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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랑 Feb 07. 2020

한국에서 택배가 왔다.

벨기에 온 이후로 최악의 날

교환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술파티(?)도 두 번 갔다 왔는데, 낯가림+영어 못함 콜라보로 딱히 누군가랑 친해지지는 못했다. 차라리 수업 중에 팀플로 만나면 친해지기가 더 쉬울 것 같다. 영어 수업도 아직 적응이 안돼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교환 오기 전에 영어 공부를, 영어 회화를 아주 많이 공부해서 왔어야 했다. 와서 영어 늘리려는 생각도 좋지만 나 같은 성격 상 못하면 더 쭈그러(?) 들기 때문에 자신감은 가질 정도로 해서 왔어야 했다. '내 모국어는 영어 계열이 아니다'는 생각을 가지려고 무단히 노력 중이다. 한국가도 영어 공부해야지.


수요일 오전, 한국에서 택배가 왔다. 하필 내가 학교에 3시간 동안 가있던 사이에. '부재로 택배 회수 후 수취인 통지'라고 했는데 나한테 온 연락은 아무것도 없었다. 수요일에는 수업이 10시-6시까지 있고, 이번 주는 8시에 'Meet your buddy'라는 행사도 있었기 때문에 택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 목요일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요일에는 그냥 잤다. 이때까지만 해도 목요일에 나한테 무슨 일들이 일어날지 전혀 몰랐다. 


8시 30분에 알람을 맞췄는데, 눈 떴더니 감기 기운이 있었다. 결국 한 시간 더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새로 산 잼 뚜껑을 열려고 젓가락을 쓰다가 부러졌다. 한국에서 사 온 젓가락 었는데. 여기서는 젓가락 잘 팔지도 않는데. 이게 시작이었다. 집 근처 우체국에 전화를 했더니 자동 응답기가 불어로 답했다. 'deux(2), trois(3), quatre(4)' 이런 숫자들이 들리는 걸로 봐서는 한국과 비슷하게 '1번 누르면 상담사 연결' 이런 거 말하는 것 같긴 했지만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버디가 또 한 번 원망스러웠다. 나 안 도와줄 거면 왜 신청한 거야 도대체. 이럴 때 불어 좀 들어주면 좋잖아.) 결국 전화를 포기하고 무작정 집 근처 우체국을 찾아갔다. 다행히 버스 한 번으로 20분 정도면 갔다. 버스에서 내려서 우체국까지 걷는데, 문득 인터넷에 검색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검색했더니 수취인이 집에 없으면 배달부가 집 앞 우편함에다가 쪽지를 넣어놓고 간단다. 평소에는 늘 인터넷 찾아보고 했는데 왜 오늘따라 무턱대고 우체국을 찾아갔을까. 결국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나니 벌써 11시 반이 넘었다. 우편함은 집주인한테 열쇠를 달라고 해야 열 수 있었다. 오늘 택배는 포기하고 점심 먹고 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간단하게' 볶음밥을 만들어 먹을 생각으로 양파, 당근, 감자를 깎고 썰었다. 근데 그게 거의 1시간 걸렸다. 볶음밥 정말 간단한 요리라고 생각했는데 껍질 다 깎고 하나하나 잘게 써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새우, 계란, 밥까지 넣고 볶으니까 벌써 학교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기껏 다 만들어놓고 안 먹는 것도 짜증 나서 학교를 포기하고 밥을 먹었다. 수업 내용은 같이 듣는 한국인 친구에게 부탁드렸다. 한국인 친구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밥 먹고 학교도 안 가는 김에 택배를 꼭 오늘 안에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까 집주인한테 우편함 어떻게 여냐고 물어본 톡에 답이 와있었다. 열쇠로 우편함을 열어서 쪽지를 찾았다. 정말 너무 허접한 쪽지라서 내가 찾는 게 아닌 줄 알고 한참을 뒤적였다. 쪽지를 보니 아까 내가 갔던 그 우체국에 가서 찾으면 되는 거였다. 여기서 또 짜증이 났다. 진작 인터넷 뒤져서 쪽지 발견해서 갔으면 진작에 찾아서 와서 밥도 먹고 학교도 갔을 텐데 왜 이러고 있는지 현실이 너무 답답했다. 처음 벨기에 왔을 때만 해도 버스 정거장을 지나쳐도, 길 좀 헤매어도 다 재밌었는데 이제 질린 건지 오늘 기분 탓인지 그냥 자꾸 화만 나고 짜증만 났다. 

우편함에 아주 꾸깃꾸깃 들어있던 쪽지


우체국에서는 다행히 쪽지를 내미니까 별다른 말 없이 내 택배를 줬다. 근데 택배가 13kg이었다. 며칠 전에 물 1.5리터 6병 들고 오다가 죽는 줄 알았는데 이거 들고 버스 타는 건 택도 없겠다 싶어서 우버를 불렀다. 분명 공항에서 택시 타고 다시는 안 탈 거라고 했는데 벌써 두 번째 우버 탑승이다. 다행히 택시보다는 우버가 싼 것 같다. 택배를 집으로 들고 와서.정리를 하려고 하는데 느낌이 쌔했다. 생리 예정일이 지났는데 결국 오늘 터지고 말았다. 진짜 날이 있는 것 같다. 뭐든지 안되고, 안 일어났으면 하는 일만 일어나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기분이 나쁜 그런 날. 생리할 거라고 기분이 더 안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PMS 최악이다. 원래는 젓가락 사러 한인마트도 갔다 오려고 했는데, 오늘은 뭘 해도 이상한 날이라 그냥 집에 얌전히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젓가락은 내일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사야지. 택배 정리하고는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거렸다.


*벨기에 팁

벨기에에서 택배를 시켰는데 하필 내가 집에 없어서 못 받았다면 꼭 우편함부터 확인해 쪽지를 챙겨야 한다. 쪽지에 보면 어느 bpost pickup point에 내 짐이 있는지 쓰여있으니까 구글 맵에 주소를 검색해서 찾으러 가면 된다. 나는 내가 사는 지역의 우체국에 가있었다. 또한, https://www.aftership.com/ko/couriers/bpost-international 여기에 들어가서 ems등기번호랑 벨기에 주소지 우편번호를 입력하면 내 택배가 무슨 절차를 밟고 있는지 알 수 있으니 수시로 확인해서 집에 올 것 같으면 집에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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