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의 결혼식

그 시절 어리고 약했던 나에게

by 알미

어린시절 친척들이 나에게 부르는 별명은

‘섭섭이’였다.

낳아보니 또 아들이 아니어서 섭섭했고

아들이라면 잘생겼을 이목구비도 섭섭하고

모든 게 섭섭해서 엄마의 시어머니는

머리에 흰띠를 두르고 앓아 누으셨다고 했다.


이런 일화는 많다. 어릴때 들은 칭찬 중의 반은

착하다 순하다 였고

연년생으로 남동생이 태어나고

할머니가 나를 제일 예뻐해줬을때는

“지는게 이기는 거야.”

하시며 동생에게 맞고도 안울고

좋은거 양보할때 였다.


착하고 순한딸이란 이름표가 바뀌지 않기 위해

나는 내 마음 한 곳에 자라는 어두움을

모른 척 한 건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도 몰래

동생의 새 잠옷을 가위로 오리던 그때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표현같다.


중학교 때인지 그보다 더 어렸을때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더웠던 여름밤 동생의 방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이상한 느낌에 얼핏 깼는데

옷은 조금 벗겨져 있었고 동생은 호기심인지

장난인지 내 몸의 중요한 곳을 만지고 있었다.


이제 내 기억은 그 소름끼치는 기분 뿐이다.

잠못드는 밤이 늘때마다 마음을

무거운 콘크리트 반죽으로 꾹꾹 덮고 또 덮고

없었던 일 취급했다.

자세한 건 기억이 안난다. 그렇지만 가장

상처받은 건 엄마의 태도였다.

울먹이며 자던 엄마를 깨워 얘기했더니

“왜 그방에서 잠들어. 가서 자.”

나를 혼낸 기억. 그 후로 아빠에게 얘기해거나

동생을 죽도록 때리거나 뭐 그런 건 없었다.


그 후로 그 일은 없는 듯 있는듯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지냈지만

다시 생각나게 한 건

잠못드는 새벽이 많아지는 아기를 키우면서부터다.


힘든데도 사랑스러운 아기얼굴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쏟았졌다.

나도 이렇게 한없이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을텐데..

‘그때의 어리고 약한 나에게’ 미안했다.


동생의 결혼식이 끝나고

친정집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내가 너한테.. 어쨌거나 진짜 고맙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자쪽 결혼준비를 하며

신난 (분홍색 한복 색깔만 세번이나 입으셨으니

하늘색이 부러웠던) 엄마가 얄미워서인지

술 그만 마시고 살 좀 빼라는 잔소리가 싫어서인지

그날의 일이 불쑥 튀어나왔고

난 몇달동안 엄마전화를 피했었다.


엄마는 심각한 걸 싫어한다.

이제 우는 드라마도 싫고

딸들이랑 속깊은 얘기보다

손주 재롱만 보고 싶어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대에 시집와서 신혼 한번 없이 시부모를 모시고 아이 넷을 기르고

지금은 치매에 걸린 깐깐함 시어머니를 모신다.

“너는 나보다 낫지 않니.”

엄마의 무기같은 말. 잠깐만

엄마가 한 잘못이 아닌데 남동생보다

엄마가 더 밉다.

이번만큼은 착한 딸 안하고

“나 많이 힘들었어요. 그땐 엄마가 정말 잘못한거예요.” 라고 똑뿌러지게 말하고 싶다.


남동생의 결혼식이 끝났다.

결혼식과 함께 새가족 소식도 들었다.

곧 아빠도 된다고 한다.

그래 이제 이 무거운 돌덩이만은 내려놓아야겠다.

너도 너의 소중한 아기가 태어날테니

그 아기에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참기 힘들어질거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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