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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 Mar 24. 2024

다가오는 이별을 준비하는 각자의 방식

 

뚜두두두‘ 엄마에게 페이스 통화가 걸려온다. 생전 영상통화라고는 할 줄 모르는 사람인데. 이게 웬일이람. 통화하기 버튼을 누르자 화면을 가득 메운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엄마는 최근에 외할머니의 간호를 신청해 일주일에 세 번은 할머니를 돌보러 다니고 있다. 그러다 문득 내 생각이 났는지 불쑥 영상통화를 한 것이다. 


“엄마야, 할머니 바꿔 드릴 테니 인사드려라.” 

양 볼이 푹 꺼진 백발의 외할머니 얼굴이 휴대전화 화면에 나타났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의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어느새 90의 나이를 훌쩍 넘긴 할머니는 고관절이 닳아서 거동이 자유롭지 않다. 휠체어에 의지해 이동할 수밖에 없어 방 안에서만 지내신다고 했다.      

할머니와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건강히 지내시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친정에서 차로 20분만 가면 뵐 수 있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발길을 한 지 오래되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은 찾아뵈어야 할 텐데...     

주말에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부여에서 지내는 친구가 있기도 하고 간 김에 친정에도 다녀올 겸 부여에서 만났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그 간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사위가 어두워졌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친정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부모님과 저녁 한 끼는 같이 먹고 가야 될 것 같았다. 집에는 작은 이모가 와 있었다. 서울에 사는 이모는 절에서 하는 불경 공부에 참여하기 위해 내려왔다고 했다. 반가움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이모가 말했다.  

    

“민희야 외할머니 댁에 같이 잠깐 다녀올래?” 

“어? 나 오늘 집에 올라갈 거라서... 늦으면 좀 그런데..”

시계는 7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외할머니 댁에 다녀오려면 오고 가는 시간을 포함해 2시간은 더 걸릴 텐데.. 밤늦게 집에 올라갈 생각을 하니 선뜻 내키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나는 어디로 갔는가. 

      

“가서 딱 10분만 앉아 있다 오자. 할머니 얼굴만 보고 올게.” 

이모가 내게 하는 제안이 내가 지금 친정집에 와 있는 이유와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엄마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거였다. 더군다나 이모는 엄마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게 부탁을 하는 이모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에게 필요한 성인용 기저귀는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고, 마트에 들러서 할머니께 드릴 두유 한 박스를 샀다.  가로등 하나 없는 칠흑 같이 어두운 시골길을 한참 달려 할머니 댁에 도착했다. 외갓집은 어린 시절부터 보아 왔던 모습 그대로였다. 흐른 세월만큼 아니 어쩌면 세월보다 더 낡고 닳아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집, 얼마 되지 않아 폐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울컥해졌다.  

    

90의 연세를 훌쩍 넘은 할머니는 생각보다 정정하셨다. 백발에는 아직 윤기가 남아 있었고, 피부도 고운 편이었다. 연세에 비하면 혈색도 좋았다. 식사는 잘하시냐고 묻자, 너무 잘 먹어서 탈이라며 귀엽게 웃으셨다. 고령의 연세에도 할머니가 건강한 이유가 있다. 몇 해 전부터 큰 이모가 자기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와  할머니를 돌봐주기 때문이다. 식사와 목욕과 거동하는 일까지 할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준 지 오래다. 


할머니의 방에는 커다란 침대와 텔레비전이 있었고, 침대에서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두유과 카스타드 같은 간식들이 놓여있었다. 침대 옆에는 의자로 된 변기가 있었다. 방 문 앞에는 휠체어가 있었다. 물건들의 위치만 봐도 할머니의 이동반경이 그려졌다.  할머니는 침대에 앉아 봉지에 든 부침개를 드시고 계셨다.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막내삼촌이 부침개를 해서 가져왔다고 했다. 고기와 생선류를 일절 먹지 않는 비건생활을 하고 있는 할머니의 입맛에 맞춘 느타리버섯 부침개였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정신도 또렷하셨다. 정정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안심이 되었지만 워낙 연세가 많아 언제가 마지막 만남이 될지 모를 일이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부침개 하나를 집어 내게 건네는 할머니. 입맛이 없어 괜찮다고 사양하자 다시 이모에게 먹어보라고 권하셨다.      

“엄마가 주는 거니 먹어야지”

이모는 할머니가 주는 부침개를 얼른 받아 한 입에 넣고 맛있게 먹었다. 할머니 댁에 가는 차 안에서 내가 커피와 주전부리를 먹자고 했을 때는 속이 좋지 않다며 거절하던 이모였다. 엄마가 건네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기회를 한 번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맛있게 먹는 이모를 보니 갑자기 울컥해졌다.      


“엄마! 노래 한 소절 들려줘요!” 

갑자기 노래를?? 뜬금없이 노래 제안을 하다니. 할머니의 여러 모습을 담아두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갑자기 노래를 부르라는 건 좀 무리가 아닐까 싶었다. 이모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할머니는 담담하게 구슬픈 곡조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버튼을 누르려는 이모를 내가 말렸다. 

    

“이모! 동영상으로 찍어야지.”

우리는 할머니의 노래를 멈추게 하고, 동영상으로 녹화할 준비를 한 뒤 할머니에게 다시 노래를 불러 달라고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냐고 천진난만하게 물어오는 할머니에게 우리는 뻔뻔하게도 그렇다고 답했다. 녹화되고 있는 영상 속의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노래를 듣는다. 들으면 들을수록 자꾸만 슬퍼진다. 살아생전에 하나의 추억이라도 더 담아두려고 애쓰는 딸과 그걸 알면서도 시키는 대로 담담하게 노래를 불러주는 엄마의 모습...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별을 준비하는 모습이 슬프고 또 슬펐다. 

    

그렇게 할머니와의 시간을 보내고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마당 바로 앞에 주차해 둔 차를 타려는데 도로 건너편에서 어둠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대형 간판이 보였다. 

'가림요양원' 

 할머니댁에서 출발해 어른 보폭으로 20보 정도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지척에 요양보호시설이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차 문을 열고 간판을 잠시 응시하다 생각에 잠겼다. 할머니가 언제 돌아가신다고 해도 이모들은 할머니에 대한 후회가 없을 것 같다. 훗날 마주할 나와 엄마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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