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100 Japanese Movies
일본영화(日本映畫) 시장은 북미와 중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크다. 일본 문화는 만화와 애니메이션로 대표되지만, 한때 전세계에서 3번째로 제작편수가 많은 영화강국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영화 초창기부터 일본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일본은 오백년의 적국이다. 손자병법에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가르쳤다. 그런 관계로 일본 영화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 동기에서 주관적인 일본영화 100편을 선정해봤다.
표지 사진은 (왼쪽부터) 일본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이다.
#100 : 카모메 식당(かもめ食堂: Kamome Diner·2006) 오기가미 나오코
〈윤식당〉의 모티브가 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핀란드에서 일본 음식점을 개업한 한 여성의 이야기는 경쟁하지 않아도, 타인을 밟고 올라서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일러준다. 주인공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가 헬싱키에서 적응하는 전반부를 지나, 불쑥 가게에 뛰어든 마사코(모타이 마사코)와 미도리(카타기리 하이리)와의 우정이 보는 이로 하여금 활력을 주는 훈훈함을 선사한다.
#99 : 국보 (国宝·2025) 이상일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키쿠오(요시자와 료)는 가부키(일본 전통 연극)로 유명한 명문 가문에 입양되어 친구이자 라이벌인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와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후 50년 간 무대 안팎에서 두 사람은 공연하며 우정과 갈등, 동경과 질투, 연민과 원망 사이에서 ‘궁극의 미“를 완성하며, 결국 ’국보‘라는 최고의 지위에 오른 예술가의 삶을 그린다.
이상일의 카메라는 가부키가 위계질서, 가족주의, 밀실정치,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구축된 고귀한 예술이자 치열한 비즈니스임을 동시에 초심자들에게 그 규범과 관행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감정적으로 꿰뚫는 3시간 분량의 대작은 지루하지도 훈계조이지도 않다. 그저 상속과 선택, 전통과 재창조, 예술적 위대함을 추구하는 명상이며, 일본에서 크게 흥행하여 역대 2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렸다.
#98 : 지옥문 (地獄門·1953) 기누가사 데이노스케
칸 영화제 그랑프리(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의상상
1159년에 발발한 헤이지의 난을 배경으로 한 키쿠치 칸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다이에이(大映) 영화의 첫 번째 컬러 영화는 국제적으로 아시아 영화의 우수성을 알렸다. 1926년작 『미친 한 페이지』으로 유명한 기누가사 감독이 맡은 이 영화는 무사도에 익숙하지 않은 서구 평론자들의 입장에서, 유부녀를 사랑하는 하급무사, 남편을 위해 사랑 대신 죽음을 택한다는 사고방식, 자신의 아내를 죽게 한 하급무사를 용서해 준다는 남편의 행동양식 등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당시의 저명한 화가 와다 산조(和田 三造)가 겐페이 시대의 호화로운 양식을 재현한다. 제목의 의미는 당시 역도들의 수급을 교토 도성에 매달아서 ‘지옥문’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97 : 배틀 로얄 (Battle Royale·2000) 후카사쿠 긴지
츠카모토 신야의 〈철남, 1989〉과 마찬가지로 SF와 공포영화의 경계를 걷고 있다. 할리우드에도 영향을 끼쳐, ‘배틀로얄 장르’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타카미 코슌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신세기교육개혁법(BR 법)’에 의해 외딴섬에 갇힌 42명 급우들끼리 유일한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해석을 무시하고 오락적인 목적으로 봐도 왠지 현대 사회의 치열한 경쟁 시스템, 여러 세대에 걸친 불신, 폭력에 무감각해진 우리의 태도에 대한 강렬한 무언가를 의식하게 된다.
#96 : 기동전사 건담-역습의 샤아 (機動戰士 ガンダム 逆襲のシャア·1988) 토미노 요시유키
〈스타워즈〉 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불의한 베트남 전쟁을 벌였던 미국의 자기반성이라면, 토미노는 〈기동전사 건담〉을 ‘소년 병사의 전쟁 이야기‘를 구상하며 태평양전쟁과 자민당 일당독재를 반영한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가 다루는 미래의 풍경은 디스토피아다. 지구가 수용 가능한 인구수를 이미 넘어버린 미래, 인류는 우주에 ‘스페이스 콜로니’를 만들고 이주한다. 우주 이민자들과 지구인 간에 계급이 나뉘고 이에 ‘사상과 이념의 충돌’이 벌어진다. 지구에 세워진 단일국가인 ‘지구 연방’에 반기를 들고 독립을 선언하는 지온공국과 연방군의 전쟁은 단순한 선악구도를 탈피한다. 정치적 대립을 전면에 내세운 건담은 거대 로봇물을 새롭게 정의 내렸다.
이로써 메카물이 드디어 성인 관객도 사로잡았다. 토미노는 〈역습의 샤아〉를 통해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유일한 요소인 ‘뉴타입’이라는 설정은 멋지게 퇴장시킨다. 건담의 제작사 가이낙스는 〈0080 포켓 속의 전쟁, 1989〉나 〈0083 스타더스트 메모리, 1991〉에서 일반인 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진지한 밀리터리 SF물로 진화하게 된다.
#95 : 수라설희 (Lady Snowblood·1973) 후지타 토시야
〈킬 빌〉의 팬이라면 〈수라설희〉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쿠엔틴 타린티노는 카지 메이코에 대한 헌정으로 〈킬 빌〉을 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70년대 저예산 여성 액션 영화들을 총칭하던 '핑키 바이올런스(Pinky Violence)'계의 여왕이 바로 카지 메이코이다. 19세기 후반, 가족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어릴 적부터 검술을 익힌 유키(카지 메이코)는 원수들을 찾아가 차례로 단죄한다. 〈킬 빌〉의 브라이드(우마 서먼)과 오렌 이시이(루시 리우)는 유키를 둘로 나눈 캐릭터라고 봐도 무방하며, 최후의 설원에서 결투 장면도 오마주했다. 그리고 카지 메이코가 주연한 여성 영화는 모두 남성의 부속물임을 거부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작품들이다. 전통적인 여성상을 전복시킨 여성 액션 영웅은 그야말로 시대를 앞섰다고 할 것이다
#94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嫌われ松子の一生·2006)/고백 (告白·2010) 나카지마 테츠야
밀레니엄 시기의 아오야마 신지, 구로사와 기요시, 기타노 타케시와 같은 거장들의 비관주의와는 사뭇 다른 일본에서 쾌락주의적 영화 제작이 가능하다는 발상을 전환한다. 미키 사토시, 쿠도 칸쿠로, 스즈키 마츠오와 같은 감독이 주로 쓰는 방식들(병렬식 내러티브, 과장된 연기, 블랙코미디, 활기찬 미장센)을 특징으로 한다. 발랄한 뮤지컬넘버와 알록달록한 팝 아트로 한 여성의 비극적 이야기에 내재된 어두운 주제를 메이크업한다. 미조구치 겐지의 〈오하루의 삶〉 같은 일본의 수치문화를 다룬 작품을 포스트모던하게 재해석한 작품으로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벼랑 끝에 몰려서도 여전히 타인에게 베푸는 아가페로 승화된다.
〈고백〉은 미나토 가나에의 원작소설에서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고백을 동시적으로 진행시킨다. 꾸밈없이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은 유코(마츠 다카코)의 차분한 화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유쾌한 리듬과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 범죄, 가정 폭력, 왕따 및 당시의 사회 문제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라디오헤드의 'Last Flower'를 썼는데, 이 노래가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안성맞춤이다.
#93 : 블루 자이언트 (Blue Giant·2023) 타치카와 유즈루
신이치 이시즈카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스크린 너머로 공연 실황을 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라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다이(야마다 유키), 4살부터 피아노 영재로 소문난 유키노리(마미야 쇼타로), 고향 친구 슌지(오카야마 아마네)가 펼치는 재즈 합주는 생생하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우직함으로 승부하기 때문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노력하고, 그에 비례하여 실력을 일취월장한다. “재즈는 너무 재미있고, 자신은 꼭 최고의 재즈 연주자가 되고 말 거”라는 우직함과 단순함에 우리도 모르게 응원하고 박수를 보낸다. 꿈은 소중하니까
#92 : 대보살 고개 (大菩薩峠·1966) 오카모토 기하치
액션 거장 오카모토 키하치는 안타깝게 3부작이 취소되었지만, 궁극의 시네마틱 카타르시스를 생산한다. 류노스케는 악한이자 영웅이며 보살이자 수라로, 나카다이 타츠야의 놀라운 연기는 캐릭터의 핵심에 있는 역설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그에게 역설적인 카리스마를 선사한다.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나락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 강한 의지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캐릭터에 그토록 강렬하게 몰두하는 영화는 검을 휘두르는 각도, 동작의 움직임과 멈춤, 시선의 일치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며 정확하게 변화하는 지점을 포착하는 형식적 엄격함에서 놀랍다. 인간 살인 기계가 마치 천재지변처럼 주변을 초토화하는 시각적 독창성은 파괴와 공포의 본질을 필름에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1 : 룩백 (ルックバック·2024) 오시야마 키요타카
〈룩백〉은 만화가뿐 아니라 모든 창작자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다. 만화가 혹은 애니메이터/애니메이션 감독이 작품을 대하는 방식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두 친구는 서로의 등을 보며(Look Back)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등(뒤태)와 배경'으로 된 컷으로 표현된다. 오시야마 감독은 애니메이션의 운동 에너지로 후지모토 타츠키의 원작 만화에 깊이 공명하도록 제작하여 덕후들을 따뜻하게 감싸안는다.
#90 : 굿‘ 바이 (おくりびと: Good&Bye·2008) 다키타 요지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야마가타현의 시골을 배경으로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첼리스트 고바야시 다이고는 장례식을 통해 복잡한 가족 문제와 삶과 죽음에 대한 견해에 직면한다. 제목은 영원한 이별 즉 죽음을 의미한다. 다키타 감독은 ‘굿’과 ‘바이’ 사이에 쉼표를 넣어 놓았다. 저승으로 떠나는 길목에서 이승을 품위 있게 마무리한다면 그건 아마도 인간으로서 누리는 크나큰 복일 것이다. 영혼이 떠난 주검을 단정하게 하는 납관사‘(納棺師)'이야말로 ‘굿’과 ‘바이’을 부드럽게 연결 짓는 문장부호로 적힌다. 마지막 배웅의 순간을 통해 생(生)의 의지와 소중함을 일깨운다. 죽음을 다루면서도 침울하지 않다. 엉뚱하고 코믹한 장면들이 어색하지 않다.
#89 :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Neon Genesis Evangelion: The End Of Evangelion·1997) 안노 히데아키, 쓰루마키 가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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