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서 있던 여자가 옆으로 쓰러졌다. 순식간이었다. 나처럼 갈색 파마를 한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자였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리가 바닥에 카펫처럼 깔렸다. 바닥에 고무 매트가 깔려 있어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여자의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자마자 검은색 치마가 무릎 위까지 말려 올라갔다. 기역 자로 구부러진 다리가 공포 영화에 나오는 시체 같았다.
여자의 오른쪽 다리에서 구두가 벗겨졌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뻗은 손처럼 구두코가 여자 쪽을 향해 있었다. 왼손에는 검은 천을 쥐고 있었다. 작품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그려 놓은 흰 선을 가로지른 여자는 마라톤의 결승선 테이프를 통과한 것처럼 보였다.
여자를 본 도슨트가 소리를 질렀다.
“사진 보지 마세요! 절대로!”
도슨트는 집요할 정도로 사진을 피해 여자만 보고 있었다.
관람객들이 소리를 질렀다. 평일 오전이라 전시회에 사람들이 얼마 없는 줄 알았는데 한곳에 모이니 스무 명은 되어 보였다. 그중 반 이상은 현장학습에 온 고등학생들이었다. 입장 연령을 십오 세 이상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더 큰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도슨트가 다른 관람객들을 보고 있는 사이에 재킷을 벗어 여자의 다리를 덮어 주었다. 직원 두 명이 달려왔다. 그들은 여자보다 사진을 먼저 챙겼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능숙했다.
둘 중 한 명이 사진을 새로 가져온 검은 천으로 씌웠다.
“왜 천을 자꾸 벗기는 거야?”
직원 중 한 명이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말로 짜증을 냈다. 그 짜증을 응당 받아야 할 여자는 누워만 있었으므로 그 말은 허공에 흩어졌다. 직원들은 여자의 어깨와 다리를 받쳐 들고 사라졌다. 내가 덮어 주었던 재킷이 바닥에 떨어졌다. 재킷을 주워 들었다. 도슨트는 천을 벗기고 싶어 자꾸만 흰 선 안으로 다가가려는 학생들을 제지했다.
나는 마침 여자의 뒤에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보지 못했다. 여자의 뒤통수가 충분히 가릴 만큼 사진의 크기는 작았다. 검은 천으로 씌운 사진의 크기는 거실 텔레비전 옆에 흔히 세워 두는 액자만 했다. 경고문에는 ‘사진 관람 금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진에 관한 설명이 경고문 바로 아래에 이어졌다.
‘최초의 수면 보조사 졸린’
시각 장애인 사진가의 사진전에 걸려 있을 법했다. 졸린의 눈을 보고 사진을 찍을 수는 없을 테니. 졸린은 자신의 얼굴을 보는 사람들을 잠들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시각 장애인 사진가는 그 사진을 제3의 눈으로 찍었다고 인터뷰했다. 전시관 직원은 안대를 쓴 채 사진을 액자에 끼워 넣었다. 큐레이터들은 사진이 아니라 사진의 여백을 해설했다. 사진의 제목은 <사과 같은 내 얼굴>이었다. 졸린의 얼굴이 사과 같은지 아닌지는 아무도 답할 수 없을 테지만.
졸린의 사진은 홍보 기사나 영상에 검은 천으로 뒤덮인 채 나갔다. 가끔 호기심 때문에 검은 천을 벗긴 사람들이 사진을 보자마자 쓰러져서 잠들었기 때문에 사진 앞에는 항상 고무 매트가 깔려 있었다. 그 뒤 전시실에 마련된 휴게실로 옮겨져 단잠을 잤다. 아까 쓰러져 잠든 여자도 휴게실로 갔을 것이다. 이미 여러 명이 거쳐 간 휴게실에는 토퍼와 이불, 베개까지 살뜰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나는 졸린의 사진을 보고 잠드는 일이 사고나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권장 수면량이 부족해 졸린을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도 있을 터였다. 한국의 평균 수면 시간이 OECD 국가 중 최하위라는 기사가 났다. 전 세계에서 잠이 가장 부족한 국가라는 오명을 벗을 날이 없었다. 젊은이들의 과로사도, 불면증도 늘었다. 걱정이 늘어날수록 그에 반비례해 잠이 줄어드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한 이치였다. 걱정은 잠자리에서도 이어져 정작 자야 할 때는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억지로 자기 위해 사람들은 수면 클리닉을 찾아가 수면 다원 검사를 받기도 하고, 수면제를 처방받기도 하고, 마사지와 아로마 향초 쇼핑으로 도배된 수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나 역시 그 모든 과정을 거치다가 졸린을 만났다. 졸린은 현대인의 권장 수면량을 늘리기 위해 수면 보조사로 일했다. 그리고 어느 날 사라졌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전시회장을 나왔다. 여전히 졸렸다. 개장 시간에 왔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목이 졸린 느낌이 들 정도로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았다. 나에게도 졸린이 필요했다. 어쩌면 졸린에게도 내가 필요할지 모르고. 내일쯤 졸린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피로한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졸린을 처음으로 인터뷰했던 날은 오랜만에 기삿거리를 찾은 날이기도 했다. 프리랜서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지 팔 년째 되는 내 위치는 시들어 가는 화분보다 못했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은 영업 사원과 비슷했다. 과대 포장과 발품과 인맥이라는 삼박자가 끈끈하게 이어져야 했다. 쓰고 싶은 기사를 쓴다는 것은 잘 팔리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것과 같았다. 써야 할 것들은 이미 남들이 썼고 쓰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대체로 프리하기만 한 나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보나 웹진에서 가끔 들어오던 원고 의뢰도 끊긴 지 오래였다.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물색해야 했지만 오랜 기간 나를 좀먹고 있는 만성피로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그저 무기력했다. 아침에 알람이 백 번 이상 울려도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두통과 근육통에 시달리며 종일 누워 있는 날도 많았다. 당연히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오는 연락도 받지 못했다. 휴대폰에서 통화 버튼을 누르거나 메시지를 쓸 힘도 없었다. 숨만 쉬는 것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정도였다.
업데이트를 멈춘 포트폴리오는 나이만 먹고 있었다. 내 직업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남편은 은근히 출근하는 직업을 권하기도 했다. 밥을 먹지도 못하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게 야속했다. 잡지사를 그만둔 지 십 년이 다 되어 가는 상황이니 마트에 나가거나 경단녀를 위한 직업 교육 훈련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에 드는 기사를 마지막으로 쓰기 전까지는. 클라이언트가 의뢰하는 기사 말고 내가 쓰고 싶은 기사 말이다. 그때까지는 이 직업을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을 미루는 동안 불면증이 찾아왔다. 눈을 감아도 뜬 것 같았다. 남들보다 긴 만큼 고통스러운 하루가 이어졌다. 명상하거나 두꺼운 철학책을 읽어도, 빗소리나 클래식을 들어도, 라벤더를 베개 밑에 넣어도, 따뜻한 우유나 와인이나 캐모마일 차를 들이켜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멜라토닌이나 수면 유도제를 먹어 보기도 했다. 잠은 쉽게 들었지만 다음 날 멍한 상태로 있어야 했다.
결국 통장 잔고를 허물어서라도 불면증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에 강남에 있는 수면 클리닉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졸린을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입구에서였다. 졸린이 회전문에서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빨대처럼 마른 몸만 보였다. 그다음에 본 졸린의 얼굴은 안개처럼 흐릿했다. 흐릿했던 얼굴이 선명해지려는 순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때는 수면 클리닉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 옆에는 캡 모자를 눌러쓴 졸린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눌러쓴 모자 밑으로 단발에 가까운 머리가 뻗쳐 있는 것이 보였다. 뒤집어진 파인애플 같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졸린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잠들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저는, 제 얼굴은, 사람들을 잠들게 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초능력자라도 만난 것 같았다. 졸린을 취재한다면 특집 기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졸린이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잠을 줄이는 만큼 성공한다고 믿는 시대였다. 잠은 죽어서 자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으니.
수면 클리닉 안에서 듣기에는 크다고 생각할 정도의 소리로 졸린에게 말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아니, 인터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제가 기자거든요. 뭐, 방송국이나 신문사 소속은 아니고 프리랜서이긴 한데…….”
졸린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러죠. 잠깐이라면요. 제가 잠들게 했으니까요. 뭐라도 도움이 되면 좋죠. 목이 너무 아파서 문이 회전하는 사이에 잠깐 고개를 들었는데…….”
나는 내 쪽으로 다가오는 간호사는 쳐다보지도 않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졸린도 천천히 일어섰다. 접수대에서 계산하고 병원을 나올 때까지도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또다시 잠들 수는 없었다. 에우리디케를 잃지 않기 위해 뒤돌아보지 않아야 하는 오르페우스처럼 앞만 보고 걸었다.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졸린은 고개를 숙인 채 내 뒤를 따라왔다. 죄인을 연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구석 자리에 앉자 졸린도 건너편에 앉았다. 가지런히 모았던 두 손은 탁자 위에 얹어 놓았다.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키고 온 사이에도 졸린의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졸린에게 양해를 구한 뒤, 휴대하던 녹음기를 틀어 놓고 수첩을 꺼내 메모를 시작했다. 인터뷰의 시작이었다.
“이름은요?”
“졸린입니다.”
“졸린, 졸린이라……, 본명이에요?”
“남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게 이름 아닙니까? 누구나 저를 졸린이라고 부릅니다. 그럼 그게 이름이 되는 거지요.”
“직업은요?”
“수면 보조사입니다.”
그 말에 펜을 멈췄다. 경찰서에서 신상 정보를 묻는 것 같은 뻔한 질문에 뻔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펜으로 수첩을 두드렸다.
필기를 멈춘 상황에서도 녹음기는 돌아가고 있었다. 침묵이 한참 녹음되었다. 수면 보조사라는 직업은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수면을 도와주는 약물이나 기구를 본 적은 있어도 수면을 도와주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입안이 썼다. 졸린의 얼굴 대신 손을 보았다. 그 손은 자신의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
졸린이 눈을 가린 채 말했다.
“호구조사는 지겹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것부터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노래는 <사과 같은 내 얼굴>입니다. 왜 그런지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졸린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과가 절대 ‘내 얼굴’이 될 수 없기에 그 노래가 싫다고 했다. 졸린은 반짝거리는 얼굴이었다면, 사과 같은 얼굴이었다면 다들 나를 좋아했겠지요, 하고 중얼거렸다. 도서관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며 벼락치기 하는 친구들도, 밤 열두 시가 넘어야 지낼 수 있는 제사를 꼭두새벽부터 준비하던 어머니도, 승진이 걸린 프로젝트 때문에 야근을 아이스크림 퍼먹듯이 하던 아버지도 제 얼굴을 싫어했지요.
그들은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원할 때 자는 거야, 하고 부르짖었다. 그를 본 사람은 누구나 꿈도 기억나지 않는 깊은 잠을 잤지만 그 때문에 일어난 손해를 졸린의 탓으로 돌렸다.
“이게 다 제가 되다 만 얼굴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졸린이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자신의 얼굴을 묘사했다. 시옷 모양으로 처진 눈썹, 눈동자의 반을 덮고 있는 눈꺼풀, 금방이라도 침이 흘러내릴 것처럼 약간 벌어진 입. 숨 쉬는 소리도 코를 고는 소리로 들릴 정도였다. 그건 그대로 잠자는 이의 얼굴이었다.
잠잘 때의 얼굴로 졸린은 걸어 다니고 있었다. 남이 사진으로 찍어 주지 않는 이상 자는 모습을 스스로 본 사람은 없겠지만 졸린의 경우는 거울을 보기만 하면 되었다. 졸린을 보자마자 모두 말했다. 졸려. 졸려. 피곤해. 피곤해. 불량배들조차도 졸린과 마주치면 저 새끼 면상 보니까 때릴 맛도 안 난다, 눈 좀 뜨고 다녀 새꺄, 하면서 비척대는 걸음을 걷기 일쑤였다. 골목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불량배들은 벽에 등을 기댄 채 고른 숨을 내쉬었다.
“학교도 끝까지 다니지 않았지요.”
졸린은 학력이 중학교 중퇴라고 했다. 곧바로 이어 말했다.
“다니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졸린은 울음처럼 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