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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 Mar 11. 2023

눈먼 자들의 도시

빨간 신호등이 켜진 교차로.

책은 도로 위의 차 안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녹색 신호등이 들어왔지만 남자는 앞으로 갈 수 없다. 갑자기 눈이 멀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가 된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아무런 징후 없이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캄캄한 어둠의 상태가 아니다. 마치 눈에 형광등을 켠 것처럼 모든 것이 하얗게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름도 없는 이 백색질병은 주변 사람들에게 빠르게 전염된다.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를 도와준 사람들, 남자가 찾아간 안과의 의사와 진료를 받던 이들도 하나둘씩 눈이 멀어간다.


'왜' 이런 질병이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전염되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 정부는 눈먼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둬버리는 것으로 전염을 막으려 하지만 소용없다. 재앙의 소식을 전하던 아나운서가 눈이 멀어버려 갑자기 방송이 멈춰버리는 것처럼 도시의 모든 것은 멈춰지고 아수라장이 된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어버린 가운데 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다. '의사의 아내'만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다. 그녀는 눈먼 자들의 마지막 '희망'이다. 어쩌면 눈먼 자들은 볼 수 있는 단 한 사람에 의지해 살아가면서 언젠가 이 질병이 나아 다시 볼 수 있는 날을 꿈꿨을지 모른다.


'볼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눈먼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내가 다른 사람을 볼 수 없듯이 다른 사람도 날 볼 수 없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으니  행동에 제약이 없어진다. 사람들은 아무 곳에서나 잠을 자고, 배설하며, 성관계를 한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자기 세계에 갇혀버리게 되는 것이다.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에 의지하며 동물적 본능에 이끌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가장 큰 고난은 볼 수 없다는 것에서 파생되는 두려움 아닐까. 

보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 두려움은 굶주림에 대한 것으로, 채 열개도 되지 않는 총알이 담긴 총을 가진 세력에 대한 공포로, 이대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점점 커져간다. 두려움 앞에서 사람들은 점점 무기력해진다.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식량을 받아오는 조건으로 자기 아내가 몸을 내줄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동조하기도 한다.   


‘보이는 것’을 당연한 삶의 기본값으로 살아오다 하루아침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책은 생존을 위한 눈먼 자들의 사투에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와 존엄성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의사의 아내가 보는 것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들 뿐이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배설물과 쓰레기더미, 사람들이 죽어가는 광경, 썩어가는 시체들, 심지어 남편이 외도하는 장면까지 볼 수밖에 없다. 차라리 나도 눈이 멀어버렸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녀는 사람들을 위해 길을 인도하고 먹을 것을 찾아 나선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홀로 볼 수 있는 사실은 괴롭기만 하다. 

어쩌면 작가는 '본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눈먼 사람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 아니었을까.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도 대조적이다. 

'의사'와 '검은색 안경을 쓴 창녀', '검은 안대를 낀 노인'과 '다섯 살짜리 꼬마', 그리고 부부. 

직업과 연령, 성별에 있어서 대조적인 인물들이다. 모두가 눈이 먼 재앙 앞에서는 사회적 지위도 나이 듦과 젊음도 부질없을 뿐이다. 수용소에서부터 함께 지내온 이들은 다시 눈이 보이는 날까지 함께한다. 그 과정에서 검은색 안경을 쓴 여자와 노인은 신뢰와 사랑을 키워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머릿속에 장면들이 그려질 때면 잠시 책을 내려놓고 숨을 골라야 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과연 어떻게 상황을 묘사했을까. 극단으로 치달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택 중 최선은 무엇일까. 무엇이 선이고 악일까? 배고픔과 생명을 유지하는 것, 몸을 보호하고 싶은 욕구 앞에서 어떤 선택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보고, 듣는다. 

그렇지만 과연 잘 듣고 있나? 제대로 보고 있나?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보이는 그대로 보지 않고 때로 의심하고 왜곡하고 있지는 않았나.. 나에게 생각을 던져 본다. 


지난주에 이런저런 핑계로 독서모임을 한 번 빠졌다. 

이번 모임도 나름의 결심을 하고 갔지만 역시 준비는 부족했다. 마지막 날 밤늦게까지 책을 겨우 읽고 가는 이 게으른 습관은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다. 느지막이 읽으면 책의 구절이나 내용에 대한 기억이 싱싱하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문제지만. 모임에 가기 전에 준비를 하고 가면 좋을 텐데, 늘 아쉽기만 하다. 우리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함께 이야기하며 페스트와 죄와 벌에 대한 책 이야기까지.. 꼬리에 꼬리는 무는 대화를 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 책은 '저주토끼'라는 단편 스릴러로 정했다. 모임이 끝나고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을 빌렸다. 어차피 모임 전날까지 책을 붙잡고 있겠지만 그래도 내 수중에 책이 들어와 있어야 마음이 편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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