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 없겠네!

< 참 소중한 당신> 9월 원고에 보태어

by 알미

"끝말잇기 하자. 대신 아름다운 단어로 말하기!"

우리 부부는 심심할 때 끝말잇기를 자주 한다. 대부분 어려운 단어로(크롬, 라듐, 칼슘 같은) 상대방을 난감하게 만들어야 게임이 끝나서 좀 아름답게 마무리해보고자 '아름다운 것'으로 범위를 좁혀보기로 한다.

-나무

-무용!

-용?... 음... 용서.


남편의 입에서 '용서'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와~ 하고 칭찬해주다가 이내 마음이 찜찜해졌다. 어제만 해도 멀리 사는 딸이 잘 있는지, 좋은 소식은 없는지 궁금해서 전화한 엄마에게 버럭 화를 내고 끊어버린 나였다.

"아이 계획은 없는 거야? 몸 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거니?"


결혼을 하면 어른들의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했다.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목록 중에 '좋은 인연 만나기'를 이룬 기쁨도 잠시, 걱정은 사라지지 않고 다음 순서로 흘러갔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좋게 이야기해도 될 것을.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탓에 눈물이 쏟아지고 화도 올라와서 "상관 마시라!"는 투로 쏘아붙이고 말았다.


결혼 초기, 갑작스럽게 임신을 하고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아기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결국 태아로 자라지 못하고 유산이 되었는데 실감이 나지 않아 그냥 먹먹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오히려 한참 지난 지금 임신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지나간 일이 더 크게 다가왔다.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함께 이 모든 일이 다 내가 못난 탓인 것만 같았다. 누가 안부 삼아 2세 계획을 물으면 금방이라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서러움이 올라왔다. 아직도 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걱정만 하고 있는 걸까?


<누구를 위해 사랑하는가>를 쓴 소노 아야코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내 행동에 가치가 있다고 믿기 위해 다소나마 하느님께 의지한다. 말하자면 내가 하느님의 뜻을 행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권할 수 없지만, 누군가 항상 나를 바라보고 지지해 준다고 생각하면 든든하고 마음이 편해진다."


꼭 신이 아니더라도 부모든 친구든 바라보고 지지해주는 마음을 느낀다면 든든해질 것이다. 하지만 결혼이나 임신, 취업, 성적을 물을 땐 잠시나마 멈춰서 마음을 살펴봐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괜찮지 않을 때가 많다. 불안에 휩싸일 때마다 내 뒤에 하느님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다는 것을 자꾸만 잊어버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낄 때 이대로 걱정 보따리를 맡겨 놓고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도 아름답다로 스스로가 느끼길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화내지 않고 주님께 의지하는 것. 지금 나에게 가장 큰 숙제인 것 같다.


________________

앞의 글을 쓴 지 만 2년이 지났다. 이후 임신을 하고 다시 유산을 했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흔한 유산이라고만 했다. 이유를 알고 싶어 보험이 되지 않는 큰 검사를 했지만 모두 정상이었고 죽은 아이가 아들이라는 염색체 결과를 알게 되고 난 임신이 너무 두려워졌다. 침대에 누어 하루 종일 흘러가는 구름을 보다 울다 어둑해질 때까지 하루를 보낸 날도 있었다. 두 번째 유산은 나에게 많은 두려움을 주었고 아이에 대해 크게 얘기한 적 없는 우리 부부에게 자신의 마음을 꺼낼 수 있는 큰 계기가 되었다. 우리의 결론은 혹시나 아이가 없더라도 서로 즐겁게 지내기로 약속했고, 뭣보다 1년 정도는 생각 없이 놀아보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에 남편이 갑상선 암수술을 하게 됐다.


지나고 봐도 그 해는 나에게 잊지 못할 아픔과 경험이었다. 다행히 수술 후 경과도 좋아지고 새해를 맞이한 생일에 나는 세 번째 임신 사실을 알았다.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찾아온 소식에 많이 당황했고 늘 두려움과 공포가 찾아와 울기도 많이 울었다. 다행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가을에 건강하게 아기를 만났다.


가을 하늘에 가까워지고 있는 요즘. 아기가 두 돌에 가까워지면서 새삼 감사한다. 걱정하고 피할 수 없었던 아픔들이 나름의 준비였다고 새긴다. 인생은 즐거움보다 아픔이 많다. 식빵 속 잼처럼 불안과 걱정 사이사이 찾아오는 기쁨 덕에 오늘을 살아내는 게 아닐까.

물론 요즘에는 그냥 식빵만 먹어도 맛있는 날. 평탄하게 이어지는 간결한 삶이 더 좋다.



이전 06화남동생의 결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