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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Jun 21. 2024

하이재킹*스릴러와 시대극 사이에서

《Hijack 1971·2024》노 스포 후기

《하이재킹》은 1971년 1월 23일 오후 1시 34분경 발생한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1987〉, 〈백두산〉,〈아수라〉 등에서 조연출을 담당하던 김성한 감독의 데뷔작이다. 영화는 승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납치범 용대(여진구)에 맞서서 기장 규식(성동일)과 부기장 태인 (하정우), 승무원 이옥순(채수빈)의 사투를 다루고 있다. 


김성한 감독은 인물의 동기에 주목한다. 용대는 납북한 형 때문에 ‘빨갱이’이라는 낙인이 찍혀 억울한 옥살이까지 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형이 있는 북으로 여객기 납북을 통해 ‘인민 영웅’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반대로 태인은 1969년 12월 11일에 벌어진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당시 공군 파일럿으로 여객기의 엔진을 저격하는 명령을 받았지만, 거부하여 전역하게 된다. 두 사연 모두 허구이나 꽤 그럴싸해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사연 있는 악당과 주인공은 스릴을 갈아먹기 때문이다. 연민 어린 전사(前事)로 인해 하정우와 여진구의 대립 구도가 옅어진다. 주인공에게 영웅적 서사를 부여한 것도 아니고, 빌런에게 강력한 카리스마와 무시무시한 위협감을 심어주지 않았다. 항공 납치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승무원과 승객을 제압하는 과정이 어설프다. 납치범이 협박하면 모두들 당황하다가 반격을 준비하는 패턴을 반복하는 터라 극이 진행될수록 긴박감이 떨어졌다. 납치극이 허술하니까 남북 분단의 정치 이념 희생자라는 명제만 부각한다. 연기측면에 살펴보면, 여진구는 캐릭터 분석이 힘들었던 것 같다. 용대는 납치범과 가족애 사이에서 방황해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하정우도 늘 보던 연기 톤이라고 너무 친숙하다. 


또 탑승객 상당수에 백스토리를 부여한 것도 그 시대적 상황을 풍부하게 해 주지만, 영화가 스릴러로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거추장스럽게 달라붙는다. 사건이 긴박해지려고 할 때마다 신파극이 불쑥 끼어드는 형세다.


제작진도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볼거리를 더한다. 프롭 민항기가 승객을 태운 채, 화려한 기동을 펼치며 F-5A 전투기와 도그파이트를 벌인다. 영화니까 그렇다손 쳐도 고증이 안 맞다. 예를 들어 폭발물이 기체의 배면에서 터졌다고 그 즉시 기체가 실속 하는 일은 영화적 과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여러 정황으로 미뤄볼 때, 《하이재킹》은 스릴러와 시대극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것 같다. 영화의 도입부와 마무리는 실화에 무게를 뒀고, 영화의 중반부는 철저히 장르적 허구로 가득 차 있다. 그 사건이 지나치게 극적이고 과장되어 있는 점이나, 인물이 도구적으로 배치된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 이렇듯 영화는 두 개로 분리된 채 스릴러로서의 장르적 쾌감을 놓친다. 실화를 충실히 옮기지도 않았고, 시대극으로서 의의를 되짚어 보는 것도 신통치 않다. 오늘날 이 사건을 되새기는 그 의의가 무엇인지 영화 스스로 밝히지 못하기 때문에 두 마리 토끼 모두를 놓쳤다.


★★☆ (2.4/5.0) 


Good : 몰랐던 시민영웅 고(故) 전명세 님을 알려줘서 고맙다.

Caution : 스릴의 추락사


●성동일은 한 명의 납치범을 다수가 제압하지 못하는 것에 관해 "좁은 비행기 안에 있으면 숨을 못 쉰다. 공포감이 크다"면서 "3개의 위험 요소가 있다. 비행기 추락, 폭발, 아니면 총에 맞을 수 있다. 나 하나로 인해 모두 죽을 수 있으니 (범인 제압이) 쉽게 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실화에 충실하지 않다. 실제 범인 김상태의 범행 동기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그리고 F-5A가 납북을 저지하기 위해 긴급히 발진했으나 민항기를 상대로 격추를 시도하지 않았다. 또 태인(하정우)이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과 연루되었다는 것은 허구이며, 당시 대한민국 공군기도 출격하지 않았다.


■시대물로서 70년대 문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다만 채수빈의 스타일링은 좀 튀는 것 같다.


■고(故) 전명세 수습 조종사에게 명복을 빈다. 이 분의 영웅적 행동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미수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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