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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Nov 30. 2019

아이리시맨 영화해석

'시네마란 무엇인가?'

스콜세지는 할리우드 갱스터·누아르 장르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그는 왜 노년의 배우들과 CG의 힘을 빌려 가면서까지 <아이리시 맨>을 만들어야 했을까? 그 해답의 실마리는 의외로 쉽게 풀린다. <아이리시 맨>은 갱스터 장르에다 ‘노화’라는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스콜세지가 항상 던지는 3가지 테마가 ‘이민자 정서, 강박증, 범죄자의 구원’이라는 것만 염두에 두시고 읽어주길 바란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영화의 시작,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요양원 복도를 트래킹 숏이 훑고 지나간다. 사람들을 천천히 지나고 복도를 돌고 마침내 한 노인을 정면에서 잡는다. 보이스 오버(Voice-Over)가 등장한다. 주인공이 곧 화자로서 전지적으로 영화를 설명해가는 구조다.


젊은 프랭크가 마피아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시절부터 필라델피아로 향하는 도로 위까지 지나온 시간을 재현하여 관객들 안내한다. 마피아의 히트맨으로 살아온 프랭크의 60년을 내레이션과 플래시백을 활용해 재구성한 것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늙은 프랭크가 긴 시간의 축적 끝에 도달한 결론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영화는 크게 3가지 시간대를 교차시킨다. 첫 번째, 노인 프랭크가 요양원에서 회상하는 노년 시절, 두 번째,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프랭크의 젊은 시절, 세 번째, 러셀의 손녀 결혼식을 가기 위한 4일간의 필라델피아 여행길이다. 스콜세지는 여기서 기술 들어간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시점은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가 다르다. 전자는 빠르고, 후자는 느리다. 지난 30년간을 단편적으로 요약한데 반해 불과 ‘나흘’뿐인 여행을 사색적이고 관조적으로 길게 늘였다


이것은 노년의 프랭크가 기억하는 속도다. ‘노화’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해지는 시점이다. 바로 구원과 속죄다. 가톨릭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라는 교리를 만든다. 은총 상태를 보존하고 죽었지만 소죄와 잠벌이 남아 있는 영혼이 잠시 머무는 저승이다. 마피아들은 모국 이탈리아처럼 가톨릭을 믿었고,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성당에서 고해하면 연옥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노년의 러셀(조 페시)이 성당에 가는 장면에서 곧바로 죽었다는 내레이션이 나오는 의문이 여기서 풀린다.


스콜세지는 <아이리시 맨>을 갱스터 장르가 갖고 있는 ‘범죄 미화’에서 완벽히 분리시킨다. 그래서 <아이리시 맨>에 등장하는 수많은 갱스터들을 ‘프리즈 프레임(Freeze Frame)’으로 정지시킨다. 내레이션은 계속 나오면서 자막에는 사망원인과 사망연도가 무미건조하게 뜬다. 그리고 <아이리시 맨>은 고령의 배우들을 고려했겠지만, 짧고 스쳐 지나간다. 장르적 쾌감 그 자체를 아예 말살시켰다.



1. 강한 신념을 지닌 화자


주인공 프랭크는 충성스러운 사내다. 전쟁터에서 포로 사살 명령조 차도 일말의 고민 없이 실행한다. 러셀(조 페시)은 이 우직한 남자를 수하로 거둔다. 그리고 노조위원장 지미 호파(알 파치노)에게 소개하고 전화기를 바꿔준다. 지미가 프랭크에게 한 첫마디는 "자네가 페인트칠을 한다고 들었네!"이다. 페인트칠은 살인청부하면서 생긴 피 칠갑 자국을 뜻한다. 프랭크는 러셀의 부하이면서 호파의 해결사라는 중간자적 위치에 놓인다.


스콜세지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어떤 강박증에 시달린다. <아이리시 맨>의 프랭크에겐 ‘명령’이라는 이름의 강박에 덧씌운다. 그는 두 명의 보스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가 강가에 버리는 총기를 세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충성심이 과연 도덕적으로 옳은가를 감독은 묻는다. 어떤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서 말이다. 이쯤 해서 그간 스콜세지의 필모그래피에서 볼 수 없는 진풍경이 여기서 하나 등장한다. 프랭키가 딸 페기(안나 패퀸)를 때린 슈퍼마켓 주인을 흠씬 패주는 장면이다. 이 일 이후로 페기는 마피아(아버지와 러셀)을 무서워하나 민간인 지미 호파를 잘 따른다. 이렇게 ‘자식 세대’를 끌어와 ‘노화’라는 테마를 더 깊이 있게 그린다.


영화에서 프랭크는 러셀보다 지미 호파와 붙어있는 시간이 더 길게 나온다. 즉 프랭크가 기억하기로는 지미에게 좀 더 호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미 호파가 프랭크와 같은 호텔방에 머물 때 침실 문을 닫지 않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이는 후에 중요한 복선이기도 하다.



2. 이민자 정서를 다뤄보자!


JFK는 최초의 아일랜드계 대통령인 동시에 가톨릭교도 대통령이다. 아일랜드계인 프랭크와 이탈리아계인 러셀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가 밝혀진다.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계 미국인 그리고 유태계 미국인은 주류 미국인 즉 게르만계 백인들에게 ‘하얀 흑인’이라 불리는 2류 백인 다. 백인 혈통 사이에도 서열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들이 갱이 된 이유도 유리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피아에게 JFK는 자신과 같은 ‘2류 백인’의 승리처럼 비친다. 그러나 JFK에 대해 착각한 것이 있는데, 그는 뼈 속까지 국가주의자다. 1961년 취임 연설 "조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지 물어라."에서 알 수 있지 않은가? 동생 RFK가 법무장관 시절에 마피아와 노동조합 등을 강하게 탄압한 이유도 이런 성향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미 호파는 케네디 정권과 각을 세우다가 표적수사를 받다가 구속되고 노조에서는 이인자가 권력을 차지한다. 지미는 출소 후 노조위원장 자리를 되찾기 위해 판을 벌이지만, 마피아는 이미 다루기 쉬운 이인자와 한편이 된 후다.



3. 킬러도 구원이 되나요?


문제의 수여식 장면에서 프랭크는 마피아에게 반지를 받고, 지미 호파에게서 공로상을 받는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 인생의 정점이자 몰락의 시발점이다. 프랭크는 사이가 틀어진 조직과 지미 사이를 어떻게든 중재하려고 하지만, 갈등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다. 이렇게 두 번째 시간대, 중장년이 회상 장면이 끝나면서 영화는 갱스터 장르의 상승기를 끝마친다. 스콜세지는 하강기인 세 번째 시간대 ‘자동차 여행 장면’은 영화사 전체를 뒤져봐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이다. 이동진 평론가가 ‘21세기 가장 뛰어난 스콜세지 영화’라고 극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직은 프랭크에게 지미를 제거할 것을 명령하고 프랭크는 러셀과 지미 사이에서 갈등한다. 충성스러운 주인공이 고뇌하지만, 그는 결국 강한 쪽에 붙는다. 우리는 실화를 통해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지미 호파는 실종되었고, 이에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병이나 사고, 노환으로 죽는 과정을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보통의 갱스터 영화라면 파국을 그리면서 비장미를 조성하고 허무와 비애감을 전달한 터인데 뇌졸중에 걸린 러셀이 빵을 포도주스에 제대로 찍어 먹지도 못하는 장면 이외에 나머지 마피아들은 짧게 요약하며 어떠한 헌사도 하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갱스터 장르는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루트로는 성공하지 못해서 범죄자들을 통해서 사회를 비판하는 양식이다. 상업적 고려로 인해 폭력을 과장하지만, 범죄자의 최후를 비극적으로 처리하는 선에서 타협해왔다. 그런데 스콜세지는 오히려 갱스터 장르가 다루지 않는 그 이후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무려 약 한 시간가량 혼자 남은 프랭크의 노년 시절을 다룬다.


잠깐 여기서 <아이리시 맨>은 프랭크의 입을 빌려 그 기억들을 재구성했다는 점을 잊지 말자! 그의 기억에서 유일하게 갈등했던 그 순간은 유난히 길며 관조적이고 사색적이다. 그리고 결혼식은 슬로 모션으로 더 느리게 진행된다. 관객들은 여기서 무엇을 느껴야 할까? 이어서 딸 페기가 지미 호파가 사라진 이후로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는다. 그 어떤 대사보다도 강렬한 안나 파킨의 원망 가득한 표정이 아버지 세대의 폭력을 단죄한다.



4. 갱스터 장르 저 너머에!


어떤 이들에겐 쓸데없는 장면이 많다고 불평할지 모르겠다. 프랭크가 마지막 지령을 받고 갈 때 디트로이트 식당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지미 호파를 언뜻 비춘다. 거기다 지미의 양아들 처키 오브라이언(제시 플레먼스)일행과 지미 호파를 데리러 가면서 그 식당에 또 들린다. 우리가 갱스터 영화에 기대하는 장르적 쾌감은 없고, 이런 번거롭고 불편한 시퀀스가 쌓여있다. 잘 생각해보면 프랭크의 업보는 시간이 쌓이고 쌓여 만든 퇴적층이다. 또, 우리의 삶 역시 이런 지루한 일상이 축적된 결과다.


프랭크가 딸에게 자신이 해온 범죄는 가족을 위한 일이라 변명할 때 딸은 울먹거리며 우리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버진 모른다고 단언한다. 또, 자동차 여행을 할 때 프랭키의 부인과 러셀의 부인은 담배만 피운다. 대체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프랭크가 바람피우는 장면,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일상은 생략되고, 어떤 살인은 잔혹함을 끝까지 보여주고, 어떤 살인은 건조하게 자막만 띄운다. ‘기억의 힘’을 빌려 어떤 부분은 반복하고, 어떤 부분은 빈칸으로 둔다. 거의 대부분 실화에 따랐지만, 프랭크 시런도 지미 호파를 죽였다고 고백한 14명 중 한 명일 뿐이다. 스콜세지는 프랭크의 불완전한 기억을 이런 방식으로 영화화했다.


비록 부당한 방법이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열심히 살아왔는데 부인은 일찍 죽고, 딸들에게 버림받고, 혼자서 장례절차를 준비한다. 이것이 그가 평생 지켜온 ‘명령’의 결과다. 어떠한 수식어도 허용치 않는 스콜세지는 갱스터 장르가 갖고 있던 ‘범죄 미화’를 말끔히 벗겨버리고 알몸 그대로를 전시한다. 이것이 스콜세지가 갱스터 장르에 내리는 형벌이다.



마지막까지 프랭크는 신부에게 죄를 고해하지도 않는다. 그는 조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사내인 것이다. 구원을 거부한 의리남은 신부에게 작은 부탁을 한다. 지미가 조그마한 문틈을 열어둠으로써 프랭크를 신뢰하고 있음을 내비쳤듯이 스콜세지는 관객들을 믿고있다. 그래서 되묻는다. 무려 209분 동안 ‘어떻게 늙고 싶은 신가요?’라고 물어본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예술 양식이다. <아이리시 맨>은 의도적으로 불필요한 장면들과 지루한 구성들을 모아서 불완전한 한 인간의 기억을 복원하고, 어떤 인간적인 감정을 전달해준다. 70세를 훌쩍 넘긴 스콜세지, 드니로, 페시, 파치노, 케이틀 등 노장들은 그 유언장을 낭독하기 위해 뭉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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