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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열 Jan 13. 2023

이혼 할 때 만나게 되는 사람들_13

둘째 딸 1 (2038년)


[둘째 딸 1 (2038년)]




분명히 부산에서 출발할 때 까지만 해도 2022년이었는데,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시간이 훌쩍 20년이 지났다. 

그때 탔던 기차가 타임머신이었을까? 납득이 되질 않는다.

수정이는 나이가 들었는데 나는 여전히 30대의 모습인 것도 이상하다.

혹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면 2022년으로 회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다시 현실로 돌아가자. 


수정이와 편맥을 하고 나는 볼 일이 있다면서 헤어졌다.

바로 서울역으로 향했다.

부산행 기차표를 끊으려는 순간 카톡이 울린다.

둘째 딸 호정이다.


“아빠, 나 합격했어!!! 그 유명하다는 HS 베이커리~~

당장 내일부터 출근이야, 꺄아악~~~”


카톡 날짜를 보니 2038년 12월 ...


아...뭐지...조금전 까지 2042년이었는데 갑자기 4년전으로 시간이 급 변경되었다.

서울역 이곳이 수상해졌다. 

여기만 오면 자꾸 시간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 같다.


“아빠가 첫 출근은 꼭 같이 가준다고 한거 알지?

늦으면 안돼~~ 적어도 집에서 새벽 5시는 출발해야 돼”


시간을 보니 몇 시간 안 남았다.

그런데 솔직히 집이 예전 살던 그곳인지도 알 수가 없다.

조금전 수정이와 만난 곳은 신대방동이었는데...여전히 그 동네에 살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내가 데려다 준다는 것은 차를 운전해서 간다는 말 같은데...

지금 나에겐 차도 없고...

이를 어쩐다. 고민 끝에 호정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역시 우리 호정이 최고야~~

아빠가 지금 일이 안 끝났는데, 신대방동까지 시간 맞춰서 5시까지 갈게.

혹시 니 방에 아빠 차키 있는지 좀 봐 줄래?”


“있어...그럼 내가 차키 챙겨서 나갈게. 주차장에서 만나 그럼”


다행이다. 

집은 신대방동이 맞는 거 같고, 차도 집에 있었다. 





주차장 현관에서 홀쩍 커버린 호정이가 나오며 손을 흔든다.

역시나 다 큰 어른이 되어 버렸다.


“아빠~~”


“축하해, 첫 출근. 자 받아 축하 꽃다발!!”


“역시 우리 김민석씨 센스는 알아줘야돼, 크크크

땡큐!!!”


“그나저나 차가 어디 있더라...호정아 너도 찾아봐봐”


“뭐래? 바로 저 앞에 있구만...농담 할 시간 없어...빨리 갑시당!!”



다행히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런데 예전 내가 타던 차가 아니다.

그것도 내가 그토록 타고 싶어 했던 제규어다.

와우!!!

드디어 나도 드림카를 이렇게 타 보는구나. 떨린다.

차키를 받아서 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다.

'부릉~' 엔진소리까지 부드럽다. 

기분이 갑자기 확 좋아졌다.


“근데 호정아 이거 아빠 차 맞지?”


“아빠~~~새벽부터 왜 그래? 나 첫 출근이야...늦으면 안 된다구..

쓸데없는 농담 하는거보니, 아빠 잠 부족이야...맨날 그렇게 일만 하지 말고 잠 좀 자가면서 해.

그러다가 나중에 병나...부인도 없는 홀아비가 서럽게 아프기까지 해봐...으이그”


“농담은 무슨...그냥 우리 호정이가 정말 첫 출근한다는게 믿기지가 않아서, 이게 꿈인가 해서 물어본거야..헤헤”


차는 부드럽게 도로를 질주하면서 나아갔다.

음악도 들으면서 나는 나대로 호정이는 호정이대로 각자의 기분 좋음을 즐겼다.


“아빠, 나 정말 대단하지 않아?”


“대단하지”


“너무 성의 없게 말하지 말고...적어도 답을 할때에는 2줄 이상으로 내가 말하랬잖아.

다시 얘기 해봐. 뭐가 대단한지?”


“일단 호정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고, 그리고 어린 나이에 벌써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도 대단하고, 그리고 음.....”


“그리고 또 뭐?”


“아빠 이혼 때문에 엄마 없이 잘 자라줘서 너무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아빠한테는 그게 제일 대단해 보이는데...이런 말 하면 싫지?”


“싫긴 뭐...그렇다고 좋지도 않아...그리고 아빠가 미안해 할 필요도 없어.

난 솔직히 아빠가 이혼 잘 했다고 생각하거든. 이혼 안 했으면 아마도 나 이렇게 파티쉐 되는 거 쉽지 않았을거야...아니 못 했을수도 있지.”


“왜?”


“왜 라니...엄마가 있었어봐...대학교 안 가고 제빵기술 배운다고 허락했겠어?

네버 네버, 꿈도 못 꿨을거야....내 친구들도 나처럼 대학교 안 가고 기술 배운다고 했다가 집에서 엄청 혼나고 쫓겨날 뻔한 애들이 많거든...다들 공부하기 싫으니까 그런거라고 어른들은 생각하니까”


“암만 그래도 자식이 원하면 부모는 대부분 허락하지 않나?”


“그건 우리집만 그런 것 같아. 내 친구들 부모는 절대 이해 안 해준데...대학도 안나와서 뭐하고 먹고 살거냐고, 그리고 요즘 세상은 대학 안 나오면 인간 취급도 못 받는다고 ?”


“아빤 반댄데...세상이 바뀌었는데...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중요한데...”


“그러니까...나는 아빠 같은 아빠가 있으니까 더 솔직히 말하면 나의 앞길을 반대하는 그런 엄마가 없으니까 어쩌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 일을 할 수 있게 된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아빠가 이혼한거에 대해서 미안해 할 필요없어”


“그래, 고맙다. 그렇게까지 호정이가 생각하는줄은 몰랐네.”


점차 날이 밝아지고 있다.

앞에 HS 베이커리 간판이 보인다.


“다 왔다. 아빠 나 떨려~”


“떨게 뭐 있어. 자신감있게 말하고 행동하고 그리고 선배들한테 예의바르게...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해. 우리 호정이는 어디 가서든 이쁨 받으니까 잘 할거야”


“알았어...오늘 첫 출근 함께 해 줘서 고마워.

끝나고 연락할게~~축하파티 준비해놔~~”


차에서 내려 뛰어가는 호정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살짝 울컥해진다.

갓난 아기였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자기 일을 하는 어른으로 커 버렸다니...

한참을 차 안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를 위해서 이혼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었다.

그런데 호정이는 오히려 그 반대의 이야기를 했다.

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존재하는걸까? 

부모를 위해서 아이가 존재하는걸까?

그동안 자식을 위해서 고생하고 일하면서 버티어 왔는데...

아내의 외도 때문에 어린 자식들의 아픔을 방관한채 이혼을 하는 게 맞는 것일까?

나는 지금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이미 내가 살아보지도 않은 미래는 이혼을 한게 현실로 보이는데...

그리고 나 보다 더 두 어린 딸들은 더 성숙하고 강해보이는데...

내가 괜한 고민을 하고 있는걸까?

교통사고....

나도 어쩔 수 없이 당한 교통사고다

내가 좀더 조심했어야 했나라고 나를 자책해도,가해자를 욕한다고 사고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몸이 아픈 곳은 빨리 치료를 하고 망가진 차는 다시 수리를 하고 수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내 삶을 살아야 한다.

남들에게 이혼은 결국 남의 일일 뿐이다. 자기 일이 아니다.

위로하고 같이 욕하고 안타까워 해 줄 수는 있는 것 밖에 없다.

누가 누구에게 이혼의 도움을 받을 것이며, 또한 도움을 줄 것인가?

나는 참 이기적으로 살아왔다.

내가 좋은 것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왔다.

조금이라도 하기 싫거나, 폼이 안나거나, 없어 보이는 것들은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었다. 

그러고보니 나에게 이혼이란,

나에게 낙인 같은거라 생각이 든다.

결혼에 실패한 남자, 마누라 간수도 잘 못하는 무능력한 남자, 자식 앞날 걱정 1도 안하는 못난 아빠 같은...

이런 낙인이 찍히는게 싫어서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나 혼자만 받게 되는 이런 오명 따위 때문에?

아...정말 나란 인간...

너무 실망스럽다. 

쓰레기 같다.



<14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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