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린의 자리는 항상 교탁 맨 앞자리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학생이 졸고 있을 때 교사가 눈치채기 어려운 곳이었다. 스스로 눈썰미가 좋다고 생각한 담임은 늘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졸린이 집중한 것이 아니라 졸고 있는 거라고 어느 순간 생각했다. 담임은 지시봉으로 졸린의 정수리를 두들겼다. 똑똑, 노크하듯이 가볍게 두들긴 소리에 졸린이 고개를 들었다.
졸린의 얼굴을 마주한 담임의 눈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담임은 책을 떨어뜨리면서 쓰러졌다.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모두 담임이 졸도했다고 여겼다. 교장은 한술 더 떠 담임이 환경미화 준비 때문에 과로로 쓰러졌다고 생각해 졸린의 반에 일등상을 주었다.
쓰러진 진짜 이유를 말할 수 없게 된 담임은 수업 시간마다 졸린을 복도로 내보내거나 졸린이 등을 돌린 채 교실 뒤에 서 있게 했다. 종일 쫓아낼 수는 없었다. 수업이 끝난 뒤 자리로 돌아오는 졸린의 얼굴로 시선이 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졸린이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밤에 잠을 못 잘 때마다 시선이 졸린 쪽으로 갔다. 신경과민에 걸린 담임은 병가를 냈다. 졸린이 먼저 학교를 그만두고 난 뒤에야 담임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전학 가면 되잖아요?”
내가 묻자 졸린이 고개를 더 숙이면서 대답했다.
“거기서도 또 다른 사람이 아프면 안 되잖아요.”
졸린이 학교를 그만둔 날 담임은 졸린의 팔을 잡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때도 담임의 눈은 졸린을 보고 있지 않았다.
가족들만큼은 그를 이해해 주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에 가족 관계를 물어보았다. 부모님과 여동생 둘. 졸린이 장남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여동생들을 잘 재웠기 때문에 부모는 졸린에게 여동생들을 맡기고 외출하곤 했다.
그렇게 부모가 끝까지 함께였다면 좋았을 텐데 아파트 입구를 나서자마자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다는 게 문제였다. 그런 방식으로 부모가 이혼했을 때 여동생들은 부모에게 한 명씩 떠안겨졌다. 여동생들은 졸린과 함께 가려고 하지 않았다. 말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 자기 싫다고 말하면서 졸린을 피했던 것이다. 부모가 동생들을 재우는 일을 항상 졸린에게 시켰기 때문에 졸린이 얼굴을 들이밀면 여동생들은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면서 도망갔다. 팔을 휘저으며 외치기도 했다.
잠 괴물이다!
아이들도 자고 싶을 때 자야 온순해지는 법이었다. 자기 싫은데 억지로 재우면 잠재된 반항기가 몇 년 뒤에 나타날지도 몰랐다.
부모는 난처해하면서 졸린을 서로에게 떠안기려 했다. 졸린을 앞에 두고 부모는 다투었다.
“당신이 쟤를 가졌을 때 삼겹살을 많이 먹어서 애를 망친 거야.”
“그러게, 고기만 먹지 상추쌈은 왜 싸 먹어! 상추 먹으면 잠 온다는 말 못 들었어?”
“상추가 몸에 좋다고 두 겹씩 쌈 싸 준 게 누군데그래?”
“그때 먹지 못하게 말렸어야지!”
“여하튼, 당신이 책임져!”
“왜 나 혼자 책임져야 해? 혼자 만든 애도 아닌데, 그렇지 얘야? 말해 봐,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지금 다 큰 애한테 무슨…… 그런 유치한…… 질문을 해?”
“원래 유치한 질문에 솔직…… 하게 대답할 수…… 있…… 는…… 거야……. 아, 졸려. 한숨 자고 나서 얘기해!”
부모의 싸움을 재연할 때의 졸린은 연극 무대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 말을 해 주었더니 졸린은 반가워하며 말했다.
“사실, 연극배우가 꿈입니다.”
그 말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졸린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는 관객은 단 한 명도 없을 테니 말이다.
“……소원이 뭐예요?”
오늘의 인터뷰를 끝내기 전에 졸린에게 물었다. 졸린은 천천히 대답했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며 굿모닝이라고 인사하는 겁니다. 함께 맥모닝 세트를 먹을 수 있으면 더 줗구요.”
졸린은 특히 감자를 갈아서 고로케처럼 기름이 감돌게 튀긴 해시브라운을 좋아했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입술 안쪽까지 기름이 묻어 나오는 게 만족스럽다면서.
알고 보면 나트륨 덩어리겠지만 그에게는 하루의 피로를 씻어 주는 맛이었다. 졸린도 다른 이들의 피로를 씻어 주고 있으니 사천 원의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맥모닝은 새벽 네 시부터 오전 열 시 삼십 분까지만 팔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맥모닝을 먹는다.
그 시간은 졸린이 다른 사람들을 재우고 난 뒤에 잤던 시간과 비슷했다.
바람이 강해진다 싶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졸린이 올 시간보다 일찍 이십사 시간 카페에서 나왔다. 거리를 조금씩 거닐었다. 비는 점점 거세졌다. 졸린이 일하기에는 최악의 날씨였다. 졸린은 밤부터 새벽까지 쓰레기차 뒤에 매달려 쓰레기들을 수거하는 일을 했다. 토요일만 쉬고 나머지 여섯 날 동안 꼬박 그렇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지옥철을 타고 출근하기 전에 퇴근하는 셈이었다.사람들과의 눈 맞춤이 필요 없는 일이기도 했다.
졸린의 근황이 궁금해 연락했을 때 왜 그 일을 하는지 묻자 졸린은 답했었다.
눈 없는 쓰레기 봉지들을 보는 게 더 편합니다. 저한테 요구하는 게 없으니까요. 눈들은 너무 바라는 게 많아요.
천천히 걸어 역 근처까지 왔다. 역 입구에서 졸린을 기다렸다. 이십 분 정도 지난 뒤 졸린이 왔다. 작업복을 갈아입고 샤워까지 마친 졸린은 캡 모자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썼다. 샤워실은커녕 탈의실도 없는 곳에서 일하니 집에 들렀다 왔을 터였다. 졸린의 집은 일터에서 이십 분 거리에 있었다. 졸린의 얼굴 대신 손을 보았다. 졸린의 손이 주먹을 한 번 쥐었다가 폈다. 안녕이라는 뜻이었다.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졸린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화장실에서 손을 오랫동안 씻었다. 나는 맥모닝 세트를 두 개 시켰다. 중앙에 자리가 많은데도 가장자리에 있는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졸린과는 마주 보지 않아도 대화하는 게 편했다.
“어제 전시회에 갔다 왔어요.”
졸린이 소시지에그맥머핀을 한입 베어 무는 걸 보며 말했다. 졸린의 시선이 닿는 것이 왼쪽 볼에 느껴졌다.
“사진은 못 보셨겠군요.”
졸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졸린이 빨대로 콜라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났다. 졸린이 먹는 모습을 귀로 들었다. 음식을 씹고 빨고 삼키는 소리가 분주했다. 나는 조용히 내 몫의 맥머핀을 내밀었다. 졸린은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나는 밀거래하는 것처럼 맥머핀을 건넨 뒤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진 찍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요?”
졸린이 먹는 소리를 멈췄다.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흡. 숨을 한 번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 그다음에는 포장지가 구겨지는 소리가 오래 들렸다. 졸린의 마음도 그와 같이 구겨졌으리라 짐작했다. 졸린이 잔뜩 구겨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진가는 저의 눈을 볼 수 없었겠지만…… 저는 사진가의 눈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사진을 찍는 순간만큼은 좋았어요. 그 순간만큼은 눈이 마주쳤던 것 같습니다.”
졸린은 수면 보조사를 그만둔 뒤 극단 ‘연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두 번째 인터뷰에서 왜 수면 보조사 일을 그만두었는지 물었을 때 졸린은 담담하게 말했었다.
노력해서 얻은 소질이 아닌걸요. 운 좋게 얻어걸린 거죠.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지요.
졸린을 가장 반겼던 곳은 병원이었다. 아파서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졸린은 천사나 다름없었다. 졸린은 밤새 중환자실의 병실을 순회했다. 환자들은 졸린을 호스피스나 신부님처럼 대했다. 편하게 잠든 이들은 졸린이 퇴근할 즈음에 일어났다. 그들이 일어날 때 졸린은 잠들었다.
일은 간단하고 쉬웠다. 그들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되었다. 마사지해 줄 필요도, 허브차를 타 줄 필요도, 아로마 향을 피울 필요도 없었다. 기도나 염불도 생략되었다.
그래서 그 일을 오래 하지 못했다. 졸린은 환자들과 대화하고 싶었다. 언제부터 병원에 있었는지, 가족 중에 누가 찾아오는지, 병에 걸리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들은 졸린과 말할 틈이 없었다. 잠들기 바빴다. 그들이 졸린에게 원한 것은 그의 얼굴뿐이었다. 얼굴을 쳐다보는 삼 초 동안의 침묵만 필요했다. 숙면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약은 수면제보다 몸에 좋았다. 졸린은 침묵의 소리만 들려주는 사람들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병원을 뛰쳐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