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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Oct 14. 2022

우연과 상상^하마구치식 치정극

《偶然と想像·2021》후기 해석 정보 줄거리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단편영화 작업은 (장편과 장편 사이에서) 창작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것”이라며 에릭 로메로의 <파리의 랑데부(1994)> 같은 옴니버스 영화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영문 제목인 《Wheel Of Fortune And Fantasy》이 의미하는 바대로 영화는 톱니바퀴처럼 우연과 상상이 맞물려 돌아간다. 3개의 단편영화는 굉장히 느슨한 형태로 묶여져있지만, 우연히 가져다주는 상황에 상상으로 대처하는 이야기 구조로 짜이어져 있다. 2019년에 2부를 시작으로 1부를 촬영했다. 그러고는 <드라이브 마이 카> 제작기간 중에 코로나가 창궐해서 3부를 먼저 찍었다. 다시 장편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남은 분량을 찍고 완성했다. 이렇게 두 작품은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거의 동시에 제작한 것이라 비슷한 측면이 많다. 특히 1부에서 차량에서의 대화 장면은 <드라이브 마이 카>과 매우 유사하다.



1부 병렬식 삼각관계

첫 번째 에피소드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魔法(よりもっと不確か)>에서 메이코(후루카와 고토네)는 친구 츠구미(현리)가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힌 남자가, 2년 전 헤어진 전 남자친구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였다는 걸 알게 된 여자의 이야기다. 그녀는 친구와의 우정을 버리고, 옛사랑을 회복할 수 있을까를 일종의 다중우주(멀티버스)처럼 영화는 그리고 있다. 주인공이 만약 우정을 선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아니면 만약 전 애인과 재결합을 택한다면 두 가지 경우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형식이다. 문학에서 글의 중심 내용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전개해나가는 병렬식 구성을 영화화한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주인공 스스로가 썸을 타는 그 순간을 ‘마법’이라고 정의 내린다면, 옛사랑에 대한 미련을 그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이라고 단정 짓고 우열을 나눈다는 점이다. 충동적인 메이코와 신중한 츠구미, 그리고 여전히 메이코를 잊지 못하는 카즈아키 간의 삼각관계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2부 액자식 미인계

두 번째 에피소드 <문은 열어둔 채로 (扉は開けたままで)>에서 대학교수 세가와(시부카와 기요히코)에게 낙제당한 남학생 사사키(카이 쇼마)가 복수하기 위해 애인인 나오(모리 가쓰키)를 교수실로 불러들이게 된다. 미인계에 가담한 나오는 50대에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교수실에 방문하여 그의 소설 일부를 낭독한다.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러나 제목에서 예견할 수 있듯 ‘(교수실의) 문을 열어두어’기에 사건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모든 것이 안온하게 마무리되었다고 느낀 순간, 다시금 우연히 끼어든다. 5년 뒤 버스에서 나오는 우연히 사사키와 만난다. 결혼을 앞둔 사사키에게 나오는 입 맞추고 연락처를 건네준다. 그녀가 내린 뒤에 사사키가 탄 버스는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미래가 밝지 못할 것이라는 암시하며 끝난다.


2장은 외부 이야기가 내부 이야기를 감싸는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이러한 구성이 눈에 띄지 않는 까닭은 사사키의 미인계에 가담했다가 이혼 당한 나오가 복수를 하는 후일담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 바깥으로 빼어버림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하도록 이끄는 의도이다.


2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나오가 세가와 교수에게 왜 에로틱하게 썼는지 묻자 교수는 구성상의 이유를 들며 독자가 흥미를 갖고 끝까지 읽을 것이라고 답변한다. 마치 하마구치 감독이 왜 이런 자극적인 에피소드를 중간에 넣은 이유를 그 대사를 통해 설명하는 것 같았다.



3부 삽화식 역할놀이

세 번째 에피소드 <다시 한번(もう一度)>는 컴퓨터 바이러스로 인해 인터넷이 불능이 된 SF 적인 설정으로 시작한다. ‘센다이시’라는 공간적 배경과 맞물려 다수의 실종자 발생으로 인해 가족·친구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를 내포한다.


레즈비언인 모카 나츠코(우라베 후사코)이 한때 짝사랑했던 옛 동창 미카(카와이 아오바)과 20년 만에 만나 추억을 회상한다. 친구의 집에서 차를 얻어마시게 된 나츠코는 오랜 시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던 나츠코는 상대가 여고 동창이 아닌 일면식도 없는 ‘코바야시 아야’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아야 역시 나츠코를 과거 동경하던 동급생 노조미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연한 ‘착오‘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 두 사람은 학창 시절이 가져다주는 동질감 아래에서 오랜 기간 응어리진 감정을 풀 수 있는 역할놀이를 하게 된다. 상대를 서로 착각한 그 첫사랑 동급생으로 여기며, 차마 그때는 고백하지 못했던 오래도록 간직해온 속마음, 그 사연을 털어놓게 된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두려운 속내를 어쩌면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이라서 가능한 고백을 20년 만에 하게 된다. 이 역할놀이는 배우가 시나리오를 읽고 연기를 하는 방식을 닮았다.


삽화식 구성이란, 중심 사건을 보충하는 보조적인 사건들을 삽화처럼 짧게 들어가 있는 것을 말한다. 착오의 모티브를 끌고 와서 나츠코와 아야는 여고 동창 미카와 노조미와의 연심(聯心)을 고백한다. 우연히 ‘에스컬레이터에서 친구로 착각’한 중심 사건 바탕 위에 ‘20년 전 학창 시절에 실행하지 못했던 고백‘이라는 보조 사건을 펼쳐놓은 것이다.



하마구치식 치정극


《우연과 상상》은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다.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을 통해 흥미를 유발하면서 공감대를 자아낸다. 우연히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할까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만든다. 그 대처를 각자가 상상해 보도록 이끈다.

설명하자면, 치정극은 서로 다른 크기의 사랑으로 갈등과 번민하는 남녀 이야기다. 얼마든지 자극적인 설정을 가져갈 수 있지만, 하마구치는 영화제작과 우연의 모티브, 지난날의 후회 같은 오래된 상처, 역사적 맥락 등의 자기만의 필체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치정극의 묘미는 히어로로 영화 같은 액션 동작이 가져다주는 스펙터클을 인물들의 대화로 보여주고 그 심리적 충돌을 짐작하도록 유도한 데서 비롯된다. 그 대화에 활력을 가져다주는 동력을 끊임없이 주입해야 한다. 이게 말이 쉽지 남녀 주인공끼리 나누는 말들을 재밌게 지켜보게 하는 것은 난도가 높은 작업이다. 단어 선택부터 대화의 구조까지 모든 것을 고려해야 이야기에 힘이 붙게 된다.


하마구치는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욕망이 얽혀있는 절묘하게 관찰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추측하게 하는 영화적인 변증법을 구사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높은 대사들은 하나같이 밀도가 높다. 편집 즉 장면과 장면이 넘어가는 순간 감정적인 수위를 높였다가 낮췄다가 하는 스릴 (정확히는 당혹감)은 마치 대화의 썰물과 밀물을 일으키는 조력을 쥐락펴락하는 것 같다.

실외장면으로의 전환을 통해 영화임을 분명히 각인시킨다.

이런 비평을 들으면 영화가 문학적으로 흘러갈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대화 장면의 컷과 컷의 구성에서 영화라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시킨다. 이오카 유키코의 화려한 카메라 워크에 주안점을 관람하면 쉽게 캐치할 수 있다. 실제 하마구치 감독은 홍상수처럼 즉흥적인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여러 날에 걸쳐 촬영을 진행시킨다. 그렇게 만들어진 리듬감이 영화를 보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 (4.2/5.0)


Good : 예측 불가능한 세계와 조우하는 놀라움!

Caution : 치정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우연과 상상>으로 지난해 제71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열린 제74회 칸 영화제에서 그는 <드라이브 마이 카>로 각본상을 수상했고, 올해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았다. 그리고 각본을 쓴 <스파이의 아내>가 재작년 제7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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