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톰(제시 아이젠버그)과 젬마(이모겐 푸츠) 커플은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인을 찾는다. 괴짜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중개인 마틴(조너선 아리스)은 그들에게 교외에 있는 ‘욘더(저 쪽)’라는 낯선 마을을 소개한다. 두 사람은 마틴을 따라 똑같은 모양의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욘더로 향하고, 그곳에서 거실, 부엌, 침실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9호 집’을 구경한다. 그러던 중 마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찜찜해진 톰과 젬마는 차를 타고 돌아가려고 하지만 아무리 돌고 돌아도 그들이 다다르는 곳은 9호 집 앞이다. 어떤 방법으로도 욘더를 빠져나갈 수 없음을 깨달은 두 사람 앞에 상자가 하나 배달된다. “아이를 기르면 풀려난다”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는 상자 속엔 남자 아기가 들어 있다. 두려움과 좌절감에 휩싸인 두 사람은 아기와 함께 9호 집에서 살기 시작한다.
비바리움(Vivarium)은 관찰이나 연구 목적으로 동식물을 가두어 사육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뻐꾸기가 탁란(托卵) 하는 오프닝은 의미심장하다. 기생조가 다른 새의 둥지에 자기 알을 낳아 키우게 하는 일을 말한다. 당하는 새 입장에서 자신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원수의 새끼를 양육하는 것이다. 즉, 주인공 커플이 탁란 실험에 동원된 것이다.
1. 공간의 분위기로 기괴함을 극대화한 영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바리움>은 50년대를 배경으로 한 SF 장르 즉, 디젤 펑크다. 왜 50년인가? 미국에서 50년대는 우리나라로 치면 IMF 이전의 사회 분위기가 비슷하다. 쉽게 말해 전 국민이 중산층을 꿈꾸던 시절이다. 이것은 후술할 영화 주제와 밀접하다.
<비바리움>은 공간으로 공포를 자아낸다. 건축은 공학적 기술이 중요하지만 설계는 인문학적 상상력에 달려있다. 인간이 사는 집이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난센스가 아니겠는가? 욘더 마을 단지를 살펴보라! 딱 '포드주의'가 눈에 띄지 않은가? 동일 규격의 주택들이 대량으로 단독주택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포드주의가 의미하는 단일 제품의 대량생산방식은 관객에게 기괴하게 다가온다.
2. 테일러주의가 안겨주는 무기력함!
극중 톰과 젬마는 양육을 업무로 여긴다. 애당초 혈연관계가 아니고, 자신이 원해서 입양한 것도 아니다. 상자 옆면에는 적혀있는 "아이를 기르면 석방해 준다"라는 지침에 따랐을 뿐이다. 이런 포드주의적인 인력 관리를 흔히 ‘테일러주의(과학적 관리주의)’라 부른다. 용어만 어려울 뿐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노동자가 단순한 업무를 반복하면 노동자의 삶은 기계부품처럼 취급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말이다.
주인공 커플이 억지로 양육을 떠맡기게 되면서 점점 아이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진다. 거듭 말하지만 극중 양육은 업무이고, 식량과 생필품은 그 노동의 대가 즉 '임금'이다. 이것이 톰과 젬마가 아이에게 부모가 아니라고 계속 부정하는 이유다. 자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인간이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인간이 행복해질 수 없음을 눈치챌 수 있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론을 떠올려봐라!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상위 욕구를 추구하기 원한다.
이딴 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톰은 이 지긋지긋한 반복 노동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톰은 아이를 죽이고 이 육아 업무에서 해방되고 싶어 한다. 젬마는 인도적인 이유를 들어 이를 막는다. 여기서도 젬마는 아이에게 '엄마'가 아니라고 부정하므로 모성애가 동기가 아니라고 명시한다.
어쨌든 톰이 아이에게 던진 담배꽁초가 땅에 떨어지자 잔디가 사라지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다. 톰은 탈출을 희망하며 땅을 열심히 판다. 지하에서 소리가 들리자 더욱 매진한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가 원해서 자발적으로 일하는 노동이다. 이렇게 되면서 양육의 부담은 점점 젬마에게 지워진다. 그녀의 직업은 유치원 교사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부정한다. 나중에 아이가 다 성장하고 나서 젬마에게 '엄마는 자식이 세상에 나가게 준비시켜 주는 사람'이라고 콕 짚어 주지만 젬마는 끝까지 엄마가 되기를 거부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양육 의무를 회피하는 것을 말하는 걸까? 그것을 다음 장에서 논의해보자!
3. 과연 현대인의 인생주기는 행복한가?
홍보문구에 “어떤 방향으로 향해도 집 앞에 다다르는 이곳에서 우리의 선택은 없다, 오직 살아갈 뿐! “가장 완벽한 안식처가 되어줄 거예요, 영원히”라고 적혀있다. 도대체 이건 무슨 소리일까?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이 영화는 단순히 '가정을 이뤘을 때의 공포' 뿐 아니라 '현대인의 인생주기' 전체를 염세적으로 그렸다. 톰과 젬마는 결혼은 안 했지만, 파트너로서 같이 살 집을 구하려고 한다. 여기서 주인공을 왜 그렇게 그렸을까가 궁금하다.
오늘날 청년세대는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기보다는 자신의 행복에 더 중시한다. 그런데 이게 청년세대가 기성세대보다 더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불안정한 일자리와 높은 실업률에 남성은 결혼비용을 모으기도 빠듯하다. 여성의 사회진출로 취업 경쟁은 점차 심화되고, 결혼할 여유를 갖추는 젊은 남성들이 결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낮아진다. 이것이 여성의 결혼연령을 높인다. 생애 가임 기간이 존재하는 여성에게 이것은 결혼시장에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지금 청년세대라면 누구나 체감하고 있을 테니 여기서 줄이고 영화로 되돌아가 보자!
아이가 가져오는 책이나 아이가 보는 TV 영상은 불가해하다. 톰과 젬마 vs 아이의 인간관계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 존재하지 않는다.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관계일 뿐이다. 당연히 세대 차이로 읽을 수 있겠지만, 현대인이 타인에게 무관심한 세태에 대한 야유처럼도 들린다.
더 나아가서 ‘마틴’이라는 명찰을 이어받는 대목은 불행하게도 우리가 부모 세대보다 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까지 드러낸다. 아이는 톰과 젬마를 똑같이 흉내 낸다. 흙수저로 태어났다면 흙수저로 늙어 죽을 것이라는 꿈도 희망도 없는 염세적인 세계관이다. 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힌트가 있다. 톰의 자발적인 노동이 결국 어떤 결말을 맞았는가? 그게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다.
결론적으로 <비바리움>은 더 이상 50년대같이 누구나 중산층을 꿈꿀 수 없다고 단언한다. 감독의 견해에 따르면 결혼은 감옥이고, 양육은 사기이며, 자가 주택 소유는 함정이라고 주장한다. 보는 사람마다 영화를 주택 소유에 관한 스트레스이건 육아 지옥을 그린 것이든, 이게 서브 프라임 위기를 상징한 것이든 우리나라의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전세 가격에 대입하든 <비바라움>의 공포는 이처럼 지극히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