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에 초대받은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게 가해자가 되는 걸까?
코로나를 지나온 아이 엄마들은 혼자 육아에 많이 지쳐있다. 공동육아에 목마른 사람도 있고 혼자 육아에 익숙해진 사람도 있다. 코로나를 지나 유치원에 갈 때 즈음 엄마들 6명과 단톡방에서 소소하다 못해 시시하지만 서로 위안을 삼으며 하루하루 버티는 단톡방에 중독될 즈음이었다.
가끔 하원 몇시간 전에 까페에서 잠깐이라도 회포를 풀고 돌아가거나 하원 후 집초대가 잦아지면서 6명 중 1명이 소외되는 것을 느꼈다. 눈치가 빠르지 못한 나는 이유를 궁금해했고 나름의 정확한 이유가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게 된 계기. 그 말을 들은 나는 소외된 한명과 친해진 5명 사이에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이유를 궁금해하는 1명에게 왜 그들이 당신을 싫어하는 가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고, 소외된 1명의 안부를 묻는 5명에게 그의 안부를 전할 의무는 없었다. 그렇게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각각 다른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나는 적당히 만났다 응원만했다를 반복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외된 1명이 나를 불렀다.
"5명 중 1명이 앞장서서 편가르는 거 내가 누누히 얘기했는데
너는 알고도 그들과 어울렸지. 너도 따돌림의 방관자야"
워딩이 정확한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방관자'라는 키워드만 생각난다.
소외된 1명의 말에는 원망과 분노가 있었다. 그들과 안어울려도 상관없지만 그 중 1명의 만행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며 나에게 메신저 역할을 하라고 했다.
"당사자끼리 만나야할 문제를 전하는 건 아니라고 봐."
나는 어떤 곳에서도 말을 전하지 않겠노라 선언한 상태고 양쪽 어느 쪽에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한다.
"누군가 당신을 이러한 이유로 싫어합니다."
이 이야기를 선의를 가지고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이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적정한 선은 어디까지일까.
육아의 힘듦을 나누고 서로의 아이를 예뻐하던 동생들이 조금 무서워졌다.
나는 과연 방관한 것인가 좋은 것만 보려고 애쓴 위선자일까.