔을 잡아 끈 그녀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이불 안으로 파고든 나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는 이내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 정말... 이제는 혼자된 것만 같아요. "
" 너무 상심 말아요. 한국에 왔고 또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이 생겼으니 그렇게 낙담할 건 아니니까요. "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내가 안쓰럽게 바라보자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고는 목을 빼서 내 볼에 살살 이마를 문질렀고 나는 그런 그녀를 더 꼭 끌어 안아주었다.
' 나도 곁에 있어요. 그러니 힘내요.'
차마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하지 못한 말.
" 따가워."
" 응?"
내가 그녀를 내려다 보자 그녀는 이마를 한번 문지르더니 이내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내 볼을 만졌다. 그러더니
" 어떻게 하루도 안돼서 이렇게 수염이 금방 자라요?"
" 하하하. 아직은 혈기 왕성한 때니까요. "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허리를 감싸 조금 더 위로 올린 뒤 그녀의 두 볼에 내 볼을 비볐고 그녀는 이내 방긋 웃더니,
" 왜 그런지 모르지만 힘들 때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자꾸 당신 생각이 나요. 이 품에 자꾸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
그렇게 말하며 한 손으로 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친 듯 요동치는 내 심장.
그녀도 혹여 느껴질까. 잠시 생각이 들던 찰나, 나는 잔뜩 흥분되어 오는 내 마음을 진정시키려 그녀의 어깨를 다독인 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의 앞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기며,
" 잘 자요. 굿 나이트."
그렇게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 믿음. 그 믿음이 당신에게도 필요한 거죠?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의 대답."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 등 뒤를 끌어안았고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내게 키스를 해왔다.
도톰한 그녀의 입술. 파르르 떨리며 전해져 오는 그녀의 슬프고도 긴장되며 애틋한 마음이 내 입술에 전해지며 내 안에 그녀의 슬픔이 가득 참이 느껴졌다.
그런 그녀의 슬픔을 조금이나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어 그녀를 더 가슴 깊이 끌어 안아 품에 가득 담은 채 그렇게 침대로 비스듬히 눕자, 그녀는 어느새 내 위로 올라와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슬픔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야만 볼 수 있는 그녀의 민낯.
가늘게 떨리는 그녀의 몸을 따라 천천히 손을 쓸어내리자 그녀는 이내 부끄러운 듯 내게 안겨들었고 그런 그녀를 아기처럼 품에 안고 나는 또 그렇게 소중히 그녀를 어루만졌다. 내 가슴 위로 전해져 오는 그녀의 뜨거운 입김. 점점 거칠어지는 그녀의 호흡.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함 마음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뒤섞으며 일렁이는대도 나는 그렇게 내 품에 파고든 그녀를 안아, 그녀 안에 나를 가득 채우며 그녀의 빈 마음을 채우려 들었다.
내 안에 가득 찬 그녀에 대한 마음이 이렇게라도 조금이나마 전해지길 바라며.
서우와의 뜨거웠던 하룻밤.
눈을 뜨자, 어느새 잠에서 깬 그녀는 언제나처럼 식탁에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를 해서 올라놓고는 화장대에 앉아 준비 중이었다. 그런 그녀의 뒤에 가 그녀를 포근히 감싸 안고는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었다.
" 흠. 오늘이 주말이면 좋겠네요."
그러자 서우는 이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 식사 식겠어요. 먼저 먹어요. 저도 준비 다돼 가니까 나갈게요."
서우의 볼에 입을 맞추고 식탁에 앉아 그녀가 준비해 놓은 식사를 하고 있으니 그녀가 나와 물을 한잔 마시고는 어느새 맞은편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어제 감동이었요. 제게 큰 힘이 되었어요. "
"훗. 정말 고마웠군요. 감동이라고 하는 것 보니. "
" 이런 걸 감동이라고 하는 거 맞죠?"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게 다가와 내 허벅지 위에 살며시 앉아서는 내 목을 감싸 안은 채 내게 키스를 했다.
그런 그녀를 내가 안아서 다시 내 위에 앉히자, 그녀는 당황하며
" 안 돼요. 출근해야죠. 훗. "
그렇게 말하며 내 두 볼에 입을 맞춘 후
" 늦겠어요. 휘우씨. 어서 가서 준비해야죠. "
그렇게 그녀의 떠밀림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오자,
" 오늘내일 회사에 급한 일이 많아서 집에 못 들어올 수도 있어요. 바쁜 일이 정리되는 대로 전화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