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아의 고운 시선
식탁 위에 꽃을 놓았다. 작은 샴페인 잔에 분홍 빨강 흰색 초록이 심어져 있다. 느지막이 일어난 세 살 루아는 힘겹게 높은 식탁의자에 올라가서는
“음~ 예쁜걸”
부은 눈으로 능청스럽게 말한다.
“예뻐?”
“응! 핑크! 예뻐 엄마꽃이야”
제일 튼실한 줄기와 남다른 체격의 장미꽃을 가리키며 말하는 루아. 발그란 볼이 복숭아를 닮은 루아는 생일을 두 번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 세 살 아이다. 루아는 숨, 성령이란 뜻의 세례명. 세 살 루아의 하루는 매일이 새롭고 즐겁다. 작고 동그란 입에서 나오는 말은 종종 반짝하고 마음을 비춘다.
“살만 빼면 참 예쁠 텐데…”
내가 어릴 적부터 들었던 말이다. 얼굴은 이쁜데 살이 문제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십 대 때 살을 빼기 위해 한의원을 잠깐 다녔는데
남자 친구가 없다고 대답한 나에게 선생님은
잠깐 생각하시더니
“혹시 살을 빼야 남자 친구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살이 쪄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야지!”
하고 훈육(?) 하셨다.
어릴 때부터 날씬한 기간이 없어서 어느 정도가 나에게 알맞은 날씬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시절 큰 수술 때문에 잠시 휴학을 했는데 상처가 아물 때까지 밥을 먹지 못해 인생 몸무게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아마 그냥 보기 좋은 보통 수준일 거다)
복학을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대학생활 중 가장 많은 선배에게 밥을 얻어먹고 과제를 대신해준다는 후배, 빼빼로데이에 그렇게 종류별로 선물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잠깐이나마 내가 이 정도인데 미인의 삶은 정말 편하겠구나 생각한 적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에게 미의 기준은 날씬한 사람이었고 늘 내 몸이 싫었다.
아기를 낳고 몸의 균형을 잃고 방치해둔 탓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임신 전부터 몸은 불어 있었고 퇴근이 없는 육아의 삶에 잠깐씩의 맥주타임이 나를 버티게 했다. 몸무게는 정직하게 만삭 때로 컴백했다. 피곤하면 발진이 생기는 알레르기도 얻었다. 그럼에도 루아에겐 덩치 크은~ 엄마도, 까슬까슬한 발뒤꿈치를 가진 엄마도 예쁘다 말해준다. 아빠보다 엄마와 샤워하고 싶어 한다. 처음에 아이 앞에서 옷을 벗는 게 부끄러웠다. 간편하게 입고 씻겨보아도 옷이 젖어하는 수 없이 아기에게 내 부끄러운 몸을 오픈하고 말았다. 샤워를 마친 후 아기가 나의 목을 끌어안으며 말한다.
“으음… 따뜻하고 푹신해.”
예쁜 세 살은 편견이 없다. 늘 피곤에 절어있는 엄마도 뱃살이 늘어진 엄마도 자신을 바라보고 안아주는 엄마의 볼을 만지며 사랑스러워한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해주는데 귀엽기까지 하다니. 신경질적으로 아이에게 화냈던 순간을 한 번쯤은 줄여봐야지 다짐한다. 가까운 미래에 “엄마 뚱뚱해! 미워.” 하는 날이 오기 전에 좀 더 건강을 돌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근데 그것. 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