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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 Sep 03. 2023

엄마의 눈물

우리 엄마는 눈물이 참 많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자랐다. 불 같은 성격인 엄마는 화가 나면 버럭 소리를 질렀다가도 이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유독 엄격하고 대쪽 같은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나 외할아버지가 호통을 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무서워 제대로 반항 한번 해보지 못했다는 엄마는 어느새 외할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외할아버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는 화를 짧게 내고 이내 눈물모드로 전환한다는 것. 


아빠와 다툰 날이면 엄마는 항상 눈물바람을 했다. 행여나 자식들이 볼까 봐 그 모습을 감추려 했지만 눈치가 빨랐던 나는 엄마의 목소리와 그날의 분위기만 봐도 금방 알아챘다. 아빠는 화가 나서 씩씩 거리는데, 엄마는 울고 있다니. 

엄마가 싸움에서 진 거다. 어릴 때는 말다툼을 하다가 먼저 눈물을 터트리는 사람이 싸움에서 지는 거리고 생각했다. 엄마는 매번 아빠와의 싸움에서 왜 패하는 걸까. 측은한 마음에 늘 엄마 편에 서서 같이 아빠를 미워했던 적이 많았다.  


한 번은 엄마가 가족일이 아닌 다른 일로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가 동네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주로 자신의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급하게 전화를 끊어버리는 통화패턴을 갖고 있는 엄마가 수화기를 오래 붙들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엄마는 친구에게 서운했던 속내를 털어놓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는 변명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듯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내가 온 것도 모르고 한숨을 쉬면서 말이다. 누가 또 엄마를 울린 것인가. 나는 엄마에게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고, 엄마는 몇 번 말하기를 거부하다 결국은 내게 털어놓았다. 


시골에서 품앗이를 같이 다니는 아주머니가 자신을 은근히 따돌린다는 것이다. 엄마는 친구도 없다,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친구가 필요하냐며 스스로 외로움을 장착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었는데 친구 때문에 상처를 받다니. 남편이나 자식이 아닌 친구문제로 속상해하는 엄마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내가 엄마의 친구문제로 엄마와 고민과 슬픔을 공유할 줄이야. 


흔한 계모임 하나 갖지 않고 친구라고는 초등학교 동창들 밖에 모르던 엄마가, 일 밖에 몰랐던 엄마가 그제야 다른 엄마들처럼 평범해진 것 같았다. 

"그 아주머니랑 어울리지 마!"

나는 발끈하며 엄마 역성을 들어주었다. 다소 일차원적인 대응이었지만, 위로의 타이밍이 적절했기 때문에 엄마의 슬픔이 누그러졌을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엄마의 눈물을 마주하지 못했다. 아니면 내가 엄마의 슬픔에 동요되는 것이 싫어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며칠 전 엄마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지는 것을 보았다. 


지난 주말, 여동생의 결혼식에서였다. 엄마는 내 결혼식에서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신부 대기실에 들어오지 못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을 한 딸을 보면 눈물샘이 터져버릴 것 같아 일부러 피하는 게 분명했다. 대기실 문 밖에 서서 신부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발길을 돌렸다.

나는 엄마를 뒤따라가 엄마가 여기서 더 깊은 감정에 빠지지 않게 도와야 했다. 

"엄마! 무려 네 번째 결혼식을 치르는 건데 아직도 눈물이 나와?"

(우리 집은 육 남매이고, 엄마는 총 네 번의 예식을 치렀고, 딸 결혼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도 말이다.)

"빨리 시집보내고 싶어 안달하더니 왜 울어? 이제 결혼식은 축제야 엄마. 촌스럽게 울고 그러지 마. 바라던 대로 딸 결혼하고 얼마나 좋아~" 

"그래.. 나 안 울어" 

"엄마 결혼을 딸 시집 '보낸다'라고 생각하고 서운해하지 말아요. 지들 둘이 좋아서 딱 가운데 지점에서 만나는 거야. 누구 한 명이 가거나 보내는 거 아니고, 그냥 새 가정을 꾸리는 거라고."

딸을 결혼시킨 경험이 없는 내가 엄마를 어떻게 이해하겠나. 그저 엄마가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에 차가운 얼음 몇 조각 던져 이성을 되찾길 바라는 수밖에. 


나는 엄마의 삶에서 한 여성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흘리는 다양한 눈물을 목격했다.  이제는 나도 성장해 엄마의 눈물과 슬픔에 동요되지 않고 지켜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의 눈물은 때론 나를 슬프게도,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엄마의 삶을 더 이해할 수 있게도 해주었다. 


그런데 묻지 못한 것이 있다. 아들의 결혼식에서는 아무렇지 않던 엄마가 딸의 결혼식에서는 왜 눈물을 보이는 걸까? 결혼하면 딸은 출가외인이 된다는 서운함때문에? 아니면 결혼과 동시에 시작되는 여자의 다양한 고난? 이 예상되어서일까. 엄마에게 질문해야겠다. 그래야 다음에 있을 마지막으로 남은 여동생의 결혼식 때 엄마의 눈물을 말리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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